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분수대] 서민의 ‘저녁 재판’

‘10·26 사건’의 재판 현장은 속전속결(速戰速決)의 냄새가 짙었다.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한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와 부하들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린 건 사건 발생 38일 만인 1979년 12월 4일. 재판은 재정신청으로 잠시 중단됐다가 나흘 뒤 속개되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강행됐다. 이때 등장한 게 ‘야간 재판’이다. 세 차례나 이뤄졌다. 자정까지 재판이 열리기도 했다. 사건을 신속히 마무리하려는 신군부의 보이지 않는 의도가 작용한 것이다(안동일, 『10·26은 아직도 살아있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인수 의혹을 다뤘던 형사 재판에서도 야간 재판이 등장한다. 사안이 워낙 복잡한 데다 증인이 수십 명이어서 매주 재판을 열어도 진행이 더디자 중간에 바뀐 재판장이 야간에도 재판을 하겠다고 선언한다. 야간 재판이 재판부의 신속한 판결 의지를 드러내는 징표였던 셈이다.



형사 재판에서의 야간 재판은 재판부의 사정일 뿐 피의자에겐 절실한 게 아니기 십상이다. 유대법에 엄연히 금지돼 있는 야간 재판을 통해 예수에게 서둘러 사형선고를 내린 ‘예수의 재판’이 단적인 예다. 정작 야간 재판의 효용이 있는 곳은 민사소송에서다. 소송 당사자가 일해야 하는 낮 시간을 재판에 낭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외국에선 민사 야간 재판이 드물지 않다. 아랍에미리트(UAE) 수도 아부다비 정부는 퇴근시간 뒤인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개정하는 야간 법정을 운영한다. 재판을 위한 공증, 판결문 발부 등 부대 서비스도 야간에 제공된다. 캐나다에선 소액재판의 신속한 처리를 위한 ‘급행선(express lanes)’ 프로그램이 시행된다. 이를 위해 밴쿠버의 롭슨 스퀘어 법원 같은 야간 재판 전담 법원을 따로 둘 정도다.



우리나라에서도 수원지법 안산지원이 이달부터 일과시간 후인 오후 7시부터 민사 재판을 하는 야간 개정(開廷) 제도를 처음 도입한다. 일단 소송가액이 2000만원 이하인 소액 사건이 대상이라고 하니 그야말로 서민을 위한 ‘저녁 재판’이 열리는 셈이다. 이미 1990년 개정된 소액사건심판법엔 휴일·야간 개정 제도가 규정돼 있다. 20년이 다 되도록 사문화돼 있었던 것이다. 차제에 법전 속에서 잠자고 있던 야간 개정 제도가 깨어나 널리 확산됐으면 한다. ‘예수의 재판’이 아니라 ‘서민의 저녁 재판’을 위해 밤에도 잠들지 않는 법원을 보고 싶다.



김남중 논설위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