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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1박2일 자립준비교육’ 현장에 가보니 …

병진(왼쪽)이와 기훈이가 처음으로 마카로니 샐러드 만들기에 도전했다. 최유나 사회복지사가 오이 써는 법을 알려주자 귀담아 듣고 있다. [최정동 기자]
“아이보다 딱 하루 더 사는 게 소원입니다.” 발달장애인을 자식으로 둔 부모들의 애달픈 심정이다. 신체는 멀쩡한데 지적 능력이 낮고, 의사표현을 못 해 정신병자 취급을 당하기도 하는 국내 발달장애인은 약 23만 명.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발달장애 학생 4명과 노원발달지원센터(서울 하계동)에서 10, 11일 이틀간 동고동락했다. 자립준비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참여 학생은 김대호(18·남·고2·지적장애1급), 강병진(17·남·고2·지적장애1급), 이기훈(17·남·고2·지적장애1급+자폐증), 윤성영(16·남·중3·지적장애1급)이다. 지적장애 1급은 지능지수가 34 이하로, 평생 보호가 필요하다. 프로그램에선 사회복지사 두호영(26·남), 최유나(22·여)씨가 지도교사를 맡았다. 사회구성원으로 자립하기 위한 그들의 일상을 가감 없이 소개한다.

“안냐세요” “앗 뜨거” 우여곡절 끝 저녁 마련

4월 10일 오후 3시. 제일 먼저 도착한 병진이가 인사를 건넸다. “안냐세요.” 발음은 부정확했지만 목소리가 크고 적극적이다.

조금 뒤 대호와 성영이가 들어섰다. 이들 셋은 알고 지내는 사이. 치아를 드러내며 웃는 대호는 차분하다. 5살 때부터 언어치료를 받았지만 효과가 적어 말을 거의 못 한다.

장난기가 많은 성영은 말을 할 때 눈을 잔뜩 찡그린다. 밝은 분홍색 집업 후드티를 입은 체중 90㎏의 기훈이도 합류했다. 자폐증이 있는 기훈에게 눈이 갔다. 발랄한 댄스곡을 계속 흥얼거린다. 기훈은 창문에 비친 자신을 보며 가끔 춤 동작도 보여준다. 하지만 친구들과 의사소통은 전혀 없다. 음악을 통해 자신의 내면과 소통하는 듯했다.

오후 4시30분. 부모들과 헤어졌다. 이제부터 홀로서기를 위해 세상 속으로 첫발을 내디뎌야 한다. 매사 적극적인 병진이가 반장에 임명됐다.

첫 번째 과제는 저녁 준비. 친구인 병진과 대호는 고등어 구이와 마카로니 샐러드를, 기훈과 성영은 밥과 쇠고기 미역국을 맡았다.

과연 해낼 수 있을까. 막내 성영이가 금세 사고를 친다. 20인분의 건조 미역을 국솥에 다 쏟아 붓는다. 분명히 절반만 넣으라는 지시에 ‘네’라고 답변했지 않은가.

그 사이 기훈은 거구에 맞지 않게 잽싸게 쌀을 씻어 밥솥에 안치고 취사 버튼을 정확하게 눌렀다. 그의 밥짓기 실력에는 중1때 겪은 ‘생쌀’의 교훈이 담겨 있다. 어머니 김미순씨가 늦게 귀가한 적이 있는데, 기훈이가 밥통에서 생쌀을 퍼 먹고 있었다. 배가 고팠던 기훈이가 쌀을 씻어 밥통에 넣고 ‘보온’ 버튼을 눌렀다는 것이다.

뜨거운 가스레인지 불과 식용유를 사용하는 고등어 구이팀의 병진이가 소리친다. “어흐~ 뜨거.”

학생들의 집중력은 오래가지 않았다. 기훈을 제외한 3명이 공놀이를 하러 거실로 무단이탈(?)했다. 우여곡절 끝에 생애 처음 만든 저녁 식사가 완성됐다. 병진이가 “헌생님(선생님)” 하며 사회복지사들에게 식사를 권한다.

팀별 볼링게임, 패배도 순순히 인정

저녁 8시. 초코바가 걸린 실내 볼링 게임이 준비됐다. 팀별 활동을 통해 대인관계 능력을 키워주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식사 준비팀 그대로 편을 갈랐다. 공을 던지는 순서가 정해졌지만 예상한 대로 이들 앞에서 규칙은 무용지물.

하지만 사회복지사들이 교통정리를 해주면 고집을 부리지 않고 잘 따른다. 경기는 기훈네 팀의 승리. 병진이가 아쉬운지 “아우~” 하며 한탄하다가 이내 “축하해” 하며 패배를 인정했다.

목욕을 마치고 나온 시간은 밤 10시. 잠자리를 두고 병진과 기훈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졌다. 둘 다 소파에서 자겠단다. 사회복지사가 중재에 나섰다. 가위바위보. 병진이가 졌지만 고집을 부려 결국 두 친구 모두 소파에서 잘 수 없었다. 거구의 기훈이가 어중간하게 방바닥에 먼저 눕자 병진이 자리가 비좁다. 병진이 기훈을 툭툭 치며 “옆으로” 하자 기훈이가 꿈틀대며 자리를 비켜준다. 발달장애인도 반복학습을 통해 사회성을 기르면 큰 문제 없이 우리 이웃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잠자리에 드는 성영의 체크무늬 티셔츠에는 ‘굿 나잇(GOOD NIGHT)’이라는 영어가 쓰여 있다. 방에 불이 꺼진 뒤 소파에는 언제인지 모르게 가위바위보를 이긴 기훈이가 누워 있다.

4월 12일 오전 11시. 1박2일의 프로그램을 마치고 귀가에 앞서 아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최유나 사회복지사가 물었다. “밥도 해 먹고, 게임도 하고, 청소도 했는데 누가 1등일까요.”

“성영………대호·기훈·병진.” 반장 병진이는 모두가 1등이란다. 결국 반장 역할을 수행한 병진이가 1등을 차지했다. 병진이가 대호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잘해 잘해. 나 이쁘지. 다음에는 2등 할거야.”

어쩌면 이들은 평생 2등으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병진·대호·기훈·성영은 세상 속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4명의 학생은 올 12월 말까지 매주 말 이곳에서 만나 세상과의 접점을 찾아갈 예정이다. 관공서·은행·식당·마트를 찾아 우리 이웃이 될 준비를 한다.

병진이 어머니 정희선씨는 “아이가 사회적응훈련을 통해 경제활동을 하길 바라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 부딪쳤을 때 ‘죄송하다’ 말하고, 한 발 뒤로 물러날 수 있는 수준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발달장애인 가족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는 한국제나가족지원센터 김명실 센터장은 “‘차이’에는 우열이 있지만 ‘다름’은 서로 존중할 수 있다. 장애는 차이가 아닌 다름이라는 것을 인정해 주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발달장애인이나 가족을 후원하길 원하는 독자는 한국제나가족지원센터(www.genapride.org)로 연락하면 된다. 02-742-0142.

글=황운하 기자,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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