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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부인들 어떤 옷 입었는지 한눈에 보실래요?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이경희 기자의 수집가 이야기 - 한국현대의상박물관 신혜순 관장

1 드레스 ‘청자’, 최경자, 1962년. 한국에서 최초로 열린 1962년 국제 패션쇼에 출품한 작품. 한복의 무지개치마를 응용해 고려청자의 볼륨감을 살렸다. 학은 이세득 화백이 그려 넣었다.2 델포 드레스, 포르투니, 1924년. 스페인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패션 디자이너인 포르투니는 수백 개의 주름으로 이뤄진 독특한 직물을 개발해 특허권을 따냈다. 그의 작품은 의상 전문 수집가라면 누구나 탐낸다고.3 코르셋, 영국, 1740년. 수집품 중 가장 연대가 오래된 것이다. 옛날 유럽 여인들은 코르셋으로 허리를 꽉 조여 성장을 억제하면서, 기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어머니 최경자(99) 여사는 한국 패션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1937년 한국 최초 양장점 ‘은좌옥’을 열고, 이듬해 ‘함흥양재전문학원’을 설립했다. 64년 최초의 차밍스쿨(모델학교)을 열었고, 68년엔 최초의 패션잡지 ‘의상’을 창간했다. 한국인 최초로 양재학원을 설립하던 해, 맏딸 신혜순(72·국제패션디자인학원장)씨가 태어났다. 어린 혜순은 어머니가 가르치는 재단 밑에서 떨어진 천 조각을 주워 인형 옷을 만들며 자랐다.



신씨는 뉴욕의 세계적 패션 명문 뉴욕 주립대 부설 FIT를 다닌 최초의 한국 학생이었다. 71년 한국에 돌아와 디자이너로서 이름을 떨쳤고, 어머니의 뒤를 이어 후진을 양성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어머니가 거의 모든 ‘최초’를 이미 휩쓸어버린 후였다. 단 하나, ‘한국현대의상박물관’만은 예외였다.



“FIT에서 공부를 할 때 패션박물관에 살다시피 했어요. 박물관은 샤넬·베르사체·디올·니나리찌 등의 작품을 초창기부터 5년에 하나씩은 기증받아 갖추고 있었죠. 한국에도 의상 박물관은 꼭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에겐 양장 박물관이 없었잖아요. 한국 디자이너들의 작품에 카피가 많다는데, 기존에 어떤 디자인이 있었는지 직접 보지 못하면 카피를 뜰 수밖에 없어요. 패션의 역사를 알면 자연스레 창의적인 작품이 나오죠.”



93년 12월 24일 서울 남산동 학원 빌딩에 박물관을 열었다. 어머니가 보관하고 있던 의상이 박물관의 기초가 됐다. 신씨의 첫 제자였던 이상봉씨를 비롯해 박항치·설윤형·문광자·신장경·이철우·안윤정 등 수많은 디자이너들도 작품을 기증했다.



박물관엔 윤복희가 68년에 입었던 미니스커트(최경자 작), 59년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여한 미스코리아 오현주씨가 입었던 아리랑 드레스(노라노 작), 이상봉의 2007년작 한글 드레스 등 한국 패션 디자인의 역사를 꿰뚫는다. 대통령 영부인 의상도 주요 컬렉션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39년간 입은 회색 수트, 권양숙 여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방북할 당시 입었던 진달래 빛 정장 등 역사적 현장에 있었던 옷을 소장하고 있다.



그는 “영부인들에게 기증해 달라는 편지를 보내면 기증받기까지 반년에서 5년 정도는 걸린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휘호 여사는 일주일 만에 가지러 오라는 전갈을 보내셨죠. 한지로 만든 상자에 옷을 넣고, 그 옷을 입은 사진까지 넣어서 기증했어요. 옷을 안 버리려면 숨을 쉬어야 하거든요. 사진이 없으면 그 옷을 직접 입었는지 입증할 길이 없고요. 확실히 사회적으로 일을 많이 하신 분이라 다르구나 싶었어요.”



파리에서 공부한 맏딸 김용희씨는 현대 의상의 뿌리가 되는 유럽의 옛 복식을 수집해 보내줬다. 이렇게 3대에 걸쳐 2000여 점을 모았다. 한국 패션 100년사를 완성하는 작업이었다.의상을 보관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직물은 쉽게 벌레가 먹고 곰팡이도 슨다. 부피도 커서 자리를 많이 차지한다. 충남 예산에 있는 시댁 땅에 수장고가 있다.



“한 해에 한두 번은 옷을 전부 밖에 널어 말려요. 곰팡이가 슬면 끝이거든요. 신발도 300켤레, 가방 200개, 모자도 200개인데 일일이 내다 말리려면 아주 큰 작업이죠.”



새로 온 가사 도우미가 집에 펼쳐둔 유물을 검정 쓰레기 봉투에 담아 내놓는 바람에 한바탕 난리를 치른 경험도 있다. “그림이라면 아무도 버릴 생각을 못 할 텐데, 수십 년 된 나달나달한 옷은 당연히 버릴 거라 생각한 거죠. 얼마나 아찔했던지….”

그렇게 모으고 보관한 자료들이지만 박물관은 한 5년간 문을 닫았다. 패션학원이 예전처럼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도 아닌데다, 경기도 침체된 탓에 운영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도 기증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냥 손 놓고 있을 순 없었다. 2008년 경기여고 경운박물관, 2009년 롯데백화점 명품관 애비뉴엘에서 박물관 소장품으로 ‘한국 패션 100년’ 전시를 열었다. 우여곡절 끝에 박물관은 종로구 충신동으로 자리를 옮겨 15일 재개관한다. 10층짜리 빌딩에서 2개 층을 빌렸다. 인터뷰하러 가던 날, 신 관장은 목장갑을 낀 채 전시실 세팅을 하고 있었다.



“기증해주신 분들이 많아 마냥 내팽개칠 수가 없어요. 앞장서서 나아간 어머니, 수많은 디자이너들의 도움으로 마련된 박물관이거든요. 저는 옷밖에 못 모으지만, 소재별로 정리하고, 액세서리도 정리하는 큰 박물관이 필요해요. 패션을 공부하는 후배들을 위해 패션 업계 전체가 나서야죠.”



이경희 기자, 사진 최정동 기자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 더 많은 정보를 원하시면 블로그 ‘돌쇠공주 문화 다이어리(blog.joins.com/zang2ya)’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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