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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뉴스 인 뉴스 <94> 중동 전쟁

이스라엘과 이슬람 국가들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동 지역은 ‘지구촌의 화약고’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질적인 종교와 민족 갈등으로 대립의 역사가 이어져 왔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이 지역에는 총성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거주 지역인 가자지구를 공격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이스라엘의 동예루살렘 정착촌 건설 문제로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돼 있습니다.

최익재 기자

종교 갈등 뒤엔 강대국 패권 다툼의 역사

이스라엘은 2008년 12월 27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자치지역인 가자지구에 맹공을 퍼부었다. 이스라엘 측은 공격 이유에 대해 “이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하마스가 정전협정을 어기며 로켓포로 공격했기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의 미사일 공격을 받은 가자지구 남단 라파 지역에서 부상한 팔레스타인 남성이 부축을 받으며 현장을 빠져나오고 있다. [라파 AP=연합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은 1948년에 시작됐다. 표면적으로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독립국가를 세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동전쟁의 배경에는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대립뿐 아니라 이 지역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패권 다툼이라는 역사가 깔려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영국은 전쟁 승리를 위해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독립국가를 건립하려는 민족주의 운동인 ‘시오니즘’을 지지했다. 동시에 독일과 동맹 관계였던 오스만 튀르크의 후방 교란을 위해 아랍인들에게도 지원을 요청했다. 그 대가로 영국은 양측에 식민지였던 팔레스타인 지역을 넘겨주겠다고 약속했다. 아랍 측에는 1915년 ‘맥마흔 선언’을 통해, 유대인들에게는 2년 후 ‘밸푸어 선언’을 통해 이중 약속을 한 것이다. 이후 유대인과 아랍인들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대립하게 됐다. 결국 유엔은 47년 팔레스타인 영토의 51%를 이스라엘이 차지하고 나머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지배하는 중재안을 마련했다. 유대인들은 중재안을 수용한 반면 아랍권은 이를 거부하고 전쟁을 일으켰다. 이후 이스라엘과 아랍 간의 전쟁은 여러 차례 계속됐고 그 역사적 불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한편 팔레스타인은 원래 현재의 이스라엘을 비롯해 레바논·요르단·시리아 등 지중해 동쪽 연안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유대인들은 기원전 이 지역에 독립국가를 세웠다. 하지만 패망 후 유대인들은 전 세계를 떠도는 유랑 민족으로 전락했다. 이후 유대인들은 시오니즘을 앞세워 팔레스타인 지역에 독립국가 건설을 추진했다. 결국 제2차 세계대전 후 이스라엘을 세웠다. 반면 아랍인들은 636년 예루살렘을 손에 넣었으며 이후 팔레스타인 지역을 본격 지배했다. 아랍인들은 이스라엘의 건국 전까지 팔레스타인 지역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 같은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예루살렘의 구시가지는 유대교뿐 아니라 이슬람교의 성지로 여겨지고 있다.

1948년 제1차 중동전쟁 이스라엘 건국에 아랍권 공습

48년 이스라엘 건국이 전쟁 발발의 원인이다. 이집트의 전투기들이 그해 5월 이스라엘을 공습해 전쟁이 시작됐다. 이집트·시리아·요르단·이라크·레바논 등 5개국이 아랍연합군을 구성했다. 전쟁 초기 이스라엘은 무기를 제대로 보유하지 못했지만 주요 도시인 예루살렘과 텔아비브를 지켜 냈다. 이후 미국 등의 지원을 받은 이스라엘군은 이집트·요르단·시리아 등을 맹폭격하면서 승리를 거뒀다. 결국 양측은 49년 2월 평화조약을 맺었다.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당초 유엔의 분할안보다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하게 됐다. 이 전쟁을 ‘이스라엘 독립전쟁’이라고도 부른다.

1956년 제2차 중동전쟁 수에즈 운하 둘러싼 충돌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가 52년 쿠데타를 일으켜 국왕을 몰아내고 대통령이 됐다. 그는 서방 대신 소련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 이 때문에 미국과 영국은 아스완댐 건설을 도와 달라는 그의 요청을 거절했다. 이에 반발해 나세르는 교통의 요지인 수에즈 운하를 일방적으로 국유화했다. 이에 수에즈 운하를 공동 소유하고 있던 영국과 프랑스의 공군은 수에즈 운하를 폭격했고, 이스라엘도 이들 국가와 동맹을 맺고 이집트 시나이 반도를 공격했다. 자칫 세계대전으로 확산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를 우려한 미국과 소련은 전쟁 종식을 압박했고 결국 유엔 결의에 따라 3개국 군대가 철수했다.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시나이 반도를 점령하게 돼 일명 ‘시나이 전쟁’으로도 불린다. 반면 아랍권은 이를 ‘삼국 침략’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스라엘 영토 3.5배 늘려

제2차 중동전쟁 이후 이슬람 무장세력들은 본격적으로 테러 등을 통해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이에 이스라엘은 67년 4월 이집트에 대규모 공격을 감행했다. 이집트는 시나이 반도에 군대를 보내 이스라엘에 맞섰다. 시리아·알제리·쿠웨이트 등도 이집트를 지원했다. 이 때문에 당초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 전쟁이 시리아 등으로 확대됐다. 이스라엘은 이집트 전투기 300대와 시리아·요르단·이라크 전투기 416대를 파괴해 아랍 국가들의 공군을 무력화했다. 이스라엘은 이 전쟁으로 요르단강 서안 지역과 시리아와 접경 지대인 골란 고원까지 손에 넣었다. 예전의 영토보다 3.5배나 되는 땅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전쟁으로 막해한 피해가 발생하자 유엔은 정전을 촉구했고 결국 6월 9일 전쟁이 중단됐다.

1973년 제 4차 중동전쟁 75만 이집트군 총공격

이 전쟁은 이스라엘의 종교 축제인 ‘욤키푸르(사죄의 날)’에 발발했다. 유대인들이 금식을 하는 날에 공격을 받아 이스라엘군으로서는 허점을 찔린 셈이다. 이집트는 75만 명의 병력을 비롯해 탱크 3만2000대, 소련제 미사일 등을 동원해 이스라엘을 총공격했다. 전쟁 시작 초기에는 이스라엘의 17개 여단이 전멸하는 등 이집트가 크게 우세했지만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스라엘은 곧 반격에 나섰다. 하지만 이전 전쟁과는 달리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스라엘은 이 전쟁을 계기로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쟁을 위해 미국은 22억 달러 상당을 이스라엘에 지원했으며 소련은 35억 달러를 아랍국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일지

1947년 유엔, 영국 식민지였던 팔레스타인을 유대인(이스라엘)과 아랍인(팔레스타인) 국가로 분할키로 결정. 이스라엘은 수용, 아랍권은 거부.

1948년 1차 중동전쟁 발발. 이집트 등 아랍연합군이 이스라엘 건국에 반발해 침공.

1956년 2차 중동전쟁 발발.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로 영국·프랑스와 이스라엘이 이집트 공격.

1964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출범.

1967년 3차 중동전쟁(6일 전쟁) 발발. 이스라엘이 시나이 반도, 골란 고원, 요르단강 서안, 동예루살렘 점령. 이스라엘이 점령지에 정착촌 건설 시작.

1973년 4차 중동전쟁 발발.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 기습 공격.

1978년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 캠프데이비드 평화협정 체결. 시나이 반도 반환과 팔레스타인의 제한적 자치 허용.

1982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게릴라 소탕 명분으로 레바논 침공.

1988년 PLO, 47년 유엔결의안(2개 국가안) 수용.

1994년 야세르 아라파트를 수반으로 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출범.

1995년 평화협상의 주역인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 극우 유대인에 의해 암살.

2004년 샤론 이스라엘 총리 가자지구 철수안 서명. 아라파트 수반 사망.

2005년 팔레스타인에서 온건파인 마무드 압바스 수반 취임. 이스라엘군 가자지구에서 철수.

2006년 강경파 하마스 총선에서 승리하고 단독 내각 출범. 미국·유럽연합(EU) 원조 중단.

2007년 하마스·파타당 공동 내각 출범.

2008년 이스라엘, 하마스의 로켓 공격 대응 명분으로 가자지구 침공

2010년 하마스 고위 간부 두바이에서 피살. 두바이 경찰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를 배후로 지목.


현재 중동은 동예루살렘에 유대인 정착촌 건설, 새 충돌의 뇌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가장 최근의 양측 간 분쟁은 2008년 12월 27일 발발한 가자전쟁이다. 이는 이슬람 무장세력인 하마스가 지배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거주 지역인 가자지구를 이스라엘이 공격한 전쟁이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 등이 평화협정 위반이라며 20여 일간 폭격기 등을 동원해 맹공을 퍼부었다. 이로 인해 1500명에 가까운 사람이 숨졌다. 희생자 중 3분의 2가 민간인이었으며 이 중 여성과 어린이도 상당수였다. 가자전쟁 이후 현재까지 대규모 분쟁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 지역은 지구촌의 화약고인 만큼 항상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유대인 정착촌 건설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 지역에서 유대인 거주용 건물을 신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국제사회는 아랍인 주민이 다수를 차지하는 동예루살렘에서 유대인을 위해 새로 주택을 짓는 것은 충돌의 불씨가 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특히 동예루살렘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때 이스라엘이 점령한 지역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예루살렘 전체가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특히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동예루살렘을 향후 건립할 독립국가의 수도로 삼으려 하고 있기 때문에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결사 반대하고 있다.

유대인 정착촌 건설 외에도 1월 두바이에서 발생한 하마스 고위 간부인 마무드 알마부의 피살사건도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두바이 경찰은 이 사건의 배후로 이스라엘의 비밀정보기관인 모사드를 지목했다.

이처럼 이 지역에선 피의 보복이라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하지만 종교·민족·자원 등을 둘러싸고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해결이 쉽지 않는 상황이다. 중동 전문가들은 “로마제국의 유대인 강제 추방에서 시작된 비극의 역사가 영국의 이중 계약, 나치의 유대인 학살, 중동전쟁, 가자전쟁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역사적으로 볼 때 강대국들이 이에 대한 책임이 있는 만큼 문제 해결을 위해 이들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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