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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티쌤과 함께하는 교과서여행⑤ -석촌동 고분군

<관련교과>

4-2 사회 옛도읍지와 박물관

백제와 고구려의 무덤은 왜 닮았을까?

6-1 사회 삼국의 문화에 대하여 알아보자.

<교과서여행 추천코스>

석촌동 고분군→삼전도비



사적 제 243호로 지정된 문화유산



심상치 않은 돌무덤들이 모여있는 유적지가 있다. 서울시 송파구 석촌동에 위치한 석촌동 고분군이다. 한성백제 초기단계의 무덤으로 알려진 이곳에는 1700여년을 거슬러 올라간 백제 초기의 이야기들이 숨어있다.



석촌동은 예로부터 돌무더기들이 많아 ‘돌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졌다. 石(석)村(촌) 이라는 지명 또한 한자어 그대로 해석하면 ‘돌 마을’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88서울 올림픽을 개최하기 전까지만 해도 석촌동의 존재를 잘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올림픽을 하기 위해 잠실 일대를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사실들이 나타났다. 이 돌무더기들이 원래 무덤이었음이 밝혀진 것. 백제초기 지배층 들의 무덤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귀한 무덤들도 여러 기가 발굴되면서 이곳은 비로소 우리 앞에 진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이 무덤위에 집을 짓고 살던 사람들도 있었으며 고추농사를 짓기도 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처럼 문화재에 대한 인식과 정보의 부재로 많은 무덤들이 훼손됐다. 약 89기에 달했던 무덤들 중 현재 남아있는 것은 매우 적다. 남은 무덤들은 오늘날 초기 백제의 역사에 대해 살펴볼 수 있어 사적 제 243호로 지정돼 보존하고 있다. 지난회 살펴본 공주(웅진) 지역의 백제무덤들은 대부분 ‘굴식돌방무덤’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반해 석촌동 고분군을 대표하는 ‘적석총’ 고분은 고구려의 ‘장군총’과 그 모양과 형태가 매우 흡사하다.



백제 시조는 고구려 동명성왕의 아들



석촌동 고분군을 둘러보다보면 의문이 생길 것이다. 백제의 무덤임에도 고구려의 양식과 비슷한 현상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4호분부터는 차차 고구려식에서 백제식으로 무덤양식이 변모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는 백제의 시조가 고구려와 연관돼 있는 점에서 찾아낼 수 있다. 백제의 시조인 ‘온조’는 고구려의 동명성왕의 아들이다. 즉 온조는 고구려출신의 왕자였던 것이다. 초기 백제인들은 고구려에서 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고구려 문화의 영향 아래 놓여있었고 문화적인 코드를 가장 잘 보여주는 무덤에 그 흔적을 남겼다.



한 장소에 각기 다른 무덤양식들이 존재하는 것을 비교해보며 둘러보는 것도 재미있는 교과서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석촌동 고분군에서 조금 더 주택가 골목쪽으로 들어가면 병자호란때 청나라군이 인조의 굴욕적인 항복을 기념하기위해 세운 전승비인 ‘삼전도비’를 둘러볼 수 있다. 우리에게는 치욕적인 역사가 아닐 수 없지만 다시는 그러한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석촌동 고분군을 둘러본 후 꼭 방문해 볼 것을 권한다.



석촌동 고분군에는 상주하고 있는 문화해설사가 있다. 전문가의 깊이있는 설명을 듣다보면 과거 초기 삼국시대의 살아있는 역사현장에 대한 목소리를 가슴 깊이 새길 수 있다. 신록이 푸르른 날이면 산책하기 좋게끔 공원화가 잘 돼있어 가족 단위 나들이 하기에도 좋다. 반나절 코스의 짤막한 교과서여행 장소로 손색이 없는 곳이기도 하다.



[사진설명]석촌동 고분군엔 고구려 양식과 비슷한 무덤이 많다.(사진 위) 고분군 인근에서 병자호란때 청나라군이 세운 전승비인 ‘삼전도비’를 둘러볼 수 있다.(사진 아래)



글·사진=김수정 서울 고명초 교사

blog.naver.com/bettyb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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