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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딛고 선 기업들 <9> 교보생명

“뉴스 속보입니다. 교보생명이 16일 오전 9시 금융감독원에 파산신청을 했습니다.”



“교보가 파산했다” … 충격요법으로 변화와 혁신 이끌어

2000년 4월 충남 천안시 교보생명 연수원인 계성원. 대강당을 가득 메운 전국 지원단장과 간부사원 500명은 갑자기 스피커에서 나오는 긴급 뉴스를 듣고 충격에 빠졌다. 신창재 회장의 연설은 중단됐다. 장내는 급속히 얼어붙었다. 뉴스는 이어졌다. “금감원장은 교보생명이 회생할 가능성이 없어 퇴출을 결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전국 지점에는 가입자들의 문의와 항의가 쇄도하고 있습니다.”





강당 안에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윤수홍 당시 강릉지원단장은 “입 안이 바싹 타 들어갔다”고 말했다.



이 뉴스, 실제 상황이 아니었다. 곧 밝혀지긴 했지만 임직원들이 받은 충격은 컸다. 이는 극비리에 준비된 가상의 영상물이었다. 신창재 회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외주업체가 비밀리에 제작했다. 가상 뉴스가 끝난 뒤 신 회장이 말했다.



“변하지 않으면 교보생명은 정말로 내일 망할지도 모릅니다.”



뼛속 깊은 곳에서부터 변화와 혁신을 해야 한다는 대장정의 신호탄은 이렇게 쏘아 올려졌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교보생명은 1997년 외환위기 때 2조4000억원의 자산 손실을 떠안았다. 대우·아시아자동차 등 대출을 해준 대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지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0년 3월에는 주식시장 침체까지 겹쳐 2540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교보생명도 정부의 공적자금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감이 높아졌다.



신 회장은 2000년 5월 대표이사로 취임한 뒤 보험업계의 문제점을 해부하듯이 뜯어봤다. 서울대 의대 교수 출신답게 그는 회사의 근육부터 혈관까지 샅샅이 분석했다. 그가 진단한 업계의 고질병은 외형 경쟁이었다. 이익이 나건 말건 몸집을 불려야 살 수 있다는 잘못된 관행에 빠져 부실 판매, 대충대충 판매가 비일비재했다. 한꺼번에 왕창 계약을 했다가 한 번에 해약하는 악순환도 되풀이했다.



그는 결단을 내렸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병의 뿌리를 완전히 없애는 근원치료다.”



종전에는 이상이 보이면 진통제나 항생제를 투여해 잠시 통증을 완화하거나 병의 진척을 막았다. 하지만 이런 치료로는 병을 완전히 치료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그는 회사의 체질을 외형보다는 이익 중심으로 바꿀 생각이었다.



문제는 일선 조직의 반발이었다. “보험 영업을 모르는 의사 출신 회장이 회사를 망가뜨린다”는 반발이 컸다. 그러나 그는 꺾이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직원들을 설득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강력한 추진력을 보였다. ‘이익중심 영업정착 실무조사단’을 만들어 조사에 들어갔다. 인사상의 어떤 불이익도 없다고 약속하면서 부실 조사를 한 것이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당시 보험 13회차 유지율은 60%에 불과했다. 보험에 가입한 뒤 1년 지나면 10중 4명이 이탈한다는 뜻이다. 허위계약도 있었고, 고객의 서명을 받지 않은 계약도 나왔다.



결국 허울뿐인 재무설계사를 정리했다. 한때 5만 명이나 됐던 재무설계사를 2만 명으로 정예화했다. 저축성 보험을 줄이고, 보장성 장기보험 위주로 영업전략을 다시 짰다. 보험사 경영의 또 다른 축인 자산운용은 외부 운용사에 위탁했다. “떡은 떡집에 맡겨야 한다”는 게 신 회장의 지론이었다.



신창재 회장(오른쪽)이 2008년 재무설계사 고객만족대상 시상식에서 직접 만든 쿠키를 수상자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교보생명은 2009회계연도에 2916억원의 순이익을 내 업계 1위를 기록했다. [교보생명 제공]
회사에 다시 신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단 한 개의 보험상품만 팔더라도 완벽하게, 철저하게 했다. 고객들이 다시 교보생명을 찾기 시작했다. 13회차 보험유지율은 2005년부터 80%대로 뛰어올랐다. 당기순이익도 그해에 2319억원을 기록했다.



자기자본도 2005년에 1조4000억원을 돌파했고, 지난해에는 3조5414억원으로 늘었다. 지난해 3월 결산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모든 금융사가 부진을 면치 못했는데도 교보만은 291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국내 생명보험업계에서 가장 많은 액수다.



이런 성과는 세계에서도 인정받았다. 지난해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세계 재보험콘퍼런스에서 교보생명은 ‘아시아 최고 생명보험사’ 상을 받았다. 2005년 발행했던 2500억원어치의 후순위채권도 지난 2일 모두 상환했다.



신 회장은 대표이사로 취임한 당시를 이렇게 말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는 영혼이라도 팔려고 했던 시기였죠.”



그가 가장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교보생명 직원들이다.



“별 경험이 없는 새내기 경영자를 믿고 힘써 주었던 직원들이 있었기에 회사의 성장이 가능했습니다.”



이런 임직원 간의 유대와 탄탄한 영업력을 바탕으로 교보생명은 2015년까지 총자산 100조원, 당기순이익 1조원이라는 중장기 목표를 내걸었다.



김종윤 기자




여성 설계사 발 씻어주고 … 송년회선 기타 치고 노래도



신창재 회장은




신창재(57) 회장은 직원들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 사람이다. 여사원 모임 송년회에 참석해 기타를 치고 노래를 했다. 고객만족 시상식에서는 직접 과자를 구워 재무설계사에게 나눠준 적도 있다. 2007년 시상식에서는 남편을 잃은 역경을 극복하고 우수한 성과를 올린 여성 재무설계사의 발을 직접 씻어 주기도 했다.



그는 “최고경영자와 임직원 사이에 가로 놓인 마음의 벽을 허물고 소통하기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100번의 말이나 지시가 아닌 리더의 솔선수범’이다. 이 말은 그가 서울대 의대 교수(산부인과 전문의)로 재직할 때부터 지켰던 신념이다. 그는 1996년 11월 창업자인 고 신용호 회장의 권유로 교보생명에 발을 디뎠다.



“교수로서의 연구 성과와 경력을 접고 낯선 직장으로 옮기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입사 당시 회사 사정은 좋지 않았다. 대표이사가 된 2000년에도 회사는 흔들렸다. 이런 위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따뜻한 감성 경영’이다. 그는 새로운 경영방침을 확산하려면 먼저 직원들의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봤다. 그래서 필요한 게 최고경영자의 솔선수범이다. 최고경영자가 먼저 마음을 열고 직원을 대해야 한다는 신념은 이렇게 나왔다.



신 회장은 의사 경험이 경영에 크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임신부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해 신속하게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때 쌓은 결단력이 기업 경영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경쟁회사가 대부분 외형 확대 위주의 경영전략을 펼 때 이익 중심의 내실 경영으로 전환한 것도 이런 결단력을 갖췄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여성 환자를 많이 상대한 것도 사내 소통을 원활히 할 수 있었던 요인이다. 그는 여성들과 대화를 잘하는 경영자다. 여성 중심의 재무설계사들과 호흡도 잘 맞는다. 이게 탄탄한 교보생명 영업력의 원천이다.



신 회장은 “영업의 핵심은 고객 만족”이라고도 강조했다. 교보생명은 고객만족경영대상 5년 연속 수상으로도 유명하다. 이런 고객 만족 철학을 전파하기 위해 교보생명은 자체 개발한 고객만족 교육 프로그램인 ‘다윈(Da-Win) 서비스’를 관공서·학교·병원 등에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현재까지 이 교육을 받은 사람은 35만 명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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