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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봉 기자의 도심 트레킹 ① 테헤란로 선릉·정릉 숲길

1 선릉 울타리 밖 우레탄 포장길. 이제 막 개나리꽃이 피었다. 2 점심시간, 강남 부근의 직장인들이 선릉 안 산책길을 걷고 있다.
도시인에게 걷는 것은 일이다. 여행은 꿈이다. 한데 꿈은 이루어지는 법. 도심에서도 매일 ‘잠깐의 여행’을 즐기는 방법은 있다. 바로 도심을 산책하는 것. 30분이어도 좋고, 1시간이어도 좋다. 걸음마다 길 위에 마음의 짐을 툭툭 떨구고, 무심히 지나쳤던 주변 것에 눈길 한 번 주는 것만으로도 걷기는 노동이 아니라 여행이 된다. 자로 잰 듯 반듯하고, 때로는 복잡하게 엉켜 있고, 이 길과 저 길이 이어지지 않고 단절된 듯 보여도 의외로 사람 사는 동네엔 걸을 수 있는 길이 많다. 일로 걸었던 그 길을 산책하는 방법을 찾아 나선다. 도심에 산다고 걷기를 포기하지 말자.



김과장님, 오늘 점심도 숨통 틔우러 갑니다

글=이정봉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서울 영동지역에 있는 테헤란로에 갔다. 마치 빌딩을 위해 마련된 듯한 터전이다. 빌딩 사이 길은 자동차들이 점령했고, 사람 사는 주택가 좁은 뒷골목도 자동차 한 대가 차지하면 사람들은 벽과 차 사이에 끼어 버르적거려야 한다. 한데 이곳에도 진짜 숨쉬는 숲이 있다. 강남의 허파로 불리는 ‘선릉·정릉’이다.



지하철 2호선 선릉역 8번 출구에서 능 입구까지 300여m. 입구로 들어서면 완전한 산세다. 빌딩숲과 자동차 소음은 아득해진다. 길게는 수백 년 동안 뿌리를 내린 소나무·굴참나무·오리나무·앵두나무 등 40여 종의 나무가 하늘을 덮어 도시를 몰아낸다. 온통 흙길. 하지만 입자가 굵어 먼지가 일지 않는다. 야자나무 뿌리로 만든 돗자리가 군데군데 덮여 있다. 미끄러지거나 옷이 더럽혀질 염려가 없다.



테헤란로 직장인들 중엔 점심시간이면 숨을 쉬러 이곳을 찾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일반적인 코스는 선릉(성종대왕릉) 정자각-선릉-정현왕후릉-정릉(중종대왕릉)-재실을 거치는 시계 방향으로 도는 것. 2㎞ 남짓. 그들의 관행대로 돌아봤다.



그리고 생각한 건 이거다. 이 길을 운동 삼아 빠듯하게 걸어선 안 되겠다는 것. 목적의식을 던져버리고 주위 환경에 젖어서 그저 걸어보면 의외로 많은 울림이 있다. 선릉에 다가서면 자동차 소리가 희미해진다. 늘 쫓기는 듯한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질 즈음, 이끼 낀 소나무 우듬지에 앉은 곤줄박이의 지저귐이 유난히 카랑하게 들린다. 발길을 이어 정현왕후릉으로 접어들면 장대처럼 곧게 선 적송(赤松) 숲 사이로 멀리 빌딩숲이 보인다. 왕후릉 오른쪽으로 언덕길이 시작됐지만 그리 가파르거나 높지 않다. 게다가 계단길이어서 오르내리는 데 무리가 없다. 왕후릉을 지나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뉘어진다. 가까운 쪽은 단풍나무길과 산벚나무길이 이어지고, 먼쪽은 참나무숲길이 뻗었다. 먼쪽으로 갔다. 몇 걸음 걸으니 낯선 새소리가 들린다. “컹 컹” 하고 울기에 숲을 한참 들여다봤더니 긴 꼬리 깃이 눈에 띄었다. 꿩이다. 딱따구리와 동고비 등 산새들이 종종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정릉 앞으로는 풀밭이 시원하다. 날이 풀리면 회사원들이 도시락을 싸와 이곳에서 먹는다고 했다. 재실 앞을 지나니 개나리가 막 꽃을 피웠다.



능의 봉분은 모두 흙을 쌓아 만든 언덕 위에 자리 잡았다. 왕의 혼이 좋은 기를 많이 받으라고 흙을 높이 쌓았다고 한다. 일종의 충전 장소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산길과 다름 없는 곳을 걸었는데도 땀 한 방울이 나지 않았다. 느릿한 걸음으로 산세를 감상하며 돌았는데도 30분이 채 안 걸렸다. 이곳의 입장료는 원래 1000원이지만 ‘점심시간권’이라는 게 따로 있다. 근처 회사원을 위한 것인데 낮 12시~오후 1시에 입장할 수 있고 10회에 3000원이다. 커피 용기를 들고 입장할 수 있지만 안에 쓰레기통이 없어 다시 가져 나와야 한다.



선릉은 안쪽뿐 아니라 바깥쪽도 걸을 만하다. 이른바 선릉 둘레길. 선릉 주위 울타리를 따라 걷는 길이다. 덕수궁 돌담길의 운치에 비할 바 안 되지만 더 나은 점도 있다. 울타리를 통해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걸으면서 선릉 안의 산세와 능을 고스란히 들여다 볼 수 있어 눈에 엽록소를 충전해올 수 있다. 우레탄 포장도로라 구두를 신고 걷기에도 편하다. 폭도 3명 정도가 넉넉히 지날 수 있을 정도여서 여유롭다. 도로에서 시작해 주택가로 이어지는 길은 꽤나 고즈넉하다. 테헤란로 뒷골목에서는 보기 드물게 ‘사람 걷는 길’이었다. 입구에서 500여m 울타리를 따라 안쪽에 쥐똥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5월에 꽃이 피면 은은한 향이 사방에 퍼진다고 했다. 그때 다시 한번 와야겠다.



① 코스 꿩이 사는 참나무숲길. 정현왕후릉에서 먼쪽이다. ② 코스 단풍나무길과 산벚나무길. 정현왕후릉과 가까운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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