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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의 세상읽기] 세계가 주시하는 천안함 위기관리

세계가 주시하는 천안함 위기관리

천안함 침몰 사태로 이명박(MB)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이 국제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미국과 중국, 일본과 러시아 등 주변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MB 정부의 대응을 주시하고 있다. 침묵하고 있는 북한도 일거수 일투족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을 것이다. 멀쩡하던 1200t급 초계함이 졸지에 두 동강 나 수십 명이 실종된 이번 사태는 기본적으로 MB 정부에 대형 악재(惡材)고, 위기임에 틀림없다.

사건 발생 열하루가 지났지만 실종된 46명의 승조원 중 45명의 생사는 아직 확인조차 못하고 있다. 목숨을 건 수중 탐색 과정에서 아까운 인명이 희생됐고, 수색 활동에 동참했던 민간 어선의 침몰 사고로 선원 9명이 사망 또는 실종됐다. 보다 못한 실종자 가족들의 요청으로 수색·구조 작업이 중단되면서 선체 인양이 시작됐지만 본격적인 위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실종자들이 선체 안에 갇혀 있을 줄 뻔히 알면서도 발만 동동 굴러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온 국민은 비통하고 참담했다. 누구보다 애가 탄 건 실종자 가족들이었을 것이다. 군(軍)의 우왕좌왕하는 대응을 지켜보며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갔을 것이다. 침몰한 함수와 함미에 부표(浮標)만 제대로 설치했더라도, 기뢰제거함을 기다릴 게 아니라 처음부터 음파탐지기를 투입했더라면, 잠수사용 감압챔버라도 충분히 확보했더라면…아쉽고 속 터지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 군도 당황했을 것이고, 조류(潮流)와 시계(視界), 날씨 등 모든 조건이 최악이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건 너무한 것 아니냐”는 항의가 충분히 터져나올 만했다.

일러스트=강일구
그럼에도 실종자 가족들이 자진해서 수중 구조작업 중단을 요청하는 대승적 결단을 내린 것이 MB 정부로서는 그나마 다행이다. “내 자식 살리려다 남의 자식 죽는 꼴 못 보겠다”며 희생적 용단을 내려준 덕에 더 이상의 무고한 희생은 막을 수 있게 됐다. MB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해야 한다.

MB 정부의 초기 대응은 분명 실패했다. 군의 대응도 문제지만 MB의 리더십도 문제였다. 사태 초기에 대통령이 직접 국민 앞에 나와 위기에 정면으로 맞서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제대로 된 위기관리의 첫 단추였다. 국민이 기대한 것은 그의 육성(肉聲)이었다. 하지만 MB는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만 보여줬다. 그의 말은 대변인의 목소리로 국민에게 전달됐을 뿐이다. 위기에서 믿고 따를 수 있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심어주지 못했다.

그렇다고 아직 실망할 건 아니다. 진정한 위기관리가 MB 정부를 기다리고 있다. 진상 규명과 그에 따른 대응이다. 국제사회가 주시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과연 한국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주재할 정도의 국격(國格)을 갖춘 나라인지도 여기서 판가름 날 것이다. 한반도의 운명이 달려 있는 중차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당연히 MB 정부는 진상 규명의 정도(正道)를 따라야 한다.

진상을 규명하는 첫 단계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다. 유불리를 떠나 상정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가능성을 하나씩 지워 나감으로써 경우의 수를 줄여 나가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이어스(bias)를 철저히 배제하는 것이다. 선입견이나 편견, 예감이나 직감, 고려나 배려에 의해 압축 과정이 왜곡되거나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마지막 단계는 최종적으로 남은 가능성을 입증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는 일이다. 심증만으로는 안 된다. 누구도 시비를 걸 수 없는 확실한 물증이 뒷받침될 때 진실이 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는 일단 MB가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 같다. 북한과의 연계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듯한 군의 입장과 확실히 선을 긋고, “원인 규명의 속도보다 정확성이 중요하다” “과학적이고 종합적으로 엄정한 사실과 확실한 증거에 의해 원인이 밝혀지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미국만 아니라 가급적 여러나라 전문가를 합동조사단에 참여시킨다면 국제적 객관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물론 진실 규명은 쉽지 않을 것이다. 물증을 찾는 것은 한강에서 바늘 찾기가 될지도 모른다. 원인 규명이 안 된 채 영구미제로 남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더라도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나올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한다. 국민도 이를 양해해야 한다. 한반도의 안정이 흔들리는 것을 원치 않는 주변국 모두의 기대와 달리 모두에게 ‘불편한 진실’이 드러남으로써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그래도 피하거나 물러서서는 안 된다. 어떤 시련에도 의연히 맞서겠다는 사자 같은 자세로, 인내심을 갖고 진실을 파헤치고, 그 결과에 따라 내부 또는 외부의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 그것이 천안함 침몰로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는 길이기도 하다.

위기관리의 최고 경지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것이다. 그 열쇠는 정직성과 투명성, 책임감이다. 비록 초동대응이라는 첫 번째 위기관리는 실패했지만 진실 규명과 문책이라는 두 번째 위기관리에서 성공한다면 MB 정부는 위기를 기회로 바꾼 정부로 국제사회에 각인될 수 있을 것이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일러스트=강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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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