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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런 펀드런

대공황 직후인 1930년 골드먼삭스의 회장 자리에 오른 시드니 와인버그(1891~1969). 39년간 이 회사를 이끌며 세계 최고 투자은행의 기틀을 닦은 그는 뱅크런(예금 인출 사태)에서 금융의 기본을 터득했다고 한다. 가난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고 뉴욕에서 신문배달 등의 일을 닥치는대로 하던 와인버그는 16세 때 ‘1907년 공황’을 목격했다. 예금을 빼가기 위해 은행 앞에서 아우성치는 사람들을 본 그는 `이거다` 싶어 줄을 대신 서주는 일에 나섰고 큰 재미를 봤다. 그는 뱅크런을 통해 돈의 쏠림 현상과 이를 역으로 활용하는 승부 근성을 배웠다.

김광기의 시장 헤집기

뱅크런은 16세기 근대적 은행이 등장한 이후 주기적으로 끊임없이 반복됐다. 미국에서도 경제에 거품이 끼었다 빠지곤 하면서 10~20년에 한번 꼴로 뱅크런이 터졌다. 뱅크런이 잡힌 것은 대공황 직후인 1933년 미 정부가 연방예금보험공사를 만들어 은행 예금의 지급을 보장하는 예금자보호제도를 도입한 이후부터다. 이 제도는 세계 각국으로 보급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각국의 상업은행에서 뱅크런이 거의 터지지 않은 것도 그 덕택이다.

그러나 펀드 환매 사태가 문제였다. 2008년 주가가 갑작스레 폭락해 손을 쓰지 못했던 세계 각국의 펀드 투자자들은 지난해 증시가 회복흐름을 보이자 펀드 환매에 나섰다. 한국에선 최근 코스피지수가 1700선을 회복하자 환매 규모가 더욱 커지고 있다. 4월 들어 하루 5000억원 안팎의 뭉칫돈이 빠져나가고 있다.

올들어 다른 나라에선 펀드로 다시 돈이 들어오고 있는 것과 전혀 딴판이다. 여의도 증권가에선 “펀드런이 터지는 것 아니냐”고 걱정한다. 뱅크런처럼 사람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펀드에서 일단 돈을 빼려 들지 모른다는 우려다.

그런데 미·유럽 금융계에선 펀드런이란 용어를 쓰지 않는다. 그런 말 자체가 없다. 다시 말해 펀드런은 콩글리시인 것이다. 왜 그럴까. 펀드런이란 용어를 만들어 쓸 법도 하지만, 펀드에서의 자금인출 사태는 뱅크런에 필적할 만큼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판단에서일 게다. 뱅크런이 오면 은행들은 더 이상 돈을 내줄 수 없는 지급불능 사태룰 맞이한다. 대부분의 예금이 장기 대출로 나가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금융시스템 붕괴와 실물경제 침체를 초래한다.

이에 비해 펀드 환매는 지급불능 사태로 직결되지 않는다. 펀드에 들어있는 주식과 채권을 즉각 증시에 내다 팔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증권 값이 급락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금융시스템이 무너지지 않는다. 값이 싸지면 누군가 사러 들어오기 마련이다. 펀드런이란 콩글리시 단어에는 엄살이 끼어있다고 봐야 한다. 정부에 뭔가 도움을 달라는 신호다. 외환위기 전에는 그게 통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이 달라졌다. 한국의 펀드환매 사태는 펀드 운용사와 판매사가 마케팅 드라이브를 걸다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금융의 정도(正道)로 복귀해 고객 서비스를 개선하는 것만이 펀드런을 막을 근본적 처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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