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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의 시시각각] 김정일의 위험한 바다

북한은 후계작업을 시작할 때마다 자극적인 대남 무력 도발을 자행하곤 했다. 1976년 8월 판문점 도끼 만행 때도 북한은 김정일 세습구도를 공식화하고 있었다. 북한은 판문점 도발로 한반도 긴장을 높이고 북침설을 퍼뜨려 정권과 인민의 결속을 강화하려고 했다. 북한은 당시 한반도 주변국 정세를 교묘히 이용했다. 1975년 4월 베트남전 패전으로 미국은 반전(反戰)여론에 휩싸이고 있었다. 중국은 30여만 명이 사망한 탕산(唐山) 대지진으로 정신이 없었다.

북한은 지금 김정은 세습작업을 시작하고 있다. 그런데 김정일의 건강은 좋지 않고 후계구도가 불안한 데다 화폐개혁 실패로 경제 혼란도 가중되고 있다. 그러므로 ‘1976년 식’ 도발의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다. 북한에는 다행히 미국은 아프간전과 이라크 뒤처리로 또 다른 전쟁을 원치 않는다. 중국은 상하이 엑스포(5~10월)에 몰두하고 있다. 한국은 6월 지방선거가 끝나면 월드컵에 빠질 것이며 가을엔 서울에서 G20 정상회의가 열린다. 북한은 이런 삼각형을 노렸을 것이다.

현재까지 나타난 정황 증거만으로도 천안함 사건은 남북한 역사에서 커다란 분수령이 될 것이다. 북한은 국가의 진로와 관련해서 두 갈래 길을 앞에 놓고 있었다. 하나는 소프트 트랙(soft track)인데 6자회담에 응해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과 경제개발로 나서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하드 트랙(hard track)으로 6자회담을 거부하고 핵을 고수하면서 적어도 2012년까지는 벼랑 끝 전술로 가는 것이다. 2012년은 여러 면에서 결정적인 해다. 북한으로서는 강성대국 진입 목표연도다. 김정일은 70세, 김정은은 30세가 되고 김일성은 탄생 100주년이다. 미국·중국·러시아·한국에선 대선이나 지도부 교체가 있다. 그때까지 대남 도발로 핵무장의 몸값을 잔뜩 올려놓고 2012년에 새로운 지도자들과 핵 씨름을 다시 하는 게 하드 트랙이다. 그때 가서 핵 포기가 아니라 핵 감축을 협상하는 것이다.

천안함 사건을 보면 북한은 결국 하드 트랙을 택한 것 같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햇볕정책은 북한이 소프트 트랙을 택할 것이란 기대로 진행된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정상회담 때부터 한국과 국제사회를 속이고 핵을 개발했다. 진보정권의 계산은 순진한 것으로 드러났고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북한은 남한을 핵 인질로 삼아 한반도의 멱살을 흔들고 있다. 지난 세월 북한은 칼과 발톱을 갈았는데 남한은 정상회담 두 번에 취해서 축시(祝詩)만 낭독했다.

이제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북한이 하드 트랙으로 나선 것이 거의 분명한 만큼 한국과 미국은 대(對)북한 정책을 재검토할 필요성이 생겼다. 교류·지원·북핵·급변사태에서 통일에 이르기까지 전략을 재점검해야 한다. 남한의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은 북한의 소프트 트랙을 전제로 남북이 공존·교류·통일하자는 것이다. 이 마스터 플랜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천안함 사건은 한국에 비극적인 일이다. 그러나 활용하기에 따라 한반도 운명에 결정적인 전기(轉機)가 될 수 있다. 한국과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한 정신과 자세를 단호하게 다잡으면 북한은 내부적으로 흔들릴 수 있다.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세습은 어언 62년이나 됐다. 피로파괴가 올 때가 됐다. 인류 역사는 어떤 독재도 영원할 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 대부분 1대(代)에서, 그것도 많은 경우 비극적으로 끝난다. 쿠바 카스트로 형제의 릴레이 독재가 길다고 하지만 60년이 되기는 힘들다. 아이티 뒤발리에 부자는 29년이었다. 북한이 아무리 이상한 나라라고 해도 손자에게까지 권력이 세습되는 건 어려울 것이다. 김정일 정권은 점점 알 수 없는 고립의 바다로 들어가고 있다. 그 바다도 무척 위험한 바다다. 언제 어디서 어뢰가 나타날지 모른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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