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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기의 시장 헤집기
그러나 펀드 환매 사태가 문제였다. 2008년 주가가 갑작스레 폭락해 손을 쓰지 못했던 세계 각국의 펀드 투자자들은 지난해 증시가 회복흐름을 보이자 펀드 환매에 나섰다. 한국에선 최근 코스피지수가 1700선을 회복하자 환매 규모가 더욱 커지고 있다. 4월 들어 하루 5000억원 안팎의 뭉칫돈이 빠져나가고 있다.
올들어 다른 나라에선 펀드로 다시 돈이 들어오고 있는 것과 전혀 딴판이다. 여의도 증권가에선 “펀드런이 터지는 것 아니냐”고 걱정한다. 뱅크런처럼 사람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펀드에서 일단 돈을 빼려 들지 모른다는 우려다.
그런데 미·유럽 금융계에선 펀드런이란 용어를 쓰지 않는다. 그런 말 자체가 없다. 다시 말해 펀드런은 콩글리시인 것이다. 왜 그럴까. 펀드런이란 용어를 만들어 쓸 법도 하지만, 펀드에서의 자금인출 사태는 뱅크런에 필적할 만큼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판단에서일 게다. 뱅크런이 오면 은행들은 더 이상 돈을 내줄 수 없는 지급불능 사태룰 맞이한다. 대부분의 예금이 장기 대출로 나가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금융시스템 붕괴와 실물경제 침체를 초래한다.
이에 비해 펀드 환매는 지급불능 사태로 직결되지 않는다. 펀드에 들어있는 주식과 채권을 즉각 증시에 내다 팔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증권 값이 급락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금융시스템이 무너지지 않는다. 값이 싸지면 누군가 사러 들어오기 마련이다. 펀드런이란 콩글리시 단어에는 엄살이 끼어있다고 봐야 한다. 정부에 뭔가 도움을 달라는 신호다. 외환위기 전에는 그게 통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이 달라졌다. 한국의 펀드환매 사태는 펀드 운용사와 판매사가 마케팅 드라이브를 걸다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금융의 정도(正道)로 복귀해 고객 서비스를 개선하는 것만이 펀드런을 막을 근본적 처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