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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비스마르크 신화’ 이용해 이미지 조작에 성공한 히틀러

1933년의 우편엽서에 나타난 나치의 ‘영웅 계보’. “왕(프리드리히 2세)이 획득하고 수상(비스마르크)이 틀을 잡고 장군(힌덴부르크)이 방어한 것을 병사(히틀러)가 구원하고 통합한다”고 씌어 있다. 나치는 18세기에 프로이센을 유럽 최강의 군사대국으로 만든 프리드리히 2세, 프로이센 중심의 통일을 달성한 비스마르크, 제1차 세계대전의 영웅 힌덴부르크 등의 이미지를 교묘히 이용했다.
1933년 4월 1일은 나치 제3제국 출범 후 처음 맞이한 비스마르크(1815~1898)의 생일이었다. 나치는 모든 매체를 동원해 이날을 경축했고, 선전장관 괴벨스는 라디오를 통해 독일 민족의 놀라운 재탄생을 역설했다. 그는 “비스마르크는 19세기의 가장 위대한 혁명가였고, 히틀러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혁명가”라면서 히틀러(1889~1945)를 비스마르크와 같은 반열에 올렸다. 4월 20일에는 히틀러의 44세 생일을 맞아 전국적 축하행렬이 벌어졌다. 수많은 도시의 거리와 광장은 생일축하 플래카드와 화환으로 뒤덮였고, 국민은 마치 전통적 축제일인 양 이날을 축하했다. 제1차 세계대전 패배 이후 오랫동안 국민이 고대해 오던 강력한 지도자가 마침내 등장한 것 같았다.

1933년 4월 12일 히틀러에 대한 보훔시 명예시민권 수여 제안서는 이렇게 근거를 밝혔다. “현재의 수상 히틀러는 비스마르크 이후 독일의 그 어떤 수상에게도 붙일 수 없었던 민족의 수상 호칭으로 불려 마땅하다. 그는 비스마르크 업적의 대완성을 처음으로 가능케 했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의식적으로 비스마르크와 비슷한 포즈를 취했고, 자신을 그의 이미지와 비슷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비스마르크 숭배를 통해 스스로를 철혈 재상의 상속자로 자리매김함으로써 이제껏 주변적 인물에 불과했던 히틀러는 정통성을 얻고 독일 보수세력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집권 초기 아직 지도자로서 정치적 기반도 카리스마도 없었던 히틀러는 독일 국민을 이끌었던 상징적 지도자들인 프리드리히 2세, 비스마르크, 힌덴부르크 등이 갖는 역사적 연속성과 정통성에 기대야만 했다. 히틀러의 성공 비결은 독일 역사상의 강력한 지도자들의 정치적 신화를 효과적으로 이용한 데 있었다. 호전적 군국주의자들이었던 이들의 영웅주의와 희생정신은 궁극적으로 히틀러의 정복전쟁을 정당화시켜 주었고, 최후의 승리에 대한 확신을 국민에게 심어주었다.

독일 보수세력에 권위, 질서, 군국주의 등을 연상시킨 비스마르크 제국은 무질서, 혼란, 경제적 파산으로 점철된 바이마르 공화국과 대비되었다. 히틀러는 스스로를 프로이센 전통의 수호자로 연출함으로써 자신에게 의혹의 시선을 보내던 보수적 시민계급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나치는 그후 끊임없이 비스마르크의 이미지를 자신들의 선전에 끌어들였다. 물론 그것은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나치 이데올로기에 끼워맞춰진 이미지였을 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그럴듯한 외양 뒤에 감춰진 참모습을 꿰뚫어보는 국민의 지혜가 절실하다.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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