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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와 진보, 상생과 소통을 말하다 ① 박효종 - 김형기 교수 대담

‘보수와 진보, 상생과 소통을 말하다’의 첫 번째 이벤트는 박효종 서울대 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와 김형기 경북대 교수(좋은정책포럼 대표)의 대담이다. 두 사람은 연말까지 진행될 토론의 큰 틀과 방향을 함께 고민했다. 민주주의·시장경제·남북, 한미관계·교육·복지·세계화·노동 등 우리 사회 핵심 쟁점들이 대부분 거론됐다. 두 사람은 각자 자기진영의 문제점에 대해 비판과 반성도 했다. 대담은 지난달 말 중앙일보 편집국에서 이뤄졌다. 이번 연중 토론회는 사회통합위원회(위원장 고건)와 중앙일보,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이사장 김세원), 한국개발연구원(KDI·원장 현오석)이 함께 기획했다. 정부와 학계, 싱크탱크, 시민단체, 언론을 망라한 이같은 행사는 사실상 처음이다.



중앙일보-사회통합위원회 공동 기획
보수 “진보의 인권과 권리의식, 민주주의 풍요롭게 만들어”
진보 “국가 경영능력에서 진보는 아직 보수 못 따라가”

-보수와 진보 학자들이 이념, 남북문제, 복지, 교육 등 거의 전 분야에 걸쳐 토론을 벌이는 건 전례없는 일인데, 배경이 뭡니까.



▶박효종=좌우 모두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본거죠. 그동안 양 진영은 자기 주장만 하다 헤어졌어요. 하지만 공통점도 있고, 서로 달라도 함께 할 수 있는게 있지 않느냐는 겁니다.



▶김형기=그동안 좌우갈등이 너무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이었어요. 상대를 완전히 배척하면서 자기만 살려는 게 너무 심한 것 같아요. 보수의 선진화든, 진보의 인간화든 아무튼 대한민국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번 토론은 보수와 진보 중 과연 누가 대한민국을 순항하게 만들지 공론의 장에서 따져보자는 겁니다.



-좌우 갈등이 우리 만 심각한 건 아닐텐데요.



▶박=갈등의 질이 문제죠. 상대방의 파멸을 원하는 악의(惡意)가 있어 보이니까요. 아프리카 말에 ‘우분투’라는게 있는데 ‘네가 있어 내가 있다’라는 뜻이랍니다. 운동 경기도 상대가 있어야 하는데 우린 상대방이 없길 바라는 수준으로 경쟁합니다. 야만성이라고 할까요.



▶김=미국 의료보험 개혁과정이 놀랍잖아요. 공화당은 반대하지만 의사진행 방해는 안한답니다. 다음 선거에 이겨서 폐지하겠다는 거예요. 절차의 존중, 법치 같은 게 있는 거죠. 유럽은 좌우 연정까지 하지 않습니까.



-진보 좌파, 보수 우파라는 용어에 대한 오해와 혼란도 적지 않습니다. 좌파는 어떤 지향점을 가진 사람들을 말하는 겁니까.



▶김=좌파는 과거엔 사회주의권을 의미했지만 사회주의가 붕괴하면서 변화가 생겼어요. 제가 보기에 우파는 리버럴 마켓 이코노미(liberal market economy), 그러니까 자유시장경제를 지향합니다. 반면 좌파는 국가나 시민사회에 의한 시장의 컨트롤과 조정(coordinated market economy)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전통적 좌파와 급진적인 전투주의는 쇠락하고 있습니다. 새로 부상하는 진보는 대한민국을 인정하고 시장경제의 틀 속에서 좀 더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복지국가가 실현되는 시장경제로 가자고 주장합니다.



-그런 주장을 하면 좌파 내에서 우파로 몰리게 되는 건 아닙니까.



▶김=(웃으며)저보고 더 이상 진보가 아니라는 분도 있어요. 하지만 평등과 공공성, 휴머니즘, 민주주의 같은 진보의 가치를 글로벌 시대, 지식경제기반 시대에 맞게 실현하자는 겁니다. 이런 주장이 앞으로 더 많아질 겁니다.



-대한민국에서 우파는 누구입니까.



▶박=우파와 보수는 북한이 아닌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인정하는데서 출발합니다. 미국에 대해선 할 말은 하더라도 근본주의 성향의 반미는 인정하지 않고요. 요즘은 보수에서도 대북 포용정책 자체는 인정하자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을 돕는 건 민족적 의무이자 휴머니즘의 발로니까요. 보수는 또 법치주의를 존중합니다. 권위주의 정권 때라면 몰라도 이젠 법과 질서는 공동체 전체를 위해 복원돼야 합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보수에겐 충격 아니었습니까.



▶박=신자유주의적 탐욕의 문제점을 보게 됐고, 반성도 하고 있습니다. 엘리트들만 잘 나가는 그런 자유주의로는 안된다는 거죠. 보수도 (약자에 대해) 따뜻하고 온정적인 태도가 필요하다는 반성과 흐름이 나오고 있어요. 부정부패에 대해 겸허히 반성하고 진보의 가치도 포용하자는 얘기들을 꽤 합니다.



-보수와 진보는 개별적 차원에서는 소통하다가도 진영 논리로 가면 사생결단입니다. 왜 그렇죠.



▶김=이념은 하나의 치장일수도 있어요. 그 배후에는 이해관계가 있는 거죠. 사회가 양극화돼 빈부격차나 수도권-비수도권 격차가 심해지면 이해관계의 대립이 생기는데 그게 이념 대립의 형태로 표출됩니다. 병을 치유하려면 원인을 봐야 합니다. 그래서 보수와 진보가 경제, 교육, 노동, 복지 등 이념대립의 뿌리까지 내려가 각자 해법을 내보자는 겁니다.



▶박=이념문제도 아닌데 자꾸 이념으로 몰아가는게 문제죠. 예를 들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건강권 문제입니다. 이걸 자꾸 이념으로 투영 하거든요. 모든 이슈가 다 그래요. 근본적으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인정하느냐 아니냐에 대해 합의를 못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대한민국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고 건국 자체가 잘못이라고 주장하면, 과연 우리가 같은 배를 타고 있는건지 의구심이 생기는 거죠.



▶김=우리가 독재 하에 있고 북한을 잘 모를 때 진보진영이 반발적으로 북한을 미화한 건 사실입니다. 요즘 진보내에서 북한 배에 타야 한다는 세력은 1%도 안된다고 봅니다. 그보다는 경제적, 현실적 이해의 대립이 과잉 이념화, 과잉 정치화 된 부분이 있다는걸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과잉과 거품을 제거해야죠. 대한민국에선 민주화와 산업화 세력이 역동적으로 대립하면서 결합해왔습니다. 대한민국을 만든 건 우파도 아니고 좌파도 아닌 거예요. 국민과 정치 리더들이 만들었고, 기업인들이 만들었고, 전문가도 만들었어요. 따라서 (보수의) 정체성 제기는 자칫 불필요한 과잉 이념논쟁으로 가는 길을 열 수도 있다는 우려가 듭니다.



-2차대전 이후 100여 개 이상의 나라가 독립했는데 민주화와 산업화를 다 성공시킨 건 한국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진보진영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실패의 역사, 부도덕한 역사, 기회주의가 성공한 역사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김=우리 역사의 부정적 측면만 보는 편향된 시각이 있던 게 사실입니다. 외국의 진보진영과 학자들은 대한민국 모델을 굉장히 높이 평가합니다. 박정희는 쿠데타를 했는데 개발독재를 통해 산업화를 이뤘잖아요. 이걸 객관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역동성에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지금 부정적으로 보는게 결과적으로 새로운 발전을 가져올 수도 있으니까요. 예를 들면 (현 정부의)녹색성장 같은 건 진보입장에선 폄하할 수도 있지만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아무도 모릅니다.



-진보가 생각하는 스스로의 문제점과 가능성은 뭡니까.



▶김=진보의 최대 문제는 신뢰상실입니다. 국민에게 불신을 사는 거죠. 과장된 측면도 있지만 친북 이미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반체제 이미지, 거기에다 반기업·반성장 이미지까지 있는 것 같아요. 희망은 있습니다. 진보는 민주주의, 그러니까 다수의 지배를 옹호합니다. 정치 및 경제 권력을 가진 소수에 대항해 권력에서 배제된 사람, 경제 독점으로 피해를 받은 다수의 입장을 반영하죠. 이것은 진보의 빛나는 가치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추구하는 가치가 좋아도 실현 방식이 낡으면 폐쇄적인 구조속에서 고립적이고 자기 만족적인 모습이 돼 버립니다. 불필요하게 투쟁적이고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퇴락할 수 있다는 겁니다. 진보는 그걸 경계해야죠.



-보수는 어떻습니까.



▶박=경직성이 문젭니다. 부드럽지 못하고 열린 마음이 적고 독선적이죠. 보수가 진보를 이단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버리고 열린 보수가 되는 게 중요합니다. 진보의 강점은 인권과 권리의식을 통해 민주주의를 풍요롭게 만든 겁니다. 진보의 헌신성과 희생은 높이 평가하고 싶어요.



▶김=저는 삼성에 놀라고 있습니다. 삼성은 굉장히 권위주의적이고 세계 최고가 되기 어렵다는 비판이 많았는데 바꾸잖아요. 유능함이 보수의 강점입니다. 이건희 회장의 부정적 측면을 비판하더라도 그가 삼성전자를 세계적 기업군에 올려놓은 건 인정하자는 거죠. 실무능력, 기업 경영능력, 국가 경영능력에서 진보는 아직 보수를 못 따라 갑니다. 보수의 자랑스런 모델은 박정희고 그 모델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김대중도 노무현도 그걸 넘으려다 좌절했죠. 대한민국을 주도해 온건 보수인게 사실입니다.



-북한과 미국에 대한 보수의 시각은 뭡니까.



▶박=자유와 번영, 인권은 특정 진영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가치입니다. 이걸 바탕으로 통일논의가 가능하지 같은 민족이니까 무조건 서로 양보해서 통일공동체를 이루자는 주장은 곤란하죠. ‘민족끼리’가 나쁘진 않지만 다른 가치를 다 배제하면서 북한에 접근하는 건 무리라는게 보수의 입장입니다. 미국에 대해서는 할 말은 해야지만 경제와 민주주의 그리고 통일을 이루려면 미국을 통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진보 진영 내의 북한 시각은 다양하죠?



▶김=과거 북한 추종 그룹도 있던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북한 체제와 북한 주민은 구분해야죠. 북한 정권은 찬성할 수 없고 북한 인권과 민주주의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북한 체제는 거의 괴멸되어 가고 있고 더 이상 사회주의도 아닙니다. 진보는 북한관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앞으로 북한 주민들이 ‘우리가 억압 받을 때 남한의 진보가 뭘 했느냐’고 항의하면 뭐라고 할 겁니까.



-진보로선 색다른 주장같은데, 그럼 미국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김=과거에는 진보가 반미경향이 강했지만 저는 오히려 한·미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봅니다. 통일을 위해선 미국 역할이 결정적입니다. 통일은 물론 일방적인 신자유주의, 야만적이고 실패한 자본주의가 아니라 어떤 제3의 길로서 현대화되고 선진화된 통일을 말합니다. 아무튼 한·미 동맹을 강화해야 북한이 중국에 기울어지는걸 막을 수 있습니다. 진보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단순한 저항세력이 아니라 대안세력으로서 국가를 경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교육 문제가 심각합니다. 핵심은 평준화입니다. 붕어빵식 하향평준화에 대한 반발이 많지만 경쟁만 앞세우는게 온당하냐는 반론도 나옵니다.



▶박=평준화의 큰 틀속에서 다양성과 경쟁 요소가 포함돼야 한다고 봅니다. 근본주의 성향의 하향 평준화는 교실붕괴로 이어졌습니다. 교사가 된 제자들이 교실내 격차가 너무 커서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답니다. 평준화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라도 다양성과 경쟁의 요소가 포함돼야 합니다.



-평준화 이후 지방 명문고가 사라졌는데 그로인해 지역불균형이 더 심화됐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김=평준화는 진보의 대안이 아닙니다. 과정의 불평등을 해소하지 않고 결과의 평등만을 추구한 정책입니다. 진보 내에서 이런 주장을 하는 건 금기지만 솔직히 평준화는 지역별, 계층별 불평등 해소에 실패했습니다. 어떤 면에선 그걸 심화시켰고 껍데기만 남았습니다. 평준화가 평등? 저는 단호히 ‘노(NO)‘라고 말합니다. 진보, 보수를 떠나 평준화 자체가 신비화돼 있고, 성역처럼 인식되는걸 깨야 합니다.



-대안이 있습니까.



▶김=저는 지역별로 자율형 공립고를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국가가 민사고 수준의 자율형 공립고를 만들어 집중투자하라는 겁니다. 자율형 공립고는 성적으로 뽑지만 계층 균형선발도 하고, 지역 균형 입학도 하게 하자는 겁니다.



-성장을 도외시한 채 ‘인간다움’만 외치는 건 구호나 선동일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성장이 양극화를 부추기고 대다수의 박탈감만 높인다면 누굴 위한 성장이냐는 의문이 제기될 겁니다. 해법이 뭘까요.



▶김=세계화는 대세지만 금융 세계화의 부정적 측면도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인간의 얼굴을 한, 공정한 세계화가 필요합니다.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를 쓴 토마스 프리드먼은 ‘글로벌리스트는 사회민주주의자가 돼야 한다’고 했는데 중요한 얘깁니다. 한국의 진보는 사회민주주의를 주장하면서 세계화는 반대하는데 두 시각을 동시에 갖는 게 중요합니다.



▶박=칠레와 자유무역협정(FTA)때 얼마나 반대했습니까. 열어 놓고 보니까 우리 경쟁력은 더 잘 유지되고 있어요. 세계화는 창의적으로 받아들여야죠. 방어적으로만 하면 우리가 희생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금융위기를 겪었지만 자본주의는 망하지 않고 진화하고 있잖아요. 



정리=배영대·이한길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박효종=1947년생. 서울대 사범대 윤리교육학과 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2004년 시작된 뉴라이트(신보수) 운동의 대표적 이론가. 가톨릭대 신학부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신부 되기를 포기하고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김형기=1953년생.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2006년 뉴레프트(신진보)를 표방하며 출범한 좋은정책포럼의 대표. 한국경제의 지속가능한 모델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북대 교수회의 18대 의장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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