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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 속 그 이야기 <1> 지리산숲길

새 연재 기획 ‘그 길 속 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언제부턴가 걷기는 여행의 본령이 되었습니다. 정부가 앞장서 도보 여행 코스를 만들고 있고, 이에 질세라 지방자치단체도 제 고을의 옛길을 손질해 걷기 여행 코스로 내놓고 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도보 여행지를 오늘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소개합니다. 길마다 쌓여 있는 숱한 사연도 물론 들려드립니다. 길은 본래 사람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보 여행이 겁나는 분도 기꺼이 동참하시라고 쉽고 편한 길만 골라서 내놓습니다.



중앙일보 45주년·프로스펙스 30주년 공동기획

1 지리산숲길은 산을 향해 난 길이 아니다. 산을 옆구리에 끼고 난 길이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길이다. 마침 봄 나들이 나온 수녀님들을 지리산숲길 어느 강둑에서 만났다.
제몸 둘러가는 길손들 보며 산이 슬며시 웃었다



지리산을 두르는 길이 나고 있다. 아니 길은, 원래 거기에 있었다. 지리산 자락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이 긴 세월에 걸쳐 고갯마루 넘고 물길 돌아가며 디디고 밟아서 낸 길이었다. 지리산길. 최근 들불처럼 일고 있는 걷기 열풍의 진원지 지리산길은, 거기 그 자리에서 마냥 애초의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작로 뚫리고 터널이 생긴 지리산 자락은 언제부턴가 끊긴 인적 대신 자동차 엔진 소리만 요란했다. 그 산자락에 요즘 사람의 발길이 되돌아오고 있다. 먼 옛날, 길이 길이게끔 디디고 다졌던 사람들이 잊지 않고 돌아온 것이다. 그 길을 따라 걸었다. 지리산, 그 거대한 자락을 바라보며 내딛는 걸음은 지리산을 들 때처럼 사뭇 조심스러웠다.



글·사진=손민호 기자



# 길을 들기 전에



2 행정마을 서어나무 숲 그네. 임권택 감독 영화에서 춘향이가 그네를 탄 곳이다. 3 운봉 읍내에서 발견한 시골 이발소의 정겨운 모습. 4 동편제 시조 송흥록, 박초월 선생의 생가.
2004년 지리산 자락 안의 네 사람이 일을 벌였다. 이름하여 생명평화탁발순례. 꼬박 45일 동안 남한땅에서 가장 큰 덩치의 산자락을 한 바퀴 돌며 네 사람은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몸소 알렸다. 실상사 도법 스님과 수경 스님, 박남준 시인과 이원규 시인. 이 네 남자는 순례를 마치자 당시 노무현 정부에 건의를 했다.



“지리산 자락을 걸어보니 원래 나 있던 길이 많이 끊겼습디다. 지리산만큼은 사람이 사람 대접을 받으며 걸을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십시오. 없던 걸 새로 만들라는 게 아닙니다. 원래 있던 걸 원래대로만 내주면 됩니다.”



당시 정부는 건의를 받아들였다. 환경부와 산림청이 로또 기금으로 예산을 편성했고, 지리산을 끼고 있는 3개 도(전라북도·전라남도·경상남도)와 5개 시·군(전북 남원시, 경남 함양군·산청군·하동군, 전남 구례군)이 실무를 진행했다.



2007년 1월. 지리산에 길을 내는 주체, 사단법인 숲길이 꾸려졌다. 도법 스님이 이사장을 맡았고, 새로 내는 길의 이름은 지리산길로 정했다. 원칙도 그때 생겼다. 국립공원 안쪽으로 넘지 않는다, 지리산 둘레를 따라 크게 한 바퀴 돈다 등이다.



첫 길은 2008년 4월 열린다. 시범코스라 불렸던 ‘매동~금계’ 구간 11.3㎞다. 길이 열리고, 사람들이 몰려왔지만 막상 길은 멈춰선다. 예산 집행 과정에 물의를 빚으며 사단법인 숲길이 내홍을 겪는다. 혼란은 지난해야 겨우 수습된다. 한동안 막혔던 길은, 비로소 물꼬 터지듯이 죽죽 뻗어 나간다. 지리산길은 다섯 개로 구간을 넓히며, 금세 70㎞까지 확장된다.



이때 새 고민거리가 생긴다. 원래 길 이름은 지리산길이다. 하나 잠깐 길이 멈춘 사이, 객지에서 몰린 사람들이 ‘지리산 둘레길’이라 불러왔다. 틀린 건 아니지만, 정확한 이름이 필요했다. 이맘때 산림청이 이름에 ‘숲’을 넣자고 제안했다. 논의 끝에 이름은 ‘지리산숲길’로 확정된다. 길 곳곳에 설치된 이정표에도 아직은 ‘지리산길’이라 적혀 있지만, 사단법인 숲길은 ‘지리산숲길’로 이름을 통일한다.



지리산숲길은 내년까지 지리산을 한 바퀴 돌 계획이다. 길이 완성되면 얼추 300㎞에 이른다. 한국 최장의 도보 여행 길이 완성되는 것이다.



# 느릿느릿 발길 가는 대로



길 곳곳에 설치된 지리산숲길 이정표
여태 난 지리산숲길 중에서 가장 쉬운 길을 골라냈다. 전북 남원시 운봉읍 기장마을에서 인월면 비전마을까지 이어지는 8.8㎞ 구간이다. 사단법인 숲길의 ‘운봉~주천’ 구간과 ‘인월~운봉’ 구간이 겹치는 코스로, 마을과 마을을 잇는 시골길이 대부분이다. 지리산숲길이 좋은 건, 정해진 코스를 따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개인의 체력과 시간에 맞춰 제 코스를 짜면 그만이다. 지리산숲길 구간을 정하는 건, 오롯이 사람의 권리다.



시작은 가장마을이다. 개천을 따라 걷다 보면 행정마을 서어나무숲이 보인다. 마을 어귀에 서 있는 서어나무숲이 주변 경치를 압도한다. 2000년 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마을 숲 부문 대상으로 선정됐다. 숲 안에 그네 하나가 걸겨 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전’에서 춘향이가 그네 뛰는 장면을 여기서 촬영했단다.



행정마을을 나오면 강둑 길이 길게 이어진다. 길가에 늘어선 벚나무는 아직 꽃망울이 터지지 않았다. 강을 따라 나있는 길을, 지리산 서북쪽 능선이 흐뭇한 표정으로 내려다본다.



운봉 읍내에 들어오면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 1970년대 마을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다. 다시 강둑을 따라 걸으니 고려 말 이성계가 왜구를 물리쳤다는 황산대첩비까지 다다른다. 바로 뒤에 동편제의 시조 송흥록·박초월 생가가 있다. 강둑을 따라 걸어 대덕리조트에 도착하니 얼추 네 시간이 지났다.



날씨가 좋지 않았지만 지리산숲길을 걷는 사람은 의외로 많았다. 묵직한 배낭 메고 혼자 걷는 남자, 오순도순 나란히 걷는 중년 부부, 재잘재잘 떠들며 다니는 젊은 여성들, 봄 나들이 나온 수녀들…. 길을 걸었지만 기억에 남는 건 사람이다.







길 정보=먼저 사단법인 숲길 홈페이지(www.trail.or.kr)에서 예습을 권한다. 지도 서비스는 물론이고, 각종 교통편과 식당·숙소 정보를 구할 수 있다. 사단법인 숲길 사무실은 지난해 하동으로 이사했지만, 안내센터는 아직도 전북 남원시 인월면에 있다. 여기에서 상세 지도를 얻을 수 있다. 063-635-0850. 지리산숲길은, 제주 올레처럼 코스 이름에 숫자를 붙이지 않는다. 대신 구간을 지역으로 나눈다. 지도를 꼭 챙겨 수시로 확인하자. 숙소나 식당 정보도 스스로 구해야 한다. 모퉁이마다 나무로 된 이정표가 서 있다. 빨간 색은 시계 방향으로 길을 가리키고 검은 색은 그 반대다. 혼자 가기 버거우면 여행사를 이용할 수도 있다. 걷기 여행 전문 승우여행사(www.swtour.co.kr)가 지리산숲길 상품을 운영한다. 02-720-8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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