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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 구근 하나가 소값의 46배, 이성 잃은 세상을 조롱

1 튤립광풍 풍자화(1640년경), 얀 브뤼헐 2세(1601~1678) 작, 패널에 유채, 31x49㎝,프란츠 할스 박물관, 하를렘
루이스 캐럴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하얀 장미를 페인트로 빨갛게 칠하는 카드 정원사들이 나온다. 그들은 서로 말다툼하다가 한 명이 다른 한 명에게 이렇게 소리친다. “하트의 여왕님이 네 목을 댕강 잘라 마땅하다고 하시더라… 네가 요리사에게 양파 대신 튤립 알뿌리를 갖다 주었기 때문이지.”

문소영 기자의 명화로 보는 경제사 한 장면 <4> 튤립을 거래하는 원숭이들

어릴 때 이 부분을 읽고는 튤립 구근이 정말로 양파 같이 생겼는지 굉장히 궁금했다. 나중에 볼 기회가 있었는데, 과연 누렇고 둥근 모습이 겉껍질을 벗기지 않은 양파와 비슷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더 나중에 19세기 스코틀랜드의 언론인 찰스 매케이(1814~89)가 쓴 고전 『대중의 미망과 광기』(1841)를 읽고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아하, 캐럴은 아마 이 책을 읽고 여기 소개된 튤립 구근 사건을 패러디한 것이었겠구나’ 하고.

매케이의 책에 나오는 에피소드는 다음과 같다. 1630년대에 한 네덜란드 상인이 동방무역을 도운 선원을 집에 초대해 청어 요리를 대접했다. 그런데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선원은 청어를 더욱 맛있게 먹겠다는 일념에서 상인의 책상에 놓여 있던 양파를 곁들였다. 돌아온 상인은 그가 양파를 먹는 것을 보고 ‘으헉’ 하며 뒷목을 부여잡았다. 그것은 사실 양파가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비싼 ‘셈퍼르 아우구스투스’라는 품종의 튤립 구근이었기 때문이다. 상인은 선원을 고소했고, 선원은 양파인 줄 알고 튤립 알뿌리를 먹어 치운 죄로 몇 달간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이 일화를 보면 남의 집에 가서 뭔가 먹을 때는 주인에게 먼저 물어보고 먹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보다도 대체 튤립 구근이 얼마나 비쌌기에 그걸 먹었다고 옥살이까지 하게 되나 궁금해진다. 매케이에 따르면 셈퍼르 아우구스투스는 1633년에는 한 뿌리에 5500플로린에 팔렸고 1636년에는 12에이커(4.86헥타르)의 땅과도 바꿀 수 없었다고 한다. 황소 한 마리가 120플로린이었고 돼지 한 마리가 30플로린 하던 시절에 말이다.

2 꽃 정물화 (1644년) 한스 볼론기르(1600~1675) 작, 패널에 유채,27x20.5㎝, 프란츠할스 박물관, 하를렘
대체 어떻게 생긴 튤립이기에? 한스 볼론기르(1600~75)의 그림(사진 2) 속에서 이 귀하신 꽃을 구경할 수 있다. 볼론기르는 당시 유행하던 꽃 정물화 전문 화가였고 네덜란드 꽃 거래의 중심지인 하를렘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이 시기 꽃 정물화의 관습은 가장 값진 꽃을 맨 위쪽에 배치하는 것인데, 이 그림에서는 튤립 중에서도 가장 희귀하고 비쌌던 셈퍼르 아우구스투스가 맨 위쪽에 자리 잡고 있다. 흰 바탕에 진홍색 줄무늬가 타오르는 불꽃처럼 그려져 있어 확실히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튤립 한 뿌리가 그렇게 비쌀 수가?

1630년대 네덜란드에서는 셈퍼르 아우구스투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튤립, 그중에서도 희귀한 줄무늬 튤립의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치솟고 있었다. 튤립은 1500년대 중반에 오스만 투르크 제국으로부터 유럽에 처음 들어왔는데, 이 ‘동방에서 온 명품’을 가져야 축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 네덜란드 부유층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꽃 자체에 대한 인기와 그 희소성으로 가격이 상승했고, 그 다음에는 튤립 값이 계속 오르리라는 기대로 사람들이 너도 나도 튤립을 사들이면서 가격이 미친 듯이 올랐다. 매케이에 따르면 “심지어 굴뚝 청소부까지 튤립 투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그러나 1637년에 거품이 빠지면서 튤립 가격은 갑자기 폭락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정보기술(IT) 주식 버블이나 부동산 버블 등이 문제가 될 때마다 투기와 버블의 역사적 선례로 언급되곤 하는 튤리포마니아(Tulipomania), 즉 튤립광풍이다. 어떤 물건에 대한 별다른 정보 없이, 그 물건의 근본적인 가치에 대한 고찰 없이, 단지 그 물건이 지금까지 값이 올랐기 때문에 앞으로도 오르리라는 기대로 그 물건을 사는 것을 보통 투기라고 한다. 그리고 너도나도 이런 식으로 투기를 해서 값이 더욱 부풀게 만들 때, 그 값은 맥주 위로 뭉게뭉게 솟아올라 맥주가 실제보다 많아 보이게 만드는 거품, 버블에 비유되는 것이다.

튤립광풍은 매케이의 글을 통해 유명해졌는데, 현대의 어떤 경제사학자들은 매케이의 글이 과장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튤립 투기는 그렇게 광범위한 것이 아니었고 일부 상인들 사이에 국한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플랑드르의 화가 얀 브뤼헐 2세(1601~78)가 1640년경에 그린 ‘튤립광풍 풍자화’(사진1)를 보면 매케이의 글이 그렇게 과장된 것 같지도 않다.

그림 속 왼쪽의 화단에는 튤립이 만발한데 그중 많은 것이 줄무늬를 지니고 있어 값비싼 튤립임을 짐작할 수 있다. 원숭이 한 마리가 그 앞에 서류를 들고 서 있다. 이 그림을 소장한 프란츠 할스 박물관에 따르면 이 원숭이는 검을 차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귀족 신분이며 값진 튤립의 목록을 뿌듯한 마음으로 읽고 있는 것이다. 가운데에는 역시 튤립 투기에 뛰어들까 망설이는 검을 찬 원숭이가 보인다. 그 오른쪽으로는 튤립 알뿌리의 무게를 달고 있는 원숭이도 보이고, 튤립 대금으로 받은 금화와 은화를 세고 있는 원숭이들도 보인다.

하지만 그림 맨 오른쪽에는 튤립 버블이 붕괴된 뒤의 처절한 상황이 펼쳐진다. 한 원숭이는 내팽개쳐진 붉은 줄무늬 튤립, 한때는 그토록 비싼 것이었지만 이제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그 튤립들을 향해 적나라하게 소변을 갈긴다. 그 뒤로 한 원숭이가 역시 쓸모 없어진 노란 줄무늬 튤립을 든 채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어디론가 들어가고 있다. 박물관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튤립 투기로 빚더미에 앉아 법정에 끌려가는 것이다. 법정 안에도 튤립을 든 채 울고 있는 원숭이가 있다. 저 멀리에는 ‘네가 투자하라고 했잖아’ ‘아니야, 네가 부추겼잖아’ 하며 결투까지 벌어졌다.이들이 사실 원숭이가 아니라 사람들이다. 시니컬한 그림으로 유명한 대 피터르 브뤼헐의 손자이기도 했던 얀 브뤼헐은 튤립 투기자들을 멍청한 원숭이로 그려 조롱한 것이다.

하지만 튤립 투기에 뛰어든 사람들이 과연 모두 바보였을까? 매케이는 합리적이고 현명한 개인도 집단행동에 가담하면서 비합리적이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보았고, 그런 예로 연금술 열풍, 마녀사냥 등등과 함께 튤립광풍을 소개한 것이었다. 튤립 거래자들은 군중의 열기에 휘말려 튤립 값이 언젠가 떨어지리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고 그는 보았다.

뿐만 아니라 언젠가 튤립 값이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투기에 뛰어든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심리와 튤립광풍의 자세한 과정은 다음 글에서 또 다른 그림들과 함께 소개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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