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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나라의 부름

1914년 9월 6일, 파리는 바람 앞의 등불 같았다. 성큼성큼 파리 외곽 50㎞까지 진격한 독일군 손에 에펠탑이 금세라도 잡힐 듯했다. 마른(Marne) 강변에서 이들을 막아선 프랑스군의 유일한 희망은 원군뿐이었다. 마침 파리에 4000명 이상의 병력이 있었지만 수송이 문제였다. 기차는 부상병과 피란민으로 발이 묶였고 말을 수천 마리씩 동원할 길도 없었다.

파리 방위군 사령관이 묘안을 냈다. 600여 대에 달하는 시내 택시를 동원하자는 거였다. 군의 요청을 받은 택시 기사들은 “나라가 우리를 부른다”며 승객의 양해를 구하곤 하나 둘 집결지로 모여들었다. 이들이 적의 공격 위험을 무릅쓴 채 밤길을 쉼 없이 달린 덕에 증원 병력이 속속 최전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열세에 몰린 독일군은 퇴각 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도록 파리에 얼씬도 못했다. ‘마른의 기적’을 이끈 파리의 택시 기사들은 종전 후 국가 유공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앨프리드 크로스비, 『태양의 아이들』).

전쟁은 군인만 하는 게 아니다. 국가의 부름을 받드는 데 군(軍)과 민(民)이 따로 없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민생부터 짓밟히는 탓이다. 서흔남이란 실존 인물을 모델로 소설가 김훈이 『남한산성』에서 그려낸 ‘서날쇠’ 역시 그랬다. 청군에 쫓겨 남한산성에 갇힌 인조가 성 밖으로 원군을 청하는 격서를 돌리려 하나 밀사(密使)감을 찾지 못해 애를 태운다. 사대부는 길을 몰라 못 가고 천한 군병은 못 미더워 안 된다고 말씨름만 이어지던 끝에 예조판서 김상헌이 평소 눈여겨봐둔 대장장이 서날쇠를 찾아가 간청한다. “나라에서 하라시니 천한 백성이 어쩌겠습니까.” 수락하며 그가 하는 소리다. “조정이 돌아가야…저도 먹고 살 수 있을 터이니….” 임금의 밀지를 군에 전하고 돌아온 서흔남은 천민임에도 정2품 벼슬을 받았다고 역사는 전한다.

천안함 침몰 사태 이후 정부의 요청을 받고 기꺼이 수색·인양작업에 뛰어든 민간인이 수없이 많다. 그물이 찢겨 나가고 급기야 어민 9명이 사망·실종하는 참변까지 겪었지만 이들의 헌신은 계속되고 있다. 나라가 있어야 민초도 있으니 당연한 일이란 게 그네들 소회다. 하지만 나라는 그 고결한 희생을 당연시해선 안 된다. 그들 덕에 위기를 이겨내고 있는 만큼 보답하는 게 순리다. 프랑스와 조선이 그러했듯 말이다.

신예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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