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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서울 거쳐 평양으로 (73) 권총과 위스키

1950년 9월 15일 인천으로 상륙한 유엔군은 낙동강 전선에서 국군과 미군의 반격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으로 서울 탈환에 나섰다. 북한군의 저항도 만만치 않아 인천 상륙 뒤 서울에 입성하는 데 13일이걸렸다. 이 해 9월 28일 아군은 마침내 서울을 적군으로부터 탈환했다. 서울에 들어선 유엔군이 조심스럽게 작전을 펼치고 있는 모습이다. [중앙포토]
내가 탄 지프가 충남도청 정문에 들어섰다. 제법 큰 도청 앞 주차장에는 차량 여러 대가 주차돼 있었다. 2층 건물이었던 도청 청사에 들어섰다. 먼저 위층의 도지사 사무실로 찾아갔다. 프랭크 밀번 미 1군단장은 마침 자리에 없었다. 밴 브런트 참모장과 몇 명의 참모만이 있었다. 그중 누군가가 내게 작전계획이 담긴 두툼한 봉투를 건네줬다. 그들은 내게 “군단 예하의 사령관들이 먼저 와서 작전계획을 받아갔다”고 말했다.



평양 진격 담판 … 밀번은 위스키를 권했고, 나는 권총을 풀었다

미 1기병사단 호버트 게이 소장과 미 24사단장 존 처치 소장, 영국 27여단장 바실 코드 준장이 벌써 다녀갔다는 얘기였다. 내가 좀 늦은 셈이었다. 나는 우선 내 손으로 받아든 작전계획을 펼쳤다. 영문으로 200쪽이 채 안 되는 책자 형태의 작전계획이었다. 나는 앞에서부터 책장을 넘기다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우리 국군 1사단의 작전 노선을 찾기 위해 마음이 앞서 나가고 있었다.



조금 느낌이 이상했다. 국군 1사단의 진공(進攻) 노선에는 평양이 보이지 않았다. 해주와 안악 방면으로 진출해 적의 후방을 공격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 나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느낌이었다. 다시 작전계획서를 들여다봤다. 역시 국군 1사단의 공격 방향은 평양이 아니었다. 미 1기병사단이 경부축 선을 따라 주공로(主攻路)를 맡고, 미 24사단이 그 우익을 맡아 구화리와 시변리를 거쳐 신계와 수안을 지난 다음에 평양으로 가도록 짜여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미군 2개 사단이 평양으로 진격한다는 내용이었다. 전체적인 작전 요도(要圖)에도 그렇게 나와 있었고, 세부적인 설명에도 그렇게 돼 있었다. 국군 1사단이 평양 진격에서 제외된 것이었다.



미군의 작전계획은 상세하기 이를 데 없다. 그리고 미군은 철저한 보급과 지원이 따르지 않으면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따라서 작전계획 자체가 보병과 포병, 정보와 작전, 인사와 군수 및 통신이 모두 얽혀 있는 아주 종합적인 내용이다. 그래도 백미는 군수 지원이 바탕을 이룬다. 전진하는 부대에 대한 치밀한 군수와 보급 계획이 뒤를 받쳐주지 못한다면 모든 계획은 정지된다. 주먹구구식으로 먼저 어디를 치고, 다음에 그를 받쳐준다는 어설픈 계획은 세워지지 않는다. 작전계획은 따라서 매우 두꺼우면서도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납득할 수 없었다. 이 땅의 주인공인 국군이 적군의 수도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빠진다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치열하면서도 처절했던 다부동 전투를 성공리에 끝내고 낙동강 전선에서 첫 반격에 성공한 국군 1사단이 아닌가. 우리 부대원들은 한결같이 공격의 선봉에 서서 수도 서울을 탈환하고 적도(敵都)인 평양을 점령하기 위해 칼을 갈고 있던 분위기였다. 내가 이 계획서를 그냥 가져가 그 명령을 그대로 전한다면 우리 국군 1사단의 사기는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칠 게 뻔했다. 나는 제 아무리 미군이 만든 정교하면서도 방대한 작전계획이라도 고칠 것은 고쳐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밴 브런트 참모장에게 “군단장이 지금 어디 계신가”라고 물었다. 참모장은 “군단장은 지금 감기가 심하게 걸려 아무도 만날 수 없는 상태”라고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나는 집요하게 달라붙었다. “그렇다면 위로라도 해야 할 것 아니겠느냐”고 내가 말했다.



밴 브런트 참모장은 그때서야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사무실 앞 주차장의 지휘 차량에서 치료 중”이라며 군단장이 있는 곳을 알려줬다. 나는 아무런 말도 없이 사무실 밖으로 걸어 나가려고 했다. 밴 브런트는 잠시 나를 제지한 뒤 “먼저 전화로 물어봐야겠다”고 했다. 그는 전화통을 들어 군단장과 통화를 했다. 밴 브런트 참모장은 전화기를 내려놓으면서 “오라고 한다. 한번 가 보라”고 말했다.



도청 청사 앞의 주차장에는 군단장의 지휘 차량으로 보이는 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제법 커 보였다. 놓여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 문을 열었더니 늘 시골 노인네의 인상이었던 프랭크 밀번 군단장이 반갑게 맞아줬다. 그는 방금 침대에서 일어난 기색이었다. “반갑다. 고생이 많다”면서 말문을 꺼낸 밀번 군단장은 “감기가 심하게 걸려 페니실린 주사를 맞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작은 침대를 한쪽으로 밀어낸 다음 자리에 나를 앉게 했다. 그러고는 위스키 한 잔을 따라 주는 것이었다.



나는 군단장이 따라준 위스키를 반 정도 들이켰다. 그러고는 내 허리춤에 간직하고 있었던 소련제 권총을 풀어 내려놓았다. 내 부하 중에 누군가가 노획한 소련제 장교 권총이라며 내게 선물한 것이었다. 나는 그 권총을 밀번 군단장에게 내밀면서 “반격 작전을 지휘하시느라고 고생이 많으셨다”면서 “권총을 작은 선물로 가져왔다”고 말했다.



밀번 군단장은 권총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나는 위스키 잔을 입에 대고 다시 조금 마셨다. 권총을 들여다보던 밀번 군단장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입술이 바짝 타들어가는 듯한 느낌에서 입을 열었다. “작전계획을 방금 받아서 봤다. 그런데….”



백선엽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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