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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서의 상체, 마라토너의 심장, 파일럿의 판단력 겸비

미하엘 슈마허가 3월 30일 말레이시아 F1 그랑프리 기간에 열린 팬들과의 만남 행사에서 단상에 올라 팬들의 환호에 미소로 답하고 있다. [쿠알라룸푸르 AP=연합뉴스]
미하엘 슈마허(41)가 머리에 꽉 끼는 헬멧을 눌러쓰자, 눈가 주름이 한층 더 도드라졌다. 깊이 음각된 주름은 슈마허의 도전이 어떤 의미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37세이던 2006년 마지막 레이스를 펼친 슈마허가 41세가 돼서 다시 서킷으로 돌아왔다. F1을 떠난 이후 슈마허가 단 한 번도 F1 머신에 앉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벤트가 아니라 ‘일’이다.

10월 영암 F1 그랑프리에서 만날 ‘스피드의 전설’ 슈마허


포뮬러 원(F1)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도 슈마허의 이름은 아는 경우가 많다. 축구에서 펠레, 농구에서 마이클 조던 같은 존재다. 펠레, 조던과 마찬가지로 슈마허의 이름 앞에도 흔히 ‘황제’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슈마허는 이미 F1에서 이룰 만한 모든 것을 이뤘다. 91번의 그랑프리 우승, 일곱 번의 시즌 월드 챔피언 타이틀은 당분간 깨지기 힘들 기록이다.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지켜도 그의 명성엔 흠집이 갈 게 없다. 하지만 그는 모험을 택했다. 자칫 그가 쌓아온 명예가 무너질 수도 있지만 그는 두려움 없이 전진했다.
 
세 차례 레이스 결과는 24명 중 10위
2010년 시즌 개막을 하기 전부터 F1 팬과 전문가들은 ‘과연 돌아온 황제는 여전히 세계 최고의 스피드를 뽐낼 수 있을 것인가’를 두고 설전을 벌였다. 지난달 14일 바레인 그랑프리를 시작으로 호주 멜버른, 말레이시아 세팡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올 시즌 19차례 그랑프리 중 3개 대회가 열렸다. 적지 않은 팬들은 슈마허가 시작부터 멋지게 부활하기를 갈망했다. 그러나 현실은 동화가 아니다.

시즌 개막전에서 그는 6위를 차지했다. 호주에서는 10위를 기록했다.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시즌 세 번째 그랑프리에서는 열 번째 바퀴를 돌던 중 차량 이상으로 레이스를 포기했다. 세 번의 대회를 합친 시즌 중간 순위에서 슈마허는 24명의 F1 드라이버 중 10위에 랭크됐다.

슈마허의 시대는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슈마허의 모국인 독일 모터레이싱계의 실망이 크다. 선정성이 강한 독일의 대중지 빌트는 ‘슈마허가 F1에 처음 데뷔했을 때보다 저조한 성적’이라고 야유했다. 슈마허는 데뷔 첫해 초반 세 경기에서 4위(남아공GP)-3위(멕시코GP)-3위(브라질GP)를 기록했다. 하지만 독일 언론이 혹독하게 슈마허를 비판하는 건 그에 대한 기대와 애정이 얼마나 높은지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슈마허는 여전히 뉴스의 중심이다. F1 전문가들은 ‘슈마허의 컴백은 실패인가’라는 질문에 단호히 고개를 흔들고 있다. 오히려 슈마허라는 ‘시한 폭탄’이 언제 터질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BBC의 F1 평론가 마틴 브런들은 “아직 우리는 슈마허의 잠재력을 보지 못했다. 그는 매주 향상되고 있다”그 말했다.

F1은 가혹한 체력전이다. 좁은 콕핏(머신의 운전석)에 앉아 약 두 시간 동안 300㎞ 안팎의 거리를 주파하면 체중이 4~5㎏씩 빠진다. F1 머신은 100억원을 호가하지만 에어컨처럼 스피드를 좀먹는 편의 장치는 없다. 말레이시아 같은 곳에서는 지열 때문에 콕핏의 온도가 섭씨 50도에 육박한다. 급커브를 돌 때는 자기 체중의 4~5배에 달하는 원심력이 목 근육에 가해진다. 속도가 높아지면 시야가 야구공처럼 좁아지지만 주변의 지형과 경기 상황을 알리는 깃발을 체크하면서 전체 판도를 읽어야 한다.

그래서 F1 드라이버가 되려면 복서의 상체, 마라토너의 심장, 비행기 조종사의 판단력을 겸비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 점에서 슈마허는 문제가 없다. 슈마허는 F1 복귀를 앞두고 일주일에 30시간 넘게 혹독한 훈련을 소화했다. 목 근육을 강화하기 위해 쇠로 만든 훌라후프를 목에 걸고 돌렸고, 지구력을 키우기 위해 하루에 수 시간씩 사이클을 탔다. 집중력을 꾸준히 유지하기 위해 암벽 등반을 하기도 했다. 슈마허는 지난해 목 부상으로 고생했지만 지루한 체력 훈련을 통해 극복해 냈다. TV를 시청할 때도 헬멧을 쓰고 본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독종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91차례 그랑프리 우승 기록한 F1의 메시아
슈마허는 전성기를 페라리에서 보낸 후 은퇴했다. 페라리는 미국 메이저리그의 뉴욕 양키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비견되는 F1 최고의 팀이다.

뉴욕 양키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만년 우승후보인 것처럼 페라리의 머신은 늘 최상위권이다. 가장 많은 자본을 투자하고, 가장 좋은 성적을 내서, 가장 많은 팬의 사랑을 받으며 가장 많은 수익을 거두는 팀이다. 지난해까지 슈마허는 페라리의 기술고문을 맡고 있었다. 하지만 슈마허는 55년 만에 F1 무대에 복귀한 독일이 자랑하는 ‘삼각별’(메르세데스 벤츠의 상징) 메르세데스를 선택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내로라하는 팀이지만 모터레이싱에서는 페라리와는 비교가 안 되는 팀이다.

경마에서 말과 기수가 경기력에 미치는 영향을 두고 흔히 ‘마칠기삼’(馬七騎三)이라고 한다. F1도 유사하다. 드라이버의 기량도 중요하지만 머신의 성능이 승패를 가르는 큰 변수다. 올 시즌에는 페라리, 맥라렌, 레드불의 머신이 강세다. 메르세데스는 3강과 다소 차이가 나는 4~5위권 팀이다. 12개 팀 24명의 드라이버 가운데 슈마허보다 성능이 좋은 머신을 타고 달리는 레이서가 최소 6명은 된다는 의미다.

김재호 MBC ESPN 해설자는 “만일 슈마허가 친정팀인 페라리에서 새 출발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거뒀을 것이다. 3년의 공백을 딛고 처음 출전한 대회에서 6위를 차지한 것은 매우 긍정적인 성적”이라고 말했다. 슈마허는 차량을 어떻게 고칠지 기술적 조언을 잘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차량과 드라이버가 좀 더 교감하며 친밀해지는 시간도 필요하다. 메르세데스의 전통과 기술적 잠재력에 슈마허의 노하우가 덧씌워진다면 ‘메시아의 부활’이 가능하다. 하우그 메르세데스 레이싱팀 부사장은 “우리 머신은 아직 충분히 빠르지 않다. 하지만 5월 유럽에서 그랑프리가 열리면 지금과는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한두 달 뒤 우승해도 놀랍지 않아
슈마허가 제위에서 물러나 있는 동안 F1의 권력 지형도는 요동을 쳤다. 2006년 은퇴할 때 슈마허에 대적할 만한 상대는 스페인의 페르난도 알론소 정도였다. 하지만 ‘제왕’이 사라진 틈을 타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했다. 루이스 해밀턴은 세계 최연소 시즌 챔피언에 오르며 ‘F1의 검은 황제’라는 닉네임을 달았다. 독일 출신 천재 드라이버 세바스티안 베텔은 “내 이름 앞에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붙이지 말라”고 요구하는 사나이다. ‘제2의 슈마허’라 부르지 말라는 뜻이다. 베텔은 슈마허가 탈락한 말레이시아 그랑프리에서 가장 먼저 골인했다. 이 밖에 지난해 시즌 챔피언 젠슨 버튼을 비롯해 메르세데스에서 슈마허의 팀 동료인 니코 로스베르크 역시 슈마허보다 올 시즌 성적이 좋다.

하지만 슈마허는 미소를 잃지 않고 있다. 그는 “내 성적에 만족한다. 인생은 생각하는 게 그대로 실현되는 곳이 아니다.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한계를 잘 알고 있기에 더 노력하게 된다. 내가 정말로 즐거운 것은 그런 노력의 순간들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우리 팀은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슈마허와 메르세데스가 F1에 완전히 적응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1년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F1 전문가의 일반적인 전망이다. 화려하게 부활을 꿈꾸며 슈마허는 가시관을 쓰고, 가장 높은 곳을 향해 오르는 힘겨운 시간을 묵묵히 견디고 있다. 메르세데스와 3년 계약을 맺은 그는 “시즌은 길다”고 말했다. 조급한 팬들과 달리 그는 멀리는 2년 앞을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그가 한두 달 뒤 1위로 골인한다고 해서 이변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베네통 시절 동료였던 프랭크 디니는 “슈마허는 냉정하고 이기적이며 우승을 하기 위해 뭐든지 할 사람”이라고 말했다. 올해 10월 24일 전라남도 영암에서 코리아 그랑프리가 열린다. 올해 19라운드 중 17번째 레이스다. 코리아 그랑프리 관계자들은 기왕이면 슈마허가 코리아 그랑프리에서 재기해 주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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