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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식목일 … 꿀벌들의 대화


꿀벌, 대한민국에서 이들의 법적 지위는 ‘가축’이다. 축산법 시행규칙은 ‘오리·거위·칠면조 및 메추리’ 다음으로 ‘꿀벌’(제2조 제3항)을 가축 목록에 올려놓았다. 농림수산식품부에서 꿀벌을 담당하는 부서도 축산경영과다. 한국양봉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에 이미 벌을 키워 꿀을 생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근거는 백제의 태자 ‘풍(豊)’이 일본에 양봉을 전했다는 『일본서기』의 기록이다. 9000년 전의 스페인 동굴벽화에도 꿀벌이 보인다고 한다. 장구한 세월 인간과 함께, 또 꽃과 나무와 함께 살아온 꿀벌. 5일 식목일을 맞아 그들의 눈을 통해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을 짚어보고, 다양한 꽃나무를 심어야 하는 이유를 알아본다.

‘대한 꿀벌나라’의 지역 대표와 해외 주재 대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긴급 대책회의였다. 주제는 ‘우리 앞에 닥친 위기의 본질과 대응 방안’. 먼저 꿀벌나라 경제연구소장이 지난해 사정을 보고했다.

“지난해는 우리 꿀벌들에게 정말 최악의 해였습니다. 꿀 생산량이 1만5600t밖에 안될 겁니다. 2008년에 비해 43%나 적습니다. 우리가 게으른 게 아니었어요. 먹을 게 없어 그런 겁니다. 우리의 주식인 아까시나무 꽃을 보세요. 도대체 활짝 피질 않습니다. 비가 자주 내리고 바람까지 사납게 불어 그나마 핀 꽃도 금방 집니다. 올해도 이렇다면 우리들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습니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기입니다.”(아까시나무는 꿀 원료인 ‘밀원(蜜源)’의 70~80%를 차지한다)

꿀벌들이 웅성거렸다. 강원 지역 꿀벌 대표가 벌떡 일어섰다.

“올해 겨울은 알다시피 정말 추웠습니다. 얼어죽은 동료들도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도 꿀벌들이 크게 줄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한국 양봉인들은 우리를 잘 보호해 한파 피해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추위 속에 고생한 양봉인 도우미에게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하지만 올봄의 저온현상은 특히 심각했습니다. 아기 꿀벌들을 제대로 키울 수가 없어요. 또 여러 나라에서 꿀벌 집단실종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그 전말을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의심스러운 실종 사건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두려움에 떨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2006년 가을 미국의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처음으로 꿀벌 실종사건이 보고됐다. 이른바 ‘CCD(Colony Collapse Disorder, 군집붕괴)’다. 벌통에 여왕벌과 아기 벌을 놔두고 일벌들이 홀연히 사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미 농무부는 CCD로 인해 2006년 하반기 전체 꿀벌 개체의 25~40%가 줄었다고 추정했다.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진 회의장. 경기도 꿀벌 대표가 조용히 등단했다.

“기후변화의 영향도 큽니다. 옛날엔 아까시나무 꽃이 저 남쪽부터 피기 시작해 서서히 북상했는데, 지금은 거의 동시에 핍니다. 심지어 북쪽이 먼저 피기도 하지요. 지난해 서울 도심의 아까시나무 꽃이 해남 땅끝마을보다 3일 빠른 5월 10일에 피지 않았습니까. 아까시나무 꽃이 거의 동시에 피면 꿀을 딸 수 있는 기간이 짧아집니다. 일을 나눠 해야 할 텐데, 한꺼번에 몰리니…. 지난해에는 단 2주만에 1년 농사를 다 지어야 했습니다. 천재지변입니다.”

꿀벌 자원연구소장이 답변에 나섰다.

양봉업자가 벌꿀을 모으는 모습. [중앙포토]
“한국사람들은 1960~70년대 아까시나무를 본격적으로 심었습니다. 그런데 80년 중반 이후에는 새로 심은 게 거의 없어요. 그러니까 요즘 아까시나무는 나이가 대개 30~50살쯤 됩니다. 그러는 동안 소나무나 참나무가 울창해지자, 숲 속에서 아까시나무들이 버티기 어려워졌습니다. 우리 식량의 보고이자 생명의 젖줄인 아까시나무 밭이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아 나서야 합니다.”

국립산림과학원 성주한 박사(임업연구관)는 “아까시나무 재배면적이 1993년 12만ha에서 현재 8만ha 정도로 줄었다”고 말했다. 쓸모없다는 이유로 베어낸 데다, 2002~2006년 황화(黃化·잎이 누렇게 변하는 현상) 피해로 죽어간 나무가 많았기 때문이다. 성 박사는 “아까시나무를 대신하도록 백합나무·헛개나무 등 꿀을 딸 수 있는 나무를 심고 있다”고 말했다. 아까시나무 20년생 한 그루에서 1년에 딸 수 있는 꿀은 대략 2㎏이다. 백합나무에선 1.8㎏, 헛개나무에선 0.24㎏, 쉬나무에선 0.41㎏의 꿀을 딸 수 있다.

꿀벌나라 프랑스 주재관이 거들었다.

“파리에는 정원이나 발코니에 꽃들이 활짝 피어 있습니다. 농촌에 비해 도시에서 오히려 꿀을 따기가 편하답니다. 농촌보다 도시에서 꿀을 4~5배나 많이 얻을 수 있어요. 우리 꿀벌들도 안전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도시들은 너무 삭막합니다. 벌들이 꿀을 딸 수 있는 도시, 다시 말해 ‘꿀맛 도시’를 만들어야 합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대인간 홍보위원장은 다소 굳은 표정으로 사방을 쳐다보며 말했다.

“인간들이 우리의 역할을 별것 아닌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뉴욕 타임스에 ‘벌이 사라진다고 해도 전체 식량 생산은 6%밖에 줄지 않을 것’이라는 칼럼이 실렸습니다. 게다가 그 칼럼은 꿀벌들이 꿀만 생산하고 활동반경(대략 2㎞)이 좁다고 비난하면서, 보호해야 벌은 야생벌이라는 섭섭한 말까지 했습니다.”

그러자 일본 주재관이 참을 수 없다는 듯 호통을 쳤다.

“ 우리는 꿀만 따먹진 않습니다. 열매 맺는 데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인간과는 상생관계에 있습니다. 그걸 널리 알려야 합니다.”

곤충학자들은 CCD 등으로 꿀벌이 격감하면 인류의 존속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본다. 수술의 꽃가루를 암술머리에 옮겨줘야 하는 꽃가루받이 식물의 열매가 제대로 맺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과일이나 야채류가 결정적인 타격을 받는다. CCD의 원인은 ▶전자파 ▶살충제 ▶기후변화 ▶바이러스 ▶유전자 변형작물 등으로 추정될 뿐 아직 명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고 있다. 이승환 서울대 교수는 “여러 스트레스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게 학계의 대체적 견해”라고 말했다.

주일 꿀벌대사의 의견에 박수가 터져나왔다. 회의장엔 꿀벌의 날갯짓으로 가벼운 진동이 퍼져나갔다. 격론 끝에 대인간 호소문이 채택됐다.

“우리가 1년에 생산하는 꿀이나 로열젤리는 4000억원어치나 된다. 우리와 동고동락하는 양봉인도 3만5000~4만 명에 이른다. 우리의 수분 활동으로 탐스러운 과일이 열린다. 삼천리 방방곡곡 우리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숲이 없다.

우리 꿀벌들이 사는 길이 곧 인간들이 사는 길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꽃을 인간도 좋아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와 인간은 서로 닮았다. 오늘 우리 꿀벌들은 제안한다. 부디 꽃나무를 많이 심고 정성껏 가꿔달라. 다양한 꽃을 심어달라. 인간들이여! 우리는 은혜를 아는 존재다. 더 달콤한 꿀과 더 많은 과일로 보답하겠다.”

허귀식·최현철 기자

▶도움말 주신 분=이연섭 농림식품부 축산경영과 사무관, 최용수 국립농업과학원 잠사양봉소재과 이학박사, 성주한 국립산림과학원 임업연구관, 이승환 서울대 교수, 정철희 안동대 교수, 이상철 한국양봉협회 연구소장, 윤상복 에덴양봉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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