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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적 가치’가 소비를 결정한다

세계 2위 음료업체인 펩시코(PepsiCo)는 지난달 자사의 주력제품에 들어가는 소금과 설탕, 포화지방의 양을 줄이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당뇨병과 심혈관 질환의 원인으로 지목한 이들 유해물질의 함량을 큰 폭으로 떨어뜨리는 대신 과일과 야채, 견과류 등 건강식 재료는 대거 늘리기로 했다. 이를 통해 회사는 건강식품의 매출을 현재의 연간 100억 달러에서 향후 10년 내에 300억 달러로 확대할 계획이다. 펩시코는 이에 앞서 전 세계 초·중·고교에서 고칼로리 청량음료를 팔지 않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밖에 세계적인 식품업체인 크래프트(Kraft) 역시 지난달 북미지역에서 판매되는 제품에 들어가는 나트륨 수준을 2년간 평균 10% 줄이겠다고 발표한 것을 비롯, 콘아그라푸즈(ConAgra Foods)와 캠벨수프(Campbell Soup) 등 유수 업체들이 유해물질 감축을 다짐했다. 그간 고조돼온 여론의 압력에도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던 이들 업체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웰빙을 표방하고 나선 배경은 무엇일까.

당국의 규제 탓도 있겠지만 콧대 높은 거대기업들의 태도전환을 이끌어낸 힘은 무엇보다 날로 강화되고 있는 소비성향의 변화다. 소비자들은 이제 더 이상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는 데만 관심을 갖지 않는다. 무심코 먹어온 청량음료와 인스턴트 식품이 건강에 해가 된다면 언제라도 고개를 돌릴 준비가 돼 있다. 반면 건강에 덜 해롭거나 혹은 도움이 된다면 맛이 떨어지는 단점을 감수하고라도 기꺼이 선택한다. 각자가 중요시하는 ‘가치’가 제품의 선택기준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면에는 불과 몇 년 사이에 고착화된 소비패턴의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가격이 치솟는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 거품에 기대 무분별한 소비를 일삼던 관행은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었다. 과중한 가계부채에 짓눌린 상당수 소비자들은 저축을 늘려 빚을 갚느라 딴 생각할 틈이 없다. 웬만한 가정에선 예전처럼 흥청망청할 경제적 또는 정신적 여유가 사라진 지 오래다. 소비자들은 씀씀이가 줄면서 자연스럽게 제품 선택에 보다 신중을 기하게 됐다. 구매 품목이 줄어드는 동시에 이것저것 따지는 것이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이른바 ‘가치지향(value-oriented) 소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인적’ 가치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있으면 경제적으로 다소 무리가 가더라도 구매하는 것이 가치소비자들의 일반적인 행동방식이다. 역으로 자신에게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제품과 서비스는 가격이 싸더라도 좀처럼 손을 내밀지 않는다. 가치소비는 충동구매와 달리 비교적 긴 시간에 걸친 고민 끝에 형성되지만 일단 판단이 내려진 뒤에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이들에게 제품을 판매하고자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이 같은 지속성과 안정성은 무시 못할 매력이다.

가치소비자들이 중시하는 가치는 건강, 웰빙, 품질, 지속가능성, 환경, 편의성 등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일반적으로 선호도가 높은 가치는 건강과 웰빙이다.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지난해 연간 소득 7만5000달러 이상으로 유기농 식품을 소비하려는 경향이 있는 계층을 ‘프리미엄 소비자’로 정의하면서 이들이 소비재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치소비는 비단 선진국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스마트폰 돌풍을 일으켰던 애플의 아이폰이나 LED TV는 고가와 경기불황이라는 이중의 핸디캡 속에서도 소비자들로 하여금 기꺼이 지갑을 열도록 했다. 오랫동안 저잣거리 싸구려 술이라는 오명에 싸여 있던 막걸리는 건강과 웰빙이라는 새로운 가치가 부각되면서 삽시간에 주류시장을 평정했다.

그러나 가치소비를 고가품에 대한 무조건적 선호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다. 가치를 판단하는 변수에는 당연히 가격과 품질이 포함돼 있다. 소비자들은 특정 제품의 가격과 품질을 조화시켜 자신만의 독특한 가치를 창출하는 방식으로 소비패턴을 조정해가고 있다. 때로 별 망설임 없이 고가 제품을 사기도 하지만 늘 그런 것은 분명 아니다. 가격을 상쇄할 만한 비교할 수 없는 가치가 있을 때 본인의 주머니 사정을 ‘약간’ 넘어서는 수준에서 지출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소비자가 생각하는 가치가 ‘주관적’인 만큼 각자 처한 환경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나라마다 존재하는 문화적·역사적·종교적 배경에 따라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에 부여되는 가치 역시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특히 소비재는 해당 시장 소비자의 취향에 따라 내용과 포장, 함유물 등을 맞춤 제작할 필요가 있다. 제과업체 오리온이 중국시장에서 연간 4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며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데는 주력 품목인 초코파이의 포장을 기존의 푸른색에서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붉은색으로 바꾼 점도 주효했다고 한다.

금융위기와 뒤이은 경기침체를 거치면서 수면 위로 떠오른 소비패턴의 급격한 변화추세는 기업에 중대한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소비자들이 진정 원하는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라야 생존을 보장받는다. 가치가 소비를 결정하는 시대가 눈앞에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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