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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졸속 개발이 부른 참사 … 와우아파트 와르르 무너지다

입주 개시 한 달 만에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와우아파트 사고 현장.
40년 전인 1970년 4월 8일 서울 마포구 창전동 와우아파트의 15동 건물이 무너졌다. 새벽에 갑자기 건물이 붕괴하면서 33명이 사망했다. 도시계획에 따라 준공한 지 채 넉 달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사고 나흘 전 무너진 건물 옆에 있던 14동 건물 벽에 금이 가면서 시 당국은 14동 주민을 15동 건물로 옮겼다. 15동으로 옮기면서 시 당국에서는 이 아파트가 검사에 완전히 합격된 이상 없는 건물이라고 장담했다.



이 사고는 전형적인 개발시대가 빚어낸 비극이었다. 조사 결과 설계에서부터 문제가 있었고, 공사비를 20%나 깎기 위해 부실기업에 재하청을 주었으며, 재하청을 받은 부실기업은 철근·시멘트 등의 건설 자재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총체적 부실은 불도저란 별명이 있었던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이 1968년 12월 ‘개발’의 명목하에 아파트 2000동을 지어 무주택자 13만 가구를 수용하겠다고 하면서 시작되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관련 공무원 4명과 시공업자 1명이 구속되었고, 서울시장도 사고 8일 만에 교체되었다. 서울 시내 406개 동의 시민아파트에 대한 일제 진단 결과 61개 동에 결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더 이상 사고가 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시민아파트는 그 이름이 불길하다 하여 시영아파트로 이름을 바꾸었고, 김현옥 시장은 다시 내무장관으로 기용되어 유신 초기까지 치안과 행정을 총괄하는 책임자로 활약했다. 그리고 사고가 발생한 지 3개월도 되지 않아 와우아파트 다동 뒤의 높이 3m 축대가 다시 무너지는 사고가 났다. 1984년에는 2동 뒤편 와우산 일부가 폭우로 무너져 내리면서 204호와 205호를 덮쳐 다시 2명이 숨지고 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개발연대의 부실시공 전통은 1990년대 대형사고로 이어졌다. 뭐든지 ‘빨리빨리’ ‘싸게’ 하려는 성과주의가 계속된 것이다. 94년의 성수대교 붕괴 사고와 95년의 대구지하철 가스폭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대표적인 예였다. 와우아파트 자리에 지금 시민들을 위한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이 조금은 위안이 된다. 그러나 지금 또 다른 개발이 시작되고 있다. 이제 더 큰 규모의 개발이 뉴타운에서, 그리고 4대 강에서 계속되고 있다. 삼풍백화점 자리에는 거대한 공룡이 들어서 있다. 더 이상 인재가 있어서는 안 되며, 거대한 규모의 개발이 인류의 가장 큰 재산인 자연에 재앙을 가져다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시계는 21세기를 가리키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20세기의 개발중심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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