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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 따라 하다가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산다는 것은 끝없이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리는 일이다. 부장으로 일한다는 것은 부장으로서 수없이 많은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한다는 말인지 모른다. 언제 기회가 되면 내가 하루에 대체 몇 번의 결정을 내리는지 직접 세어보고 싶다. 이렇게 말하면 ‘설마?’ 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세상에는 정말 그런 걸 세어보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영화감독은 한 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대략 일만오천 번 정도의 결단을 내린다고 한다. 게다가 그런 결정을 내릴 때 함께 의견을 나눠야 할 사람들이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사람들이다. 가령, 항상 자신의 판단이 정확하다는 확신에 가득 찬 제작자, 돈뿐 아니라 자신의 예술적 소양도 투자하고 싶어 하는 투자자, 감수성이 풍부하고 개성이 강한 배우들, 각자 자기 분야의 전문가인 스태프 등등. 감독은 그들과 함께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에 걸쳐 공동의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그러니 탁월한 리더십이 없다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자리가 영화감독이겠다.



감독에 비할 수야 없겠지만 부장이란 자리도 리더십이 필요하기는 마찬가지다. 나는 감독에게서 리더십을 배우기로 했다. ‘왕의 남자’ ‘님은 먼 곳에’ 등을 연출한 이준익 감독은 칭찬하는 리더다. 배우나 스태프가 아이디어를 내면 이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아, 그거 좋은데. 그거 참 재미있겠네.”

이 정도의 칭찬은 누구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감독의 탁월한 점은 그다음이다. 칭찬 다음에 가벼운 자책을 덧붙인다.

“나는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이런 말을 들으면 배우나 스태프는 기분이 좋아져서 또 좋은 아이디어를 궁리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감독에게서 칭찬과 동기부여의 리더십에 대해 배운다.

나는 또 봉준호 감독에게서도 배운다. ‘살인의 추억’ ‘괴물’을 만든 봉 감독은 질문하는 리더다. ‘살인의 추억’의 마지막 터널 신을 찍기 사흘 전 그는 송강호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장면이 참 중요한데. 이 장면에서 박두만 형사가 뭔가 한마디 중요한 말을 꼭 할 것 같지 않아요?”

그 말을 들은 송강호는 용맹정진한다. 화두를 붙든 선승처럼 사흘 내내 밥을 먹으면서도 그 생각, 똥을 누면서도 그 생각, 꾸벅꾸벅 졸면서도 그 생각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온 대사가 그 유명한 “밥은 먹고 다니냐?”다. 권한 위임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나는 두 감독에게 배운 리더십을 활용해보기로 한다. 마침 새로운 상품의 이름을 어떻게 짓나 하는 회의가 열린다. 동료들은 아이디어를 쏟아낸다. 대개 좋은 이름은 조금 전 내가 떠올린 것들이다. 내가 먼저 말했어야 하는데. 나는 번번이 타이밍을 놓친 자신을 책망한다. 내 얼굴은 점점 굳어진다. 나는 리더에서 경쟁자로, 비판자로 자리를 옮겨간다. 나는 온갖 유치한 이유를 들어 그 명칭들이 적절하지 않다고 평가하고 있다. 간신히 나는 감독 리더십을 떠올린다.



“이 명칭이 참 중요한데. 뭔가 더 좋은 게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동료들은 난색을 표한다. 그렇게 난도질해 놓고 뭘 또 더 내놓으라는 건지 송강호를 바라보는 박해일의 눈으로 나를 본다. 박해일이 말한다.

“이 이상 나올 게 더 없어요. 그냥 이 가운데서 하나 선택하죠.”

나는 감독 리더십을 배운 사람답게 이렇게 말한다.

“아, 그거 좋은데. 나는 왜 그 생각을 못했지?”



김상득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대한민국 유부남헌장』과 『남편생태보고서』책을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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