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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용석의 Wine&] 로스차일드 가문의 양대 와인…샤토 무통, 샤토 라피트

지난달 로스차일드 가문의 투자은행인 NM로스차일드&선스의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가문과 관계없는 전문경영인이 임명됐다. 200년 넘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역사에서 처음 생긴 일로 화제를 모았다.



blog.joins.com/soncine

<4월 6일자 E5면>



로스차일드 가문은 19세기 유럽 최대 금융 세력으로 등극해 지난 2세기 동안 지구촌 경제를 주물러온 유대인 재벌이다. 19세기 유럽 왕실들의 금고를 관리했고 20세기 초엔 유대민족의 꿈인 이스라엘 건국의 주춧돌을 놓았다. 이 로스차일드 가문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와인이다.



18세기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거주지역 게토에서 환전상으로 시작한 로스차일드 가문은 19세기 중반 유럽 곳곳에 진출해 이미 엄청난 부를 이룩했다. 하지만 유대인이라는 본질적인 한계로 유럽 상류 사회에 진출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때 와인이 돌파구였다. 가문의 창시자였던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의 셋째 아들이자 영국의 금융계를 주름잡았던 네이선 로스차일드에겐 나다니엘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1850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 나다니엘은 귀족들과 친해지기 위해 매일 밤 성대한 파티를 열었다. 그는 프랑스 여느 귀족들처럼 자신의 와인으로 손님들을 대접해 눈길을 끌고 싶었다.



나다니엘은 1853년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샤토 브란 무통을 매입해 ‘샤토 무통 로칠드’로 이름을 바꿨다. ‘붉은 방패’를 뜻하는 로스차일드(Rothschild)는 프랑스어로 로칠드, 독일어로 로트실트라 불린다. 샤토 무통 로칠드는 2년 뒤인 1855년 프랑스 보르도의 메도크 와인 등급 분류에서 2등급에 올랐다. 이를 지켜보던 나다니엘의 삼촌 제임스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네이선과 제임스는 형제간이었지만 묘한 경쟁 심리가 있었다. 1868년 제임스는 아예 프랑스 1등급으로 분류된 ‘샤토 라피트’를 매입해 ‘샤토 라피트 로칠드’라는 이름을 붙였다.



두 개의 로칠드 와인은 세계 와인 업계의 판도를 바꿔왔다. 무통 로칠드는 와인업계 최초로 샤토(양조장)에서 직접 병입까지 하며 품질관리에 나섰다. 1945년부터는 와인 레이블의 그림을 당대 최고의 화가에게 맡겼다. 이후 무통 로칠드는 피카소·샤갈·달리·앤디 워홀 등 세계적인 화가들의 캔버스가 됐다. 올 초 선보인 2007년산 와인(사진) 레이블은 ‘철 조각의 마술사’로 알려진 프랑스 미술가 베르나르 브네가 그렸다. 샤토 라피트 로칠드는 일찌감치 해외에 진출해 칠레와 미국에서도 고급 와인이 생산되는 데 일조했다. 지금은 중국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특급 와인으로 꼽힌다.



현재 시중에서 무통 로칠드와 라피트 로칠드는 한 병에 최소한 50만원이 넘는다. 물론 저렴하게 로칠드 와인을 맛보는 방법이 있다. 무통 카데, 라피트 레전드 등 로칠드 측에서 대중적인 와인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손용석 포브스코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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