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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위로는 내 문제를 누군가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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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일을 하는가.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41)은 최근 저서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이렇게 말한다. “(일은) 우리의 가없는 불안을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성취가 가능한 몇 가지 목표로 집중시켜줄 것이다. 우리에게 뭔가를 정복했다는 느낌을 줄 것이다. 품위 있는 피로를 안겨줄 것이다. 식탁에 먹을 것을 올려놓아 줄 것이다. 더 큰 괴로움에서 벗어나 있게 해 줄 것이다….”

‘삶의 위안’ 주는 젊은 명상가 알랭 드 보통을 런던에서 만나다

또 우리는 어떤 동기 때문에 높은 지위를 구하려고 달려드는가? 그 이유는 그곳에서 물질이나 권력보다는 사랑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그는 자신의 책 『불안』을 시작한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여행의 기술』 『행복의 건축』 등으로 한국 독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알랭 드 보통. 그는 누구인가. 왜 고등학교에서 알랭 드 보통의 책이 필독서로 선정되는가? 그는 2003년 프랑스 문화부 장관으로부터 ‘슈발리에 드 로드르 데자르 에 레트르’라는 기사 작위를 받았고 뛰어난 문장가에게 주는 ‘샤를 베이옹 유럽 에세이 상’을 같은 해에 수상한 작가지만, 우월감이나 자만심을 전혀 느낄 수 없다. 현재 다섯 살, 세 살배기 두 아들의 아버지로 자식들이 큰 뒤에도 자신의 근처에 두고 싶어하는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동네에 살면 매일 식사를 같이 하고 하루 종일 이야기를 나누고픈 친구 같은 사람이다.

중앙SUNDAY가 찾아간 알랭 드 보통의 런던 서섹스(Sussex) 사무실은 조용하고 안뜰이 보이는 1층에 위치해 있었다. 실내는 창살을 통해 들어온 따뜻한 3월의 봄 햇살로 가득했다. 그의 온화한 분위기와 조용하고도 분명한 말투는 인터뷰가 예상한 것보다 길어진 것조차 느낄 수 없게 했다.

-언제부터 글을 썼나.
“사춘기 시절인 18세부터 일기를 썼다. 그때는 나의 감정, 느낌을 일기로 폭발시켰다. 그러면서 내가 종이 위에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정말로 즐기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책을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스물두 살이던 1991년 영국은 큰 경제 불황기였다. 그때 난 책을 한 번 써보고 무슨 일이 일어나나 한 번 보자고 생각했다. 내 첫 작품인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Essay in Love)』를 출간했을 때는 그에 대한 큰 기대가 있었다.”

-일기나 소설의 초본을 누구에게 보여주고 인정을 받으려 한 적은 없나.
“그런 적은 없다. 대학 시절 난 우등생이었고 논문 등도 매우 잘 써서 제출했었다. 하지만 그건 다른 종류의 글이다. 사실 내 글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읽을까 하는 생각은 해봤다. 어쨌거나 글을 쓰기로 결정한 것은 내게는 좋은 결정이었다.”

-독자들이 당신의 글을 통해 당신을 잘 알게 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나. 당신에 대한 선입견을 가질 수도 있다.
“누가 나에 대한 선입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보다 내 책을 읽고 마음에 상처를 입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 두렵다. 누구에 대해 글로 얘기할 때는 일반적으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는 것보다 그 사람의 주변 상황에 대해 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상황 설명을 잘 이끌어 나가야 한다. 난 내가 얘기하는 사람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스스로 글 쓰는 것을 즐기는가.
“나보다 내 글을 읽는 독자들이 더 흥미로워하는 것 같다. 그들은 책을 읽으며 그들의 매우 개인적인 부분을 자극하는 곳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읽기도 한다. 가령 ‘어떻게 이 작가가 나를 알지도 못하면서 내 마음을 이렇게 잘 읽어냈을까’라고 생각한다. 이는 곧 나만의 생각이 아닌, 보편적인 생각이라는 얘기다. 일반적으로 많이 언급하지 않는 부분일 뿐이기도 하고.”

-당신은 다른 사람과 무엇이 다른가.
“ 내겐 모든 것을 분석하려는 강한 욕구가 있다. 별것 아닌 것에 대해서도 몇 시간 동안 생각하곤 한다. 왜 누구는 잘생기고 누구는 못생겼나, 우리는 왜 햇살 가득한 날 이러저러한 느낌을 받나, 사랑이란 무엇인가, 섹스는 무엇인가, 정치란 무엇인가 등 모든 주제에 대해 생각하고 또 말하고 싶다. 그런데 내 주변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금기에 관한 것을 글로 쓴다는 것은 위험하지 않나. 말로 하면 잊혀질 것들도 글로 쓰면 남지 않나.
“그럴 수도 있지만 쓴다는 것은 또한 나 자신을 발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글을 쓰면서 적을 만들 수도 있다. 난 적을 만들고 싶지 않고 또 어쩌다 생긴 적들이 누군지도 모른다. 그들은 내 글에 대해 화내고 끔찍한 말들을 하기도 한다. 내 글은 그들에게는 사실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면 결국 난 모든 사람들이 나를, 혹은 내 글을, 혹은 그 상황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어쨌거나 글을 쓴다는 것은 스스로를 발가벗기는 일이기도 하다. 좋든 싫든 간에 노출임에 분명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또한 남들로부터 나에 대한 판단을 받는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남에게서 나는 이렇다 저렇다라는 판단을 받는다는 것은 상당히 이상한 느낌이다.”

-그래도 계속 글을 쓸 것인가.
“물론이다. 끔찍한 e-메일을 받더라도 하루의 일과를 마치면 매일이 흥미롭다는 사실을 느끼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당신의 글을 읽으며 해결책이나 답변을 얻기를 기대하나.
“난 한 권의 책이 독자에게 주는 해결책이 뭐냐에 대한 문제라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책은 해결책을 주지 않는다. 삶의 커다란 문제에 대해서는 남이 쓴 이렇다 할 해결책이 없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처한 문제와 비슷한 접합점을 책을 통해 찾으려 한다. 책에서 자신과 비슷한 상황을 찾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남들도 나와 같은 상황이구나’ 혹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누군가가 그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는다.
최고의 위로는 자신의 문제에 대해 누군가가 생각하고 또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당신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친구를 찾아가면 그는 당신에게 조언이나 해답을 주고 싶어 한다. 그런데 당사자는 단지 누군가가 자신의 문제를 들어주기만을 바랄 수도 있다. 단순히 누구에게 하소연을 하고 싶을 뿐이지 그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중 하나다. 내 글은 그들에게 답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그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확인을 시켜주기 위한 것이다.”

-어디서 해박한 지식을 얻나. 책인가 아니면 인간관계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시대에 정보를 얻는다는 것은 더 이상 무슨 기술도 아니고 큰 문제도 아니다. 인터넷, 구글, 잡지, TV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책값은 싸고 도서관은 어디에나 있다. 그래서 이젠 누군가가 똑똑하다는 것은 ‘많이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 더 이상 아니다. 누구나 무엇이든 알 수 있다. 관심사는 얼마나 많은 커넥션을 갖고 있고 정보망을 통해 얻은 많은 아이디어를 어떻게 잘 조정하고 사용하느냐 하는 것이 핵심이다.

많은 것에 흥미를 갖는 것보다 그것에 얼마나 큰 의미를 부여하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예를 들어 전 세계 서점에 존재하는 프로스트에 관한 책은 몇백 권이나 된다. 만일 그에 대해 내가 고른 책이 좋은 책 중의 하나라면 그것은 어떤 방향으로 자료 정리를 했는지, 어떤 예를 사용했는지 등의 좋은 커넥션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느냐보다 그는 어떤 사실을 말했는가 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 인터뷰는 S매거진으로 계속 됩니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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