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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눈의 어의에게 고종은 비단옷을 내렸다

한국 근대의학의 아버지 H N 알렌(1858~1932). 선교사이자 미국공사관 소속 의사였던 그는 1884년 갑신정변 당시 칼에 맞은 민영익을 외과수술로 살려냈다. 그 일을 계기로 왕실의 신임을 받은 그는 어의(御醫)가 되고, 1885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이자 근대식 병원이었던 제중원(광혜원)이 설립된다. 당시 고종은 명성황후의 조카인 민영익을 치료해준 데 대한 고마움의 뜻으로 알렌에게 훈장과 비단옷, 도자기 등의 하사품을 내렸다.



100년 만에 돌아온 ‘한국 근대의학의 아버지’ 알렌 유품



그 비단옷이 한국땅으로 돌아왔다. 문흥렬(69·사진) HB그룹 회장이 미국에서 알렌의 유품을 추적·구입해 들여온 것이다.



옷은 지금껏 알려진 조선왕실이나 관료의 의복과는 다르다. 본지가 촬영한 사진으로 자료를 살펴본 안동대 융합콘텐츠학과 이은주 교수는 “용의 무늬를 수놓은 게 아니라, 무늬가 들어가게 짠 청나라 옷감을 사용해 만든 옷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런 옷감으로 만든 조선의 옷은 지금껏 알려진 사례가 없고, 이화여대박물관에서 옷감만 소장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우리나라에 서양 의술을 들여온 선교사 알렌이 고종에게 하사 받은 의복. 왕의 의복에나 쓰던 5조룡 무늬가 들어간 청나라 수입 비단으로 만든 두루마기다. 발톱이 다섯 개인 용이 여의주를 움켜쥐고 있다. [김태성 기자]
푸른 비단에 발톱이 다섯 개인 5조룡이 앞·뒤·어깨에까지 모두 8마리가 배치돼 있다. 조선시대에 5조룡은 왕의 옷에나 쓸 수 있었다. 왕은 5조룡, 왕세자는 4조룡을 둥근 ‘보’에 수놓아 용포의 가슴과 어깨 등에 부착했다. 문관과 무관들은 네모난 ‘흉배’에 학·해태 등 동물 문양을 수놓아 의관에 부착해 품계를 구분했다.



알렌의 옷은 푸른 두루마기 위에다 같은 형태의 무늬로 짠 갈색 비단 전복(소매 없는 긴 조끼 형태의 옷)을 겹쳐 입게 되어있다. 좁은 소매폭 끝에 홍수(붉은 천을 덧댄 것)가 있고, 전복을 겹쳐 입는 방식은 조선후기 무관의 차림과 닮았다. 이 교수는 “홍수의 길이로 보아 1880년대~90년대 유물로 추정된다”고 했다. 대한제국기에 들어서면 전통 복식이 폐지되고 서양식 군복을 입게 된다. 5조룡이 쓰인 것에 대해서는 “조선인이라면 감히 사용할 수 없는 옷감이지만 공을 세운 외국인이니 특별히 귀하게 여겨 내린 것 같다”고 해석했다. 두루마기의 왼쪽 겨드랑이 부분은 터져 파란 실로 대충 꿰맨 흔적이 있다. 문흥렬 회장은 “옷의 가치를 모르는 알렌의 유족이 아이들의 할로윈 의상으로 사용한 탓”이라며 “100년 전 유물을 지금 거두지 않으면 100년 후 후손들에게 우리 역사를 보여줄 자료가 없을 것 같아 수집에 전력을 다했다”고 말했다. 옷과 함께 고종이 하사한 도자기는 이미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넘어간 상태라 입수하지 못했다.



알렌이 약을 조제할 때 쓴 놋유발과 유봉. 우리나라 근대의학 최초의 조제 도구인 셈이다. 그릇 안쪽에 푸른 녹이 슬어 세월의 흔적을 말해준다. [김태성 기자]
문 회장은 알렌이 약을 조제하는 데 쓴 놋유발과 막대, 숭례문·동대문·청계천·흥선대원군 등 100여 년 전 조선의 풍경과 인물을 담은 사진첩 두 권, 알렌의 저서 등을 손에 넣었다. 그는 이 자료들을 9일 제중원 개원 125주년을 맞아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 기증한다.



글=이경희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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