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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핵심은 사람 유학의 원리와 딱 맞아”

8일 성균관대 퇴계인문관의 ‘유학 원론’ 수업에서 오석원 교수가 ‘사서오경’을 강의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8일 오후 6시30분. 성균관대 퇴계인문관 강의실.
한 학생이 일어섰다. “예를 갖추겠습니다.”

성균관대 유학대학원에서 만난 전직 CEO들

오석원(유학동양학부) 교수와 25명 남짓한 학생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나누고 수업이 시작됐다. 유학전문대학원의 유경과와 서예학과 학생이 함께 듣는 ‘유학 원론’ 강의다. 수업의 주제는 ‘사서(四書:『논어』 『맹자』 『대학』 『중용』)’와 ‘오경(五經:『시경』 『서경』 『역경』 『예기』 『춘추』)’이었다.

“유학은 고루하고 뒤떨어졌다는 인식이 있지만 사실은 개혁사상입니다. ‘온고이지신(溫古而知新)’이라고 하죠. 옛것, ‘古’는 성현의 말씀이에요. 역사를 뛰어넘는 보편성이죠. 그리고 핵심은 ‘新’이에요. 모방을 일단 거쳐 미래의 창조를 만드는 것이죠. 대단히 개혁적인 겁니다.”

열심히 필기하거나 생각에 잠긴 듯 수업에 몰두한 학생들 사이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신사 여럿이 눈에 띄었다. 노안(老眼) 탓에 안경을 썼다 벗었다, 화이트보드와 교재를 번갈아 보며 강의에 집중하고 있었다. 시간을 넘겨 강의한 오 교수가 오른쪽 앞줄에 나란히 앉은 세 학생을 보며 말했다.

“유학은 깨달음의 공부예요. 이론의 공부면 지겹고 따분한데 순간순간 깨닫고 행동하니까 감동이 있고 즐거워요. 이왕 유학 공부를 시작하셨으니 틀림없이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게 될 겁니다. 대신 중간에 포기하면 안 돼요. 『예기』에서 ‘군자유종(君子有終)이라고 했어요. 군자만이 마친다. 보통 시작은 잘해요. 일반 사람은 중간에 그치지만 군자만이, 지도자만이 끝을 내죠. 여기 이 과정에 들어온 건 내가 결정해 온 거예요. 끝까지 마쳤을 때 의미가 있는 겁니다.”

오 교수의 말에 빙긋 웃는 이는 이우희 전 에스원 사장. 그 옆엔 이중구 전 삼성테크윈 사장, 송용로 전 삼성코닝 사장이 앉아 있다. 맨 뒷줄엔 박재갑 국립중앙의료원장, SK그룹 부회장을 지낸 김영석 전 우석대 총장, 이완근 신성홀딩스 회장이 나란히 앉았다. 이날 수업엔 빠졌지만 전윤철 전 감사원장, 박노빈 전 에버랜드 사장도 재학 중이다. 대부분 신입생이지만 박재갑 원장은 4학기째다.

동서양 사상 융합하면 21세기의 새 모델 될 것
명사들 사이에 유학(儒學) 공부 바람이 불고 있다. 진원지는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유교경전·예학 전공(유경과)과 서예과를 합쳐 25명을 뽑은 올 전형엔 40명 넘게 지원했다. 지원생의 절반가량이 낙방했다. 대학원 행정실 김재수 계장은 “어제도 대기업 사장 비서실에서 문의 전화가 왔다”며 “특수대학원이지만 현직에 있으면서 병행하기는 쉽지 않은 공부이다 보니 은퇴 후 전통 가치를 찾고자 학교를 찾는 분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송용로 전 사장도 이런 경우다. 그는 “은퇴 후 지금까지 부족했던 점, 살아가는 방법을 다시 보는 것이 긴요하겠다고 생각했다. 『논어』가 강조하는 사람과 사랑이 모든 사물의 이치와 행동에 적용되는 것이 요즘 마음에 와 닿는다”고 했다.

40여 년을 경영 일선에 섰던 김영석 전 총장은 고교 동기인 유학동양학부 송하경 명예교수의 권유를 받고 입학했다. “서구식 경제·경영학을 대학에서 배우고, 기업에서 활용하면서 항상 허전함이 있었는데 궁금했던 것이 손에 잡히는 느낌”이라는 그는 “정책입안자·정치인·기업가·교육자에게 권하고 싶은 강의”라고 했다. 또 “경영의 핵심은 사람이고, 지식정보화 사회가 될수록 그 중요성은 커지는데 유학의 기본 원리가 인본주의 아닌가. 커버전스, 융합의 시대에 동양·서양 사상이 만나면 21세기의 새 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대학원장으로 수강생들을 면접한 김성기 교수는 “대체로 살아가면서 느낀 것을 확인하고 싶다는 얘기가 많았다. 은퇴 후 삶을 돌아볼 필요를 느낀 사람도 있고, 업무에 필요했던 도구들이 내 삶과 분리돼 있는 느낌을 받았다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우리의 뿌리를 찾겠다는 필요성과 가치에 대한 갈구, 정체성에 대한 요구도 있는 것 같다”고 유학 바람이 부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우희 전 사장 역시 “한국인의 정신과 사고 방식에 스며들어 있는 게 유학인 것 같아 근원을 체계적으로 배워 보고 싶었다”고 했고, 이완근 신성홀딩스 회장도 “동양의 DNA인 유학을 현대경영에 접목시켜 보고 싶어 입학했다”고 했다.

1박2일 현장답사도 함께…후끈한 학구열
명사들의 유학 바람에 물꼬를 튼 이는 이 대학의 서정돈 총장이다. 지난해 3월 이 대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은 논문을 준비 중이다. 그는 “성균관대에 근무하면서 유학의 가르침과 함께 생활하게 됐다”며 “지난해 초 교수로서의 정년을 마치면서 어떤 공부를 할까 생각했을 때 유학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고 했다. 서 총장은 서울대 의대를 나온 내과 의사 출신이다. 그는 유학 공부를 결심한 배경을 이렇게 말했다.

“평생 의사·교육자로 살아왔다. 의료·교육이 추구하는 가치도 결국은 공익과 윤리·도덕이라는 점에서 기본 원칙은 공자와 『논어』와 통하는 것 같다. 하지만 전문교육이 발달하면서 기초 교양교육이 잘 따라가고 있는지, 가치교육은 소홀하지 않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서 총장은 ‘유학의 교육철학으로 본 글로벌시대 대학 발전의 방안’이란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다. 그는 “공자의 가르침은 인(仁)에서 출발하는데,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를 일컫는다”며 “개인주의가 심화되는 시대일수록 기본적인 소양교육으로 ‘인’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 총장은 논문을 마치면 박사 과정에 진학할 예정이라고 한다.

유학대학원은 1988년 설립됐다. 최근 유학 붐이 불고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대학원도 바뀌고 있다. 학부에서 유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을 위한 수업에 대한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대학원장이 전담하던 ‘유학 원론’ 수업은 여러 교수가 함께 강의하는 ‘팀 티칭’으로 바뀌었다.

김성기 교수는 “학문적 요구를 채우면서 경륜과 의지를 가진 분들에게 맞는 접근 방법도 찾아야 한다. 너무 딱딱하지 않으면서 흥미로운 수업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에 대해 “질문도 진지하고 공부하겠다는 의지가 대단하다”고 평가했다.
1박2일의 학술답사에도 참가했던 박재갑 원장은 한국 종교를 연구하는 ‘한국종교발전포럼’을 만드는 등 열성적이다. 성균관대 총동창회장을 맡고 있는 이완근 회장은 성균관대 최고경영자 과정을 마친 뒤 유학대학원에서 학업을 이어 가고 있다. 이 회장은 “최고경영자 과정이 인적 네트워크에 도움이 많이 되는 과정이었다면 유학대학원은 완전히 학구적인 분위기다. 늘 배운 걸 다시 되새기고 예습도 한다. 논문도 써야 하니까 수업을 빠지지 말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서정돈 총장은 지난해 9월 국제유학연합회(국제유련) 제4기 이사장에 추대됐다. 국제유련은 한·중·일 3국은 물론 동양철학을 연구하는 21개국이 참여하는 일종의 ‘유학의 유엔’이다. 하반기에 열리는 국제유련의 국제 학술대회에서 성균관대 유학대학의 역할도 커지게 됐다.

김성기 교수는 “서구 문명이 들어온 이후 지난 100년간 우리는 전통 유학사상을 지키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이젠 다른 시대로 접어드는 것 같다. 유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은 성균관대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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