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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세 도입, 명분보다 실리다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13년 전 외환위기는 ‘내 탓’이 더 컸다. 그중 하나가 급속한 자본시장 개방이었다. 해야 할 일이었지만 속도가 문제였다. 기초지반 공사도 안 된 부지에 초고층 건물을 올린 꼴이었다. 정부가 서둘렀던 건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때문이었다. 가입하면 선진국이 된다는 착각을 갖고 있었다. 부자 나라 모임에 들어가서 안 될 이유는 없다. 단지 간청과 읍소를 하며 가입할 까닭은 없었다.

그 후유증이 1년 뒤 외환위기로 나타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남 탓’도 있었다. 뉴욕 타임스의 보도다. 1999년 2월 “미 재무부는 한국이 금융시장을 개방하면 OECD에 가입시켜 주겠다는 매력적인 미끼를 내걸었다”고 보도했다. “그건 미국 은행과 투자가를 위한 사업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국익 챙기려 OECD를 활용한 미국의 꼬임에 우리가 멋 모르고 놀아났다는 지적이다. 남이야 어떤 속셈이든 우리만 잘하면 되는데 그러지 못했다. 결국 ‘내 탓’이다.

13년 전 일을 꺼내는 건 주요 20개국(G20) 총회 개최국이 됐다며 ‘만세 삼창’만 불러댈 일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서다. 아무리 총회를 개최한들 우리는 강대국이 아니다. 그리고 세계 질서는 강대국이 만든다. 강대국은 말로는 세계 공조 운운하지만 천만의 말씀. 자국 이익이 침해되지 않는 범위의 공조일 뿐이다. 맘에 안 들면 말 대신 주먹을 내지르는 나라들이란 건 역사가 증명한다.

은행세만 해도 그렇다. 이번 금융위기 때 강대국들은 은행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다. 경제 시스템 전체가 붕괴될 판이어서다. 하지만 이 돈은 국민 세금이다. 게다가 지원받아 살아난 은행들이 자중하긴커녕 보너스 잔치를 벌였다. 이만저만한 도덕적 해이가 아니다. 그래서 만든 게 은행세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1월 대형 금융사들에 10년간 최소 900억 달러의 세금을 매기겠다고 발표한 게 시발이다. 영국과 독일·프랑스 등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걱정이 생겼다. 과세하면 자국 금융산업이 위축된다는 우려다. 국제 공조를 주창하는 이유다. 다른 나라가 같이 하면 세금도 걷고, 자국 금융산업도 위축되지 않는다는 속셈이 깔려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외환위기 때와 달리 이번에는 구제금융이 들어간 게 없다. 한국은행 지원이 있었지만 대부분 회수됐다.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나 역시 우리 은행에 불만이 많다. 이번 금융위기 때도 은행 책임이 가장 컸다고 생각한다. 다만 은행세는 책임을 제대로 묻는 방법이 아니다. 공적자금이 들어간 미·유럽 은행에만 해당되는 벌칙이다. 이보다는 예대율 규제가 한결 낫다. 금융위기 당시 은행이 흔들렸던 건 무분별한 공격경영 탓이 컸다. 예금보다 훨씬 많이 대출해줬기 때문에 위기가 증폭돼 나타났다. 내년부터 시행할 예대율 규제가 흔들리지 말아야 할 이유다. 은행들이 대마불사에 의존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강대국에 뒤떨어져 있는 금융산업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그들이 헤매고 있는 지금이 절호의 찬스다. 은행세를 도입해선 안 되는 이유다.

그런데도 정부는 은행세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G20 의장국이라는 이유가 큰 듯싶다. 의제로 올라온 은행세를 의장국이 다루지 않을 수 없다. 불만이 있어도 회의 중간에 뛰쳐나갈 수도 없다. 의견을 조율해야 할 책임도 있다. 의장국, 회의 개최국이어서 겪는 딜레마다. 하지만 의장국이란 명분에 얽매여선 안 된다. ‘개도국’을 강조하며 실리 추구형으로 가야 한다. 정부가 ‘도입 검토’ 운운하며 미리 꼬리를 내린 건 잘못됐다. 찬반이 엇갈리는 강대국의 역학관계를 활용하면 가능할 수도 있다. OECD 가입이 미국의 당근이었듯 G20 회의 개최 역시 그럴지 몰라서 하는 걱정이다. 기우이길 바랄 뿐이다.

김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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