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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껍데기는 가라’의 민족시인 신동엽 사망

‘백성의 시인’이자 ‘민족의 예언자’ 되길 자임한 저항시인 신동엽(1930~1969). 그는 1959년 등단 이후 10년 동안 70여 편의 시를 남기고 서른아홉 한창 나이에 간암으로 귀천(歸天)하였다.
1969년 4월 7일. 민족시인 신동엽은 우리 곁을 떠났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껍데기는 가라’, 1967년).



하나 4월이 오면 민족의 통일과 자주를 노래한 그의 시는 여전히 우리 가슴을 고동치게 한다. 일제 식민통치, 6·25전쟁, 4·19혁명, 그리고 5·16군사쿠데타를 겪으며, 당대의 모순을 뚫고 현실의 변혁을 꿈꾼 시인의 시 세계는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이 강렬하게 꿈틀거린다. “민중 속에서 흙탕물을 마시고, 민중 속에서 서러움을 숨 쉬고 민중 속에서 민중의 정열과 지성을 직조 구제할 수 있는 민족의 예언자, 백성의 시인이 정치 브로커, 경제 분간자, 부패문화 배설자에 대신하여 조국 심성의 본질적 전열에 나서 차근차근한 발언을 해야 할 시기가 이미 오래전에 우리 앞에 익어 있었던 것이다.”(‘1960년대의 시단 분포도’, 1961년) 시인은 민중을 저항주체로 호명하며, 자신을 그들이 주인 되는 세상을 알리는 ‘민족의 예언자’로 자임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시인이 치열한 삶을 산 60년대는 ‘국민교육헌장’이 잘 말해주듯, 민족주의를 내걸고 국가의 성장과 발전을 추동하는 ‘근대화론’이 지배담론이었다. 시인이 내세운 저항담론 역시 민족주의였을 만큼, 그때 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은 당연시되었다. ‘강산은 좋은데/ 이쁜 다리들은/ 털난 딸라들이/ 다 자셔놔서 없다.’(‘발’, 1966년) 시인은 ‘털난 딸라’들에게 순결을 앗긴 이 땅의 여성에게서 민족의 종속을 보았다. 민족이란 거대 담론에 함몰된 그의 눈에 여성은 종속적인 존재로 비칠 뿐이었다. 시인도 한 시대의 지배적 정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타자와 더불어 살기와 남녀동권 사회를 꿈꾸는 오늘의 우리에게 그의 시정신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그때 거기 ‘역사의 그늘을 뜨개질하며’ 희망의 ‘그날’이 오길 바란 그의 외침이 있었기에 우리가 서 있는 지금 여기 다원화된 시민사회가 올 수 있었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 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 항아리.’(‘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1969년) 오늘 우리가 꿈꾸는 ‘하늘’을 보기 위해 찢어야 할 ‘쇠 항아리’는 무엇일까?



 허동현 경희대 학부대학장·한국근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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