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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용의자의 딜레마’에 빠진 사회

인간은 합리적인가? 그야 애매모호한 단어인 합리성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경제학은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선택하는 일련의 행동이 일정한 목적을 일관적으로 추구하는 것으로 보일 때 이들이 합리적 선택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제이론은 사회를 구성하는 각 개인이 이러한 의미에서 합리적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자유방임이 최선의 정책이라는 자유주의 경제이론은 바로 이 가정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가정은 많은 인문학자와 사회과학자들에 의해 신랄하게 비판되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비판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다른 사회적 행위는 몰라도 시장에서 상품을 구매하는 인간의 행위는 합리적 행동원리에 의해 훌륭하게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현재 매우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인지심리학과 신경과학이 개인의 경제행위가 체계적으로 비합리적일 수 있음을 과학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학은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중요한 의문을 다른 각도에서 심각하게 제기한 바 있다. 사회를 구성하는 각 개인이 합리적이라면 사회 전체도 집단적으로 합리적인 행동을 할 것인가? 이 중요한 질문에 대한 부정적인 대답은 ‘용의자의 딜레마(죄수의 딜레마)’라는 유명한 예에서 찾을 수 있다. 별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체포된 두 용의자가 서로 격리된 방에서 취조를 받는다. 둘 다 입을 다물면 가벼운 형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경찰은 시치미 떼다가 들통이 나면 엄벌에 처할 것이지만 먼저 자백하면 무죄 처리해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하고자 하는 용의자는 둘 다 자백을 하고 중형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다. 매우 똑똑한 두 개인이라도 특정한 상황에 처하면 집단적으로 멍청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상황은 여러 분야에서 찾을 수 있다. 군비경쟁을 하는 두 국가. 상대방보다 강해지려고 국방비를 증가시킨다. 그러나 둘 다 군사력을 증가하게 되면 어느 한 쪽도 우세를 점할 수 없는 상태에서 국민의 세금만 늘어난다. 빽빽한 숲 속의 나무들. 다른 나무보다 햇빛을 더 받으려고, 다른 나무에 가려지지 않으려고 키를 키운다. 그러나 모든 나무의 키가 커지면 어떤 나무도 혜택을 보지 못한 채 햇빛과 양분에 더 의존적인 허약한 숲이 되고 만다. 한국의 대학들. 자신의 학생들이 다른 대학의 학생들보다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도록 거의 모든 학생에게 A학점을 준다. 그러나 모든 대학이 A학점을 뿌리고 나면 어떤 대학도 이익을 보지 못한 채 면학을 유도하고 우수학생을 사회에 추천하는 학점의 기능은 소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사회의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을 어기는 구성원에게 벌을 가함으로써 사회가 집단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사회의 구성원이 모두 합리적이고 규칙 제정자가 구성원보다 똑똑하지 않아도 말이다. 군비감축 협약이나 관세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세계무역기구(WTO)의 존재 근거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필자는 한국에서 가장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과외도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옆의 나무보다 더 많은 햇빛을 받으려고 기를 쓰고 키를 키우는 나무들처럼 우리의 가정도 과외비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대부분의 가정은 더 많은 햇빛을 받지도 못한 채 과외비로, 유학비로, 그리고 중년의 고독으로 쓰러져 가고 있다.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더 허약해지고 있는 것도, 한국이 저출산율로 고통을 받게 될 것도 따지고 보면 이 때문이 아닌가? 이쯤 되면 세종시가 아니라 심야와 주말 일반과목 과외금지 법안을 놓고 국민투표를 한번 해볼 만한 일이다.



공교육을 정상화시키고 입학사정관 제도를 정착시키면 과외가 소멸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면 한국인들이 많이 다니는 외국인고등학교를 자세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어떤 자율형 사립고도 따라가기 어려운 양질의 교육환경이 제공되고 모든 학생이 (미국의) 입학사정관에 의해 선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외가 일반학교보다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과외금지가 위헌의 소지가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학원을 단속하면 부자들의 전유물이 될 개인 과외를 인권침해 없이 어떻게 단속할 것인가의 난제도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의 무게보다 과외로 인한 용의자의 딜레마의 무게가 경제학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필자의 가슴을 더 크게 압박한다.



송의영 서강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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