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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 김선욱, 피아노 너머를 두드린다

아이큐 150의 천재 피아니스트. 동양인 최초로 영국의 리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 유학 경험 없이 국내에서만 공부한 ‘토종’. 세계적 매니지먼트사와 계약. 김선욱(22)은 뜨거운 이슈다. 백건우(64)·정명훈(57) 등 대중성까지 갖춘 피아니스트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4년. 김선욱은 경력 관리의 모범을 보여줬다. 콩쿠르 하나로 이름을 띄운 뒤 어수룩하게 사라지는 패턴 대신, 연주로 찬사를 받고도 자만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겸손했다. 아무 음악회에나 얼굴을 내미는 실수도 하지 않았다. 어려도 음악적 고집은 있다는 얘기다.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을 받았지만 나쁜 말은 나오지 않았다. 정상에 있을 때 연주 스타일의 변화를 시도해 호사가(好事家)들의 허를 찌르기도 했다. 굳이 단점이 있다면 단점이 없어서 얄밉다는 정도일까. 경력 관리에 신중하고 생각이 올바른 천재. 김선욱은 알려진 자신의 이미지에 대해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고개를 숙였다. “연주자는 도대체 앞에 있는 일을 볼 수가 없어요. 지금 앞에 있는 것부터 잘 해나가는 것밖에는 없는데, 그렇게 4년이 지난 거죠.” 2년 전부터 런던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잠시 한국에 들른 그를 만났다. 오는 9월 그는 영국 왕립 아카데미의 지휘 과정에 입학해 3년간의 지휘 공부를 시작한다. “연주자로 완성되는 시기는 아니죠. 지금은 어떻든지 혼란과 걱정이 많아요.” 이 흠결 없는 피아니스트를 보며 청중이 잘 잊어버리는 것은, 그가 불과 스물두 살이라는 사실이다.



글=김호정 기자 ,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우리는 하마터면 ‘피아니스트 김선욱’을 못 볼 뻔 했다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밤새 졸라 다음날엔 얻고야 말았던 소년

오직 음악이 좋아 첼로를 배우고 7년간 바이올린에 빠졌던 그가

9월엔 영국왕립아카데미서 새롭게 지휘자 과정에 도전한다

20년 뒤를 생각하는 22살, 얼마나 더 강해지려는 걸까



음악을 탐하는 아이




1990년대 중반 서울의 한 작은 공연장. 초등학생 여섯이 모여 음악회를 열었다. 부모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이 한 명당 20분 동안 연주하는, 오붓하고 평화로운 공연이었다.



그런데 유독 ‘전투적’으로 프로그램을 짠 초등학생이 있었다. 학생 대부분이 피아노 혹은 바이올린을 하나씩 선택해 연주했는데, 이 아이는 두 악기를 모두 했다. 피아노로 클레멘티 소나티네 전 악장을 치고 박수를 받은 후 재빨리 바이올린을 들고 다시 나왔다.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5번 1악장을 연주하기 위해서였다. 이 아이가 2006년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김선욱이다.



김선욱은 18세에 콩쿠르로 데뷔하기 5년 전까지 바이올린을 공부했다. 7년간 피아노와 똑같은 비중으로 레슨 받고 연습했다. “남들 잘 하는 거 보면 ‘나도 잘 하고 싶은데’ 이래서 시작한 게 많아요. 첼로도 1년 했어요. 근데 생각해보세요, 일주일에 악기 세 개 레슨을 한 번씩 받았어요. 도저히 못 하겠는 거예요.” 마침 초등학교 4학년에 바이올린으로 본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 시험에서 떨어졌다. “모든 사람이 그때 그만 두라고 했죠. 근데 아까워서 못 그만두겠더라고요. 작은 악기 하나에 내 모든 것을 다 지고 가는 것 같은 바이올린이 너무 하고 싶어서.” 자칫하면 피아니스트 김선욱을 못 만날 뻔했다.



이처럼 김선욱의 목표는 단순히 피아니스트가 아니었다. “솔직히 혼자 연주하는 경우가 많은 피아노만 치는 건 그렇게까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어요.” 그가 하고 싶었던 건 음악이었다. 초등학교부터 오케스트라 내 모든 악기의 악보가 한꺼번에 쓰여 있는 총보(總譜)를 사서 읽으며 CD를 들었다. 덕분에 브람스·베토벤 교향곡은 어떤 악기가 어느 부분에서 나오는지 거의 다 외운다. “이 정도는 알아야 음악을 한다고 할 수 있지 않겠나, 그런 욕심이었죠.”



정식으로 지휘 공부를 한 적 없는 그가 올해 9월 영국 왕립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게 된 것도 이러한 관심 덕분이다. “입학 시험 총 3차 중 2차부터는 실제로 오케스트라를 지휘해야 했어요. 스트레스가 많았죠.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떨렸는데 막상 무대에 서 보니 그동안 음악 듣고 그랬던 것들이 도움이 많이 되는구나 그랬어요. 그래서 그냥 했어요.”



운전·연주·녹음, 모든 것 스스로





이토록 음악을 탐했던 어린 시절이 있을까. “꼭 음악뿐 아니에요.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저는 막 졸랐어요. 바이올린도 사 달라고 밤새 졸랐어요. 다음 날까지 저는 얻어야 돼요. 초등학생 때 LG 트윈스 팬이었는데 유니폼이 너무 입고 싶은 거예요. 학교 갔다 와서 무작정 졸라요. 결국 엄마가 잠실에 가서 사오고.” 유난히 고집 세고 목소리도 큰 아들에게 부모는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학교를 빼먹고 정명훈의 지휘봉 경매에 가도 내버려뒀다.



스타가 된 후에도 김선욱은 연주가 끝나고 손수 운전해 집에 간다. 부모가 연주 곡목부터 연주복까지 다 정해주고 공연 전후로 동행하는 여느 음악 영재와는 다르다. 연주, 경력 관리, 연습, 음반 녹음 등 모든 것을 스스로 고민해 해결한다. 2년 전 매니지먼트 회사인 아스코나스 홀트와 계약한 후 런던에서 생활·활동하면서부터는 혼자 해결할 일이 더욱 많아졌다.



김선욱의 무게감은 여기에서 나온다. 시키는 대로 잘 하고, 열심히 정해진 길만 따라간다면 좀 더 경쾌한 연주자가 될 수 있었겠지만 그의 머리에는 혼자 가지고 있는 고민 거리가 가득하다.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나서 2~3년은 진짜 힘들었어요. 대회에서 치는 레퍼토리는 기껏해야 3시간인데, 그후에 해야 할 곡들은 너무 많고. 콩쿠르 기분으로 계속 하면 위험도 크죠.”



아직도 생각할 것이 많이 남았다. “런던에서 보니 음악적·상업적으로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더라고요. 우리가 아는 유자왕(왕위자, 王羽佳)·랑랑·윤디를 빼도, 런던 필하모닉 정기 연주회 리스트를 봐도 연주자나 연주나 너무 많아요. 그중에서 제가 어필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좌절도 많이 했죠. 한국에서야 공연도 많이 하고 청중도 많이 와줬지만 영국에서 저는 완전히 아시아인이고 이방인이고 그러니까요.”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있다. “음반은 한국에서만 발매하는 걸로 내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세계적으로 내서 성공하고 싶고, 그런데 레이블 정하기도 어렵고. 이건 진짜 스트레스예요.”



3개월간 무대에 30번 … 내년엔 한국서 못 본다



조금 비우고 갈 때가 됐다. 김선욱은 내년 한 해 한국 연주를 하지 않는다. 5월 3일 서울 예술의전당과 5월 6일 고양아람누리에서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슈만 협주곡을 협연하고 11월 예술의전당 독주회를 마지막으로 2012년에 다시 한국에 올 계획이다. 그는 2009년 3개월 동안 30번 무대에 올랐다. “2주 동안 악보를 새로 읽어 협연하고, 사흘 쉬고 독주하고, 이틀 동안 협주곡 두 개를 연주하고, 견디기 힘들 정도였어요.”



김선욱이 인터넷 지도를 펼쳐 그동안 연주 다닌 도시를 표시하니 영국 지도가 금세 빼곡하다. “이제 어떤 연주 하나, 작품 하나에 큰 의미를 둘 시기는 지났어요.” 4년 전 콩쿠르에서 자신이 연주한 모습을 보면 ‘옛날엔 내가 저렇게 쳤구나’라고 생각한다는 스물두 살. 한번의 연주에 의미를 두기보다 10년·20년 후에 어떻게 달라질지를 설계한다는 피아니스트. 그가 영국에서 지휘까지 공부하고 다시 돌아올 때 얼마나 강해질지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글=김호정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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