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로스차일드 CEO 외부 영입 개혁인가 시간 벌기인가

‘가족은행의 경영자, 이사장 등의 중요한 직책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직계 남성이 담당한다’.



1812년 9월 12일. 로스차일드 가문의 창시자인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는 이런 유언을 남겼다. 200년 가까이 지켜져 온 이 원칙이 지난달 깨졌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투자은행인 NM로스차일드&선스의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가문과는 관련이 없는 전문 경영인이 임명된 것이다. 주인공은 니겔 히긴스(49·사진).



로스차일드 가문의 7대손인 데이비드 로스차일드 회장은 이에 대해 “변화는 자연스럽고 건강한 일”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런 변화를 로스차일드가 부호들의 자산을 관리하는 전통적 투자은행에서 골드먼삭스와 같은 트레이딩 전문 투자은행으로 바뀌는 신호로 보고 있다. 로스차일드&선스의 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 58억834만 달러였다. 골드먼삭스의 14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한때 세계 금융계를 쥐락펴락했던 것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이번 인사를 로스차일드가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는 것이다. 또 로스차일드가 이번 인사를 기점으로 비밀주의에서 벗어나 시장과 더 가까워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로스차일드 가문이 베일을 쉽게 벗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고객을 관리하는 일은 여전히 데이비드 회장이 담당하고, 히긴스는 내부 조직을 강화하는 역할에만 전념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히긴스가 관리자형 CEO에 그칠 수 있다는 얘기다. 히긴스조차 이번 인사에 대해 “혁명이 아니라 변화”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데이비드의 29세 아들은 경영 수업을 받으면서 대를 이을 준비를 하고 있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이처럼 폐쇄적인 이유는 그들이 바로 가계를 통해 이어지는 정보의 독점을 통해 재산을 축적하고 명성을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가문을 일으킨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는 유대인 격리 지역의 가난한 고물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5명의 아들에게 8대에 걸쳐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쳤다. 그것은 형제가 한 몸처럼 똘똘 뭉쳐 유럽 각지의 정보를 빠르게 취합하고, 이를 과감하게 실행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가르침은 1815년의 워털루 전투에서 빛을 발했다. 벨기에 남쪽 워털루에서 벌어진 프랑스와 영국 연합군의 전투에서 형제들은 흩어져 있는 첩보원들의 정보를 수집하는 거점 역할을 했다. 그 결과 영국에 있던 네이선은 가장 먼저 영국의 승전보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영국 국채를 팔아 가격을 하락시킨 뒤 이를 싼값에 되사는 방법으로 엄청난 차익을 남겼다.



로스차일드에겐 고객의 재산과 비밀을 지키는 것이 곧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는 일이었다. 마이어 암셀은 자신의 첫 고객인 헤센의 제후 빌헬름공이 프랑스의 나폴레옹에게 쫓겨 피신했을 때 엄청난 재산 손실을 보면서까지 빌헬름공의 재산을 지켰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빌헬름공의 대외 재정업무를 관장할 수 있었다.



 물론 작은 변화들도 있었다. 1970년대 가족은행을 유한회사로 전환했고, 지금은 여성도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더 큰 변화를 시도할 것인가, 전통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로스차일드의 파격 인사에 국제 금융계가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다.



김경진 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