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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부자’ 롯데와 ‘상장 차익’ 신세계, 유통지존 놓고 격돌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롯데쇼핑·신세계·현대백화점·홈플러스 등 국내 4대 유통업체는 올 초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서 ‘빅 매치’를 벌였다. 매물로 나온 GS그룹의 백화점과 대형 마트를 누가 사갈 것이냐는 경쟁이었다. GS백화점(3개 점포)·마트(14개 점포)는 유통업계 판도를 좌우할 전략적 중요성을 갖고 있었다.

신동빈(55) 롯데 부회장은 그동안 열세였던 할인점 부문을 강화할 다시 없을 좋은 기회로 봤다. 기존에 70개였던 롯데마트 점포 수를 단숨에 84개로 늘린 뒤 추가 출점을 통해 연내에 100개 정도까지 늘린다는 구상이었다. 이렇게 되면 할인점 1, 2위인 이마트(127개)나 홈플러스(115개)와 대등한 승부를 펼칠 수 있다는 계산이 섰다. 정용진(42) 신세계 부회장은 할인점 부문에서 홈플러스와 롯데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GS마트에 주목했다. M&A 전쟁에서 실탄이라고 부를 만한 현금 마련에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상장을 추진 중인 삼성생명 주식 2조7000억원어치를 갖고 있어서다.

GS백화점·마트 인수전은 할인점 1위를 노리는 홈플러스와 백화점 2위를 확고히 지키려는 현대에도 양보할 수 없는 한판이었다. 입찰 서류를 마감했더니 신세계와 홈플러스는 각각 GS마트에, 현대는 GS백화점에, 롯데는 백화점과 마트 모두에 인수 의향서를 냈다. 승리는 인수금액으로 1조3400억원을 써낸 롯데에 돌아갔다. 가격도 높았지만 백화점과 마트를 한번에 사들이면서 직원들의 고용보장을 약속한 것이 GS 측을 흡족하게 했다는 후문이다.

구조조정 기업 매물 30조원 추산
최근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서면서 기업 M&A 시장이 달아오를 조짐이 보인다. 대기업들이 다시 사업확장에 나설 채비를 서두르는 데다 M&A를 위해 대기하는 돈도 ‘풍년’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553개 주요 상장사의 현금성 자산(현금+단기 금융상품)은 지난해 말 현재 84조73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3조7900억원이나 많아졌다. 이 중 삼성(16조4600억원)·현대차(11조6500억원)·포스코(6조2500억원) 등 10대 그룹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52조1500억원에 달한다. 여기다 삼성생명(4조원)·대한생명(1조7800억원) 등 잇따른 대기업 상장으로 조달된 자금도 M&A 시장으로 흘러들어올 분위기다. 유망 중소기업 M&A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인수목적회사(스팩·SPAC)도 현재 수천억원의 현금을 쌓아놓고 매물을 고르고 있다.

박천수 KB투자증권 이사는 “과거에는 중위권 대기업에서 빠른 외형 성장을 위해 M&A에 나서는 경우가 많았다면 최근엔 최상위권 대기업도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M&A에 관심을 갖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새 주인을 찾는 기업들을 위주로 M&A 매물도 풍부하다. 대우인터내셔널 M&A는 당초 포스코의 독무대가 되리란 예상을 깨고 롯데가 강력한 도전장을 내면서 지한글로벌과 함께 3파전을 벌이고 있다. 매각 작업을 총괄하는 자산관리공사는 다음 달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고, 6월에 본계약을 한다는 계획이다. 자산 규모가 3조8000억원에 달하는 대우인터내셔널의 매각 금액은 3조~4조원대로 추산된다. 이외에 대우조선·건설 등 옛 대우 계열사와 하이닉스·현대건설·외환은행 등 현재 대기 중인 수조원짜리 대형 매물도 적지 않다. M&A 업계에선 구조조정 기업들의 매물만 30조원어치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다만 사려는 쪽이 시너지(상승)를 기대할 수 있는 업종이면서 가격이 맞아야 한다는 것이 관건이다. 지난해 말 금호그룹의 유동성 위기는 무리한 M&A는 ‘승자의 저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교훈을 안겨줬다.

박 이사는 “M&A 시장에도 업종별 경기상황에 따라 ‘양극화’가 나타날 수 있다”며 “유통업은 상대적으로 주목받겠지만 건설·조선업 등은 팔려는 매물은 많아도 아직 뚜렷한 매수 주체가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증시를 좌우할 테마의 하나로 M&A를 꼽고 있다. M&A 흐름만 잘 따져도 한 해 재테크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코스닥에 상장한 3차원 입체영상업체 케이디씨는 1월 말 반도체 관련 업체인 바른전자 인수를 발표했다. 발표 전 4610원이었던 주가는 6690원(2월 22일)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M&A의 관심이 식으면서 주가가 꺾여 16일에는 4220원으로 마감했다.

대표적인 M&A 관련 종목인 스팩이 한때 ‘이상 과열’로 주가가 급등한 것도 M&A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코스닥 종목인 미래에셋스팩1호의 경우 공모가는 1500원이었으나 지난달 12일 상장 후 상한가를 이어가며 3810원(3월 23일)까지 올랐다. 16일 주가는 2415원으로 공모가보다는 높았지만 최고가에 비해선 37%나 떨어졌다.

윤현종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M&A 테마와 관련된 기업의 주가 향방은 기업의 펀더멘털보다는 관련 뉴스에 급등락을 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단기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 M&A부 김기홍 차장은 “스팩은 유망 중소기업을 발굴해 자금을 지원한 뒤 합병을 통해 증시에 상장시키는 역할을 한다”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M&A와는 많이 다르다는 점을 유념해야 하다”고 말했다.

신동빈 부회장 “M&A 국내외 상관없다”
현재 M&A 시장에서 가장 주목하는 두 기업은 롯데와 신세계다. M&A를 위한 현금도 풍부하고, 최고경영자(CEO)도 공개적으로 관심을 보여서다. 롯데의 신 부회장은 지난달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의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좋은 기회가 있으면 인수할 의향이 있다”며 “국내외 상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상후 롯데제과 대표는 지난달 “그룹이 인수 대상으로 살피고 있는 업체가 국내외 20여 곳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공개하기도 했다.

신 부회장은 지난 2년여 동안 4조원 이상을 국내외 M&A에 투자했다. 롯데는 “우리의 힘은 풍부한 현금 유동성”이라고 자랑한다.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학 석사(MBA) 출신으로 일본 노무라증권 런던지점에서도 일했던 신 부회장은 금융에 대한 감각이 남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백화점·마트를 운영하는 주력 계열사인 롯데쇼핑은 2006년 코스피 시장에 상장하면서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공모주를 팔아 3조4000억원을 모았다. 이 돈은 신 부회장이 ‘M&A의 귀재’로 떠오르는 데 든든한 밑천이 됐다.

롯데는 최근 대우인터내셔널의 인수전에도 뛰어들었다. 주로 철강·금속·기계류를 무역하는 대우인터내셔널은 롯데의 주력인 유통·식품업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러나 신 부회장은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할 경우 시너지(상승)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롯데 관계자는 “대우인터내셔널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자원개발 노하우 등이 호남석유화학을 비롯한 계열사와 시너지를 낼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롯데그룹의 부채비율은 64%로 5대 그룹 중 가장 낮다. 롯데 관계자는 “부채비율도 낮고 신용등급(롯데쇼핑 AA+)도 우수하기 때문에 M&A에 필요한 자금은 얼마든지 조달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정용진 부회장 “장기적으로 M&A 검토”
2월 24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JP모건 주최 ‘한국 CEO 콘퍼런스’. 마이크를 잡은 신세계 정 부회장은 유창한 영어로 투자자들에게 향후 경영계획을 설명했다. 정 부회장은 “신세계가 보유한 삼성생명의 주식가치는 장외시장 평가 금액을 감안할 때 2조7000억원 정도”라고 소개했다. 이어 “상장될 경우 공모가액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에서 보유 주식 중 일부가 구주 매출에 포함될 수 있도록 협의할 예정”이라며 “상장 후 주가 안정을 위해 보호예수(일정 기간 주식을 팔지 않겠다는 약속) 요청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데, 보호예수 종료 이후에도 적정 주가 범위 안에서 매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삼성생명 주식을 판 돈으로 M&A에 나설 것도 시사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M&A나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해 중국 내 다른 지역으로 사업을 확대하는 전략을 검토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날 정 부회장의 발언은 M&A 시장 관계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상장 심사가 진행되는 중에 주요 주주가 주식을 팔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실제로 삼성생명이 16일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투자설명서에는 정 부회장의 발언 내용이 그대로 반영됐다. 삼성생명은 다음 달 3~4일 4444만 주의 공모주 청약을 받는데, 여기에 신세계가 보유한 주식 중 500만 주를 포함시키기로 했다. 공모가는 9만~11만5000원 사이에서 결정된다. 따라서 신세계는 다음 달 초 1차로 4500억~5750억원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신세계가 보유한 삼성생명 주식 중 남은 221만 주는 1년간 주식을 팔지 않겠다는 약속(보호예수)을 지킨 뒤 내년 5월 이후에 매각할 계획이다.
신세계는 아직 자금의 구체적인 활용 계획을 밝히진 않고 있다. M&A 계획에 대해 회사 관계자는 “좋은 매물이 나온다면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지만 현재로선 특별한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CJ그룹과 한화그룹도 각각 삼성·대한생명의 상장을 앞두고 대형 M&A를 성사시켰다. CJ는 지난해 말 오리온의 케이블방송 자회사 온미디어를 4344억원에 인수했으며, 한화그룹은 올 초 푸르덴셜증권과 자산운용을 합쳐 4900억원에 샀다. 대한생명 상장을 앞두고 실시한 공모주 매각에서 한화그룹은 1조6200억원을 조달했다. CJ는 삼성생명 주식 959만 주를 갖고 있으며, 이 중 500만 주를 공모주 청약을 통해 내다팔 계획이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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