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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 무대 선택했더라면 원작 의도 살았을텐데...

요즘 때아닌 오페라 초연이 줄을 잇고 있다. 때가 아니라고 한 것은 세계적으로 경기가 썩 좋지 않기 때문이고, 진작 했어야 할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장충동에 국립극장이 문을 연 1970년대엔 봇물 터지듯 오페라 초연이 많았다. 그 후 한동안 뜸하다 정은숙씨가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으로 재임하는 동안 기억할 만한 초연작이 늘기 시작하더니 이소영씨가 그 뒤를 이으면서 전에 없는 ‘초연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다.

서울 충무아트홀서 4월 5~7일 국내 초연한 한국오페라단 ‘유디트의 승리’

그리고 올해 한국오페라단이 5일부터 사흘간 비발디의 오페라 ‘유디트의 승리’를 충무아트홀에서 초연하면서 그 대열에 동참했다. 내친김에 다음달 로시니의 ‘세미라미데’도 초연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주로 국립오페라단 주도로 이어져 왔던 초연의 향연에 민간 오페라단이 당당히 그 명함을 내밀고 있는 모양새다. 민간 오페라단의 초연 시도가 뜸한 것은 안정적인 재원 확보가 힘들기 때문이다. 흥행을 예측하기 어렵고 변수가 많은 모험이다.

그런데 달리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식상한 작품을 되풀이하는 것보다는 초연이 더 매력적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거듭된 학습효과로 관객들의 눈높이가 어지간히 올라간 상황에서 인기가 많은 작품이 더 위험할 수도 있다. 게다가 최초라는 것 자체가 뉴스의 초점이고 호기심의 대상이다. 혹시 좀 미흡하더라도 처음 하는 일이니 그러려니 넘어가기가 십상이다.

7일 마지막 공연을 보며 ‘혹시 이래서 초연을 결심했나’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원래가 오라토리오(대규모 합창곡)로 만든 작품이라 무대를 잘 꾸미고 화려한 의상을 입힌다고 해서 썩 달라질 여지가 별로 없다. 제아무리 비발디라 해도 오페라는 기악이나 다른 음악 장르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게다가 이 곡은 흥행이 목적이 아니라 승전을 축하하기 위한 행사용으로 만들어졌다. 덧붙여 비발디가 가르쳤던 고아원 소녀들로만 무대를 해결해야 했으니 그 제약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한마디로 하필이면 왜 이 작품이었나를 이해할 수가 없다. 차라리 어느 연구소가 했다면 학술적인 의미라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이와 유사한 성격의 작품을 모아 시리즈로 엮었다면 전체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하나로 이해할 수도 있었겠다.

표방한 대로 원작의 의도를 살릴 생각이라면 입체적인 무대를 아예 포기하고 평면을 이어가는 방식을 택해야 했다. 동적이기보다는 정적인 요소를 살려야 했다. 마치 슬라이드가 한 컷 한 컷 지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네 개의 기둥을 세워 공간을 표시했지만 차라리 회화의 액자 같은 틀을 세워서 곡마다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하는 것이 나을 뻔했다. 누군가 노래하는 동안 바로크풍의 화려한 의상과 분장을 한 다른 출연진은 상황과 정서에 맞는 위치와 포즈를 취한 채 멈춰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주목할 만한 볼거리가 될 것이다.

처음과 끝을 포함한 단 몇 차례의 합창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순서가 독창으로 이어지고 있으니 노골적으로 정적인 연출이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게 영 단순하고 밋밋하다 싶으면 주인공 유디트가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장면부터 평면을 입체로, 정적인 구도에서 동적인 구도로 전환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또, 지루하니 길이를 줄일 생각이었다면 이보다는 더 줄였어야 했다. 어차피 뻔한 줄거리라면 연결이나 흐름을 과감히 포기하고 그림이 되는 쪽을 선택해서 살리는 것이 나을 뻔했다. 반주 가운데 특정 악기가 두드러지는 아리아를 중심으로 등장하는 악기마다 무대 위로 올려 보여주는 것도 고려할 법했다. 음악의 흐름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차원에서 오케스트라가 무대 위에 올라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초연인 만큼 연출과 지휘는 그렇다 치고 합창을 제외한 다섯 명의 출연진이 모두 유럽에서 초빙된 것이 못내 아쉽다. 그 가운데 셋은 국내에는 드문 콘트랄토(여성의 가장 낮은 음역)이니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나머지 두 명의 소프라노까지 외국에서 불러야 했는지 모르겠다. 물론 귀가 솔깃할 만큼 뛰어난 기량들이 아니었으니 하는 말이다. 크게 성량이나 높낮이가 문제되는 곡들이 아니니 정확하고 깔끔한 맛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더러 음정들이 불안했다. 게다가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음량은 그 규모를 고려하더라도 너무 작다. 처음과 끝만이라도 확 터졌어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소리가 작은 합창단을 번번이 무대 뒤에 두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유럽의 거장 연출가인 루이지 피치가 연출한 작품인가 했더니 그의 제자인 마시모 가스파론이라는 사람이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피치의 의사를 존중해 결정한 작품인 듯한데 그렇다면 피치가 직접 나섰어야 했고 이보다는 더 잘했어야 했다. 그래서 더욱 5월에 있을 ‘세미라미데’ 초연이 기다려진다. 대가라면 두 번의 실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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