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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너타프

영국에는 대형 국립묘지가 따로 없다. 해외에서 전사한 군인들은 대부분 현지에 묻힌다. 오랜 관례다. 제1, 2차 세계대전을 포함해 수많은 해외 원정을 했던 만큼 영국군 묘지는 전 세계 곳곳에 있다.

6·25전쟁에서 전사한 영국군 1177명 가운데 75%에 해당하는 885명이 부산 유엔기념공원(옛 유엔묘지)에 묻혀 있다. 미군 전사자 3만6492명 가운데 불과 36명만 이곳에 묻혀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전쟁 전사자는 이렇게 한곳에 묻혀 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전몰장병 묘지는 여러 곳에 나뉘어 있다. 격전이 벌어졌던 네덜란드에는 16곳의 영국군 묘지가 있다.

영국은 대신 런던 한복판에 세너타프(Cenotaph:위령탑)를 세워 영령들을 추모한다. 1차 대전이 끝난 뒤인 1920년 관청가인 화이트홀에 세웠다. 우리로 치면 광화문 한복판에 해당한다. 영국산 최고 석재인 포틀랜드 대리석을 사용해 당대 최고 건축가인 에드윈 루톈스가 설계했다. 세너타프 아래쪽에는 ‘명예로운 전사자(THE GLORIOUS DEAD)’라고 새겨놓았다. 『정글북』을 쓴 당대의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이 제안한 글귀다.

영국에선 1차 대전 종전기념일인 11월 11일과 가장 가까운 일요일에 현충일 행사를 연다. 런던의 세너타프 앞이 행사 장소다. 여왕과 왕실 가족은 반드시 참석한다. 이는 왕실의 주요 의무다. 총리와 각료, 각군 사령관 등 이 나라를 움직이는 지도자는 빠짐없이 자리를 함께한다. 내일의 지도자를 꿈꾸는 야당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이 자리에는 과거 영국군 제복을 입고 참전했던 모든 나라의 대표가 찾아와 헌화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참전용사와 유가족이 전쟁별로 모여 행진하는 전통이다. 1차 대전 유가족(참전용사는 2008년을 마지막으로 모두 별세)이 앞서고, 중간쯤에서 6·25 관계자들이 행진하며, 맨 뒤에 82년 벌어졌던 포클랜드전쟁 참전용사와 유가족이 따른다. 이 모든 행사는 매년 빠짐없이 BBC방송으로 생중계된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전몰자와 유가족을 위해 나라가 할 수 있는 모든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지원병제를 채택한 영국이 어떤 전쟁에서도 지원자가 부족한 적이 없었던 것에는 이런 전통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공공 건물, 기차역과 지하철역, 대학과 고교에는 그곳에서 일하거나 공부하다 참전했던 전사자들의 이름을 잘 보이는 곳에 새겨두고 있다. 시골 마을마다 추모탑이나 추모벽이 있다. 영국 전체가 거대한 추모시설 같은 분위기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을 명예롭게 모시고, 이들을 추모하는 것에도 전통과 기술이 필요하다.

이번에 천안함 사태를 당한 대한민국은 희생된 분들을 잊지 않기 위한 모든 아이디어를 정성껏 짜내야 한다. 서울광장에서 영결식을 하고, 광화문광장에 위령탑을 세우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들을 최대한 명예롭게 모셔야 ‘어떤 전쟁에서도 지원자가 부족하지 않은, 명예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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