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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세상 첫번째 이야기] ‘싸구려 여행’을 다녀와서

3일 차량고장으로 고속도로에서 멈춰선 관광버스.
지난주 토요일인 3일, 남편과 아주 황당한 여행을 다녀왔다. 신문 전단지로 배포된 K여행사의 당일치기 쌍계사 벚꽃 여행이었다. 꽃구경은 1시간 뿐이었고 그 시간보다 길게 금산의 홍삼공장과 사슴목장에서 두번의 ‘약 선전’을 들어야만 했다.



휴일 망치게 한 1만원짜리 ‘약장사’ 벚꽃여행

하루종일 이런 고욕스런 여행을 한 데는 내 탓도 있다. 너무 싼 여행비를 의심하지 않고 덜컥 길을 나섰으니 말이다. 우리 부부는 한가로운 봄 여행을 하고 싶었다. 휴일에 차가 밀리는 길에서 고생하지 말고 여행사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서울 살 때 하동 홍싸리 매화마을에 4만원 정도를 주고 간 기억이 있던 차였다. 우리는 당초 같은 여행사의 거제 외도 여행을 예약했었다. 3식 제공에 2만원이었다. 전화 예약을 받은 여자 직원이 이름과 핸드폰 번호를 받은 뒤 당일 신부동 버스터미널 맞은 편 농협 앞에 오전 7시20분까지 나오라고 일러줬다. 여행비는 현장에서 내도록 돼 있었다.



당일 서둘러 남편과 함께 그 장소에 갔다. 쌍계사를 가는 팀과 외도 팀이 함께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버스 한대가 왔다. 그런데 30대 후반의 여성 가이드가 하는 말이 “외도는 신청자가 적어 취소됐다”며 쌍계사행 버스에 타길 권유했다. 남편과 또 다른 부부가 강력하게 항의했다. 그 가이드는 자신이 책임질 일이 아니라며 대전의 K여행사 본사에 알아보라고 했다. 전화를 받질 않았다. 여행이 취소됐으면 전날 밤이라도 핸드폰 연락을 해줄 노릇이지 여행 당일 이게 무슨 날벼락같은 소리란 말인가. 그러나 이건 전주곡에 불과했다. 더 크게 놀랄 일은 뒤에 기다리고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 시각에 휴일 계획을 달리 잡을 방도가 없었다. 버스는 떠났다. 버스기사가 속도를 너무 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더니 1시간 쯤 지나 대진고속도로 산내IC 부근에서 버스가 흰 연기를 내뿜으며 서고 말았다.



가이드가 이리 저리 전화하면서 호들갑을 떨더니 인천서 출발하는 버스가 이곳에서 우리를 태워 쌍계사에 갈 거라고 말했다. 버스가 왔다. 타고 온 18명에 우리 일행 21명이 더해져 여행객은 39명으로 불어났다. 여행사는 버스 한대 기름값이 절약돼 손해가 될 일은 아닌듯 싶었다. 버스가 떠나기 무섭게 가이드가 일행들에게 “우리 안전을 책임지는 기사님을 위해 성의 표시를 해야 한다”며 한명 당 3000원씩 내라고 했다. 기분은 상했지만 1만원의 값싼 여행비를 생각하며 남편과 내 몫으로 6000원을 냈다.



조금 있다가 가이드가 “음악을 틀겠다”고 양해를 구하더니 엄청난 음량의 쿵쾅거리는 뽕짝 메들리를 틀어댔다. 인천 출발 때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한 듯한 두 40대 부부가 버스 통로에 나와 몸을 흔들어댔다. 이들을 제외하고 다른 승객들은 대부분 60세를 넘긴 노년층이었다. 참다못한 한 60대 아저씨가 기사에게 소리 좀 줄여달라고 말했다. 그 줄인 소리도 스트레스를 높여주는데 충분한 음량이었다.



가이드가 “값싼 여행비에 보태기 위해 협찬해 준 금산의 인삼 회사가 있어 그 곳을 들려야 한다”고 했다. 33㎡(10여 평)의 방에 승객들 모두 열외없이 들어갔다. 가이드의 강압적 어투가 빠져서는 안 될 것 같았다. 회사 대표라는 사람이 나와 홍삼 홍보를 했다. 국내 최초로 발효홍삼을 만들었는데 비싼 홍보비용을 감당못해 이렇게 팔고 있다며 100일치 분량을 35만원, 10개월 무이자로 판다고 했다. 그리고 덤으로 여러가지 인삼 제품을 끼워준다고 했다. 30대 여직원들이 승객 한명 한명에 붙어 구매를 ‘부탁’하고 다녔다. 두 팀 정도가 산 걸로 기억된다.



다시 버스에 올랐다. 천안팀 가이드가 “우리 팀은 사질 않아 회사 사장에게 너무 미안했다”며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리고 또 한 협찬회사를 들러야 한다고 했다. 지금껏 참고 있던 남편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여행에서 화를 내면 우리만 손해”라며 간신히 뜯어 말렸다. 금산의 한 사슴목장이었다. 사장이 “녹용 수입 자유화로 한의원들이 값싼 중국산 녹용을 사는 바람에 국산 녹용은 팔리지 않아 관광회사에 20~30만원 주고 이렇게 고객들을 모신다”고 노골적으로 말했다.



사장 입담이 좋아 많은 일행들이 녹용을 샀다. 여기서도 끈질긴 여직원들의 강매 행동이 문제가 됐다. 한 60대 여자승객이 울음을 터뜨렸다. 여직원이 손을 꼬옥 잡으면서까지 사달라는 걸 거절하려다 보니 힘이 들었나보다. 고속도로에서 1시간, 두 ‘약장사’들 상대하는데 2시간이 흘러 점심을 먹으러 간 건 오후 12시30분. 벚꽃 여행간다고 떠나 천안을 출발한지 5시간 지났는데 그 동안 뭘 했는지 모르겠다. 대부분 처음 당해보는 일에 자포자기한 표정들이었다.



버스가 쌍계사에 도착한 건 오후 4시 반. 벚꽃도 우리를 외면했다. 가이드가 “이럴 줄 몰랐다”며 너스레를 떠는 꼴이 더 얄미웠다. 그래도 1시간 둘러본 쌍계사 풍광이 싸구려 약장사 여행에 시달린 심신을 조금이나마 달래줬다.



오늘도 신문 속에 한 여행사의 1만원짜리 쌍계사와 진해 벚꽃 여행 전단이 끼어 들어왔다. 전단지를 박박 찢어 쓰레기통에 내던졌다. 



이명순(천안시 동남구 다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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