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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계체제 명운 걸린 김정일, 방중은 어쩔 수 없는 선택

3일 새벽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별열차가 압록강 철교를 지나 단둥에 도착했다는 뉴스가 나온 6시간 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신은 김 위원장(맨 오른쪽)이 만수대 예술단의 공연을 관람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특별열차는 3일 밤 현재 평양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AP=연합뉴스]
중국의 국경도시 단둥(丹東). 3일 오전 2시50분(한국시간 3시50분) 신의주를 출발한 북한 열차가 압록강 철교 위를 지나갔다. 한 시간 뒤, 국내 언론에 긴급 1보가 떴다. “북한 특별열차 새벽 3시50분쯤 단둥 도착.”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탑승했거나 선행열차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잇따라 속보가 떴다.

5번째 출발선에 선 ‘베이징行 특별열차’

오전 10시.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김 위원장이 만수대 예술단 공연을 관람했다고 보도했다.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김정각 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 최태복·김기남 당 중앙위 비서, 그리고 여동생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 등이 동행했다. 공연 관람 장소와 일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북한 방송의 관례로 볼 때 2일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외교 소식통은 “김 위원장과 그가 타는 특별열차는 아직 평양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압록강 철교를 지나간 북한 열차도 김 위원장의 특별열차가 아닌 화물열차였다. 열차의 색깔도 김 위원장의 특별열차에 칠한 초록색이 아니라 검은색이었다. 김 위원장의 방중이 임박할 때마다 있었던 오보 해프닝은 이번에도 반복됐다.

이날 오후 정부 고위 관계자는 “김 위원장의 주내 방중 가능성이 여전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호상 안전을 우려해 화물차로 위장하거나 선행열차를 보내는 등 경호대책을 마련할 가능성도 크다”고 설명했다. 다른 당국자는 “필요하다면 9일 북한에서 열리는 최고인민회의에 불참하고 베이징으로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럴 경우 김 위원장은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을 만나진 못한다. 시 부주석이 9일부터 하이난성에서 열리는 보아오 포럼에 참석하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의 방중을 예측하는 보도가 이번처럼 집중된 적은 없다. 북한으로선 어느 때보다 경호를 걱정할 수 있다. 지난해 말부터 김 위원장의 방중 가능성은 거론됐고, 최근엔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시진핑 부주석 등 중국 지도부가 모두 국내에 머물면서 김 위원장의 방중 시기는 4월 초라는 게 정설이 됐다. 북한 역시 최고인민회의 제12차 대회(9일),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15일) 같은 굵직한 행사를 앞두고 있어서다. 이를 입증하듯 북측의 사전 선발대가 활동하는 움직임도 포착됐고 압록강 철교 경비도 부쩍 강화됐다.

외교 소식통은 “김 위원장의 특별열차가 막상 출발할 때까지 북한 지도부의 망설임은 계속될 것 같다”고 분석했다. 2004년 4월 극도의 보안 속에 중국 방문을 마친 김 위원장이 함경북도 용천역을 출발한 지 8시간 만에 폭발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중국 신화통신은 지난달 21일 “북한 용천역 사고가 김 위원장 암살을 겨냥한 것이란 분석이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아무리 보안을 강화해도 북한 경호팀으로선 불안할 수밖에 없다. 북한 주민들의 휴대전화 사용량이 급증했고, 북한 인권 운동가들의 활동도 훨씬 과감해졌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김 위원장의 동선 노출이다. 2004년, 2006년 방중 당시 김 위원장의 동선이 잡히자 북측은 중국에 거세게 항의했다고 한다. 2006년 1월 저녁엔 광저우 시내를 흐르는 주장강에서 호화유람선을 탄 모습이 일본 민영방송 TBS에 잡혔다. 여객선 앞뒤로 경비정이 둘러싸고 있었고, 강 기슭에도 경찰이 배치됐다. 며칠 뒤 N-tv는 오전 9시 광저우 바이톈어 호텔에서 김 위원장이 차를 타고 나가는 모습을 포착했다. 2004년 4월엔 베이징 시내 오리구이 식당인 취앤쥐더에서 쩡칭훙 당시 국가 부주석, 황쥐 부총리와 함께 오찬을 하는 장면이 일본 언론에 포착됐다.

김 위원장의 건강도 해외 여행에 부담을 주는 요소다. 재작년 뇌혈관 질환을 앓은 김 위원장은 당뇨와 고혈압을 앓고 있다. 최근 남성욱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소장은 ‘김 위원장이 2주에 한번 신장 투석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65년 인도네시아에 갈 때 비행기를 탄 것을 빼곤 김 위원장은 열차여행만 고집해왔다. 이번에도 건강이 나쁘다는 이유로 비행기를 탈 것 같진 않다고 외교가는 관측한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이 방중하는 것은 북한의 경제난이 심하다는 의미다. 대차대조표상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것이다. 김 위원장 입장에선 국방위원장이 된 이후 네 차례(2000·2001·2004·2006년) 중국을 방문했다. 이전과 달리 이번 방중은 3대(代) 후계 구축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6자회담 복귀 같은 정책 이슈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다. 김 위원장으로선 이번 방문을 통해 자신이 그랬듯 아들 정은(28)에 대한 지지 또는 암묵적 승인을 받아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정부 고위 소식통은 “이번 방중의 의미가 큰 이유는 지금의 북한이 과거의 북한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북한 체제는 지난해 11월 후계체제 구축 자금을 모으기 위해 단행한 화폐개혁의 후폭풍으로 전례 없이 취약해져 있다. 김 위원장은 박남기 노동당 재정계획부장 등 자신의 측근을 처형하면서까지 혼란을 진정시키려 했었다. 정부 소식통은 “2월 15일 자신의 생일 때 고위 관료들에게도 선물을 돌리지 못했다”고 했다. 경제적 고립을 탈피하는 과감한 정책 전환을 할 수도 있는 시점이다. 우선 6자회담 복귀와 경제 지원을 두고 중국 측과 모종의 거래를 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이 이번 방중 길에 동행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경호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부자가 途� 한 열차를 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방중은 중국 정부 입장에서도 부담이다. 사회주의 국가가 3대 세습 정권을 인정하는 것이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은 최근 미국과 함께 ‘G2’로 부각되고 있는 현실에서 ‘북한·이란 등 불량국가를 감싸는 나라’란 이미지가 씌워질까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중국은 미얀마·수단 등 독재 정권을 지원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김 위원장이 방중한다면 중국 지도부가 외교적 환대를 다하겠지만 대규모 경제 지원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10월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북·중 수교 60주년을 맞아 방북했다. 그는 당시 약 3000만 달러의 지원을 약속했지만 북한이 만족하는 속도로 지원되고 있지 않다는 게 외교가의 관측이다.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이 북한을 움직이는 지렛대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 고위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직접 요청할 경우 중국이 식량과 에너지, 사회간접시설(SOC)을 추가로 지원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북한의 제2차 핵실험 이후 중국 지도부에선 북한을 경제발전의 ‘부담’으로 여기는 쪽으로 기울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북한을 관리해야 한다는 전통주의자들의 입김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후진타오 주석을 만나 6자회담 복귀를 약속한다면 중국은 대규모 지원을 보장할 것이고 6자회담이 돌아가는 한 부담 없이 대북 지원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김 위원장의 방중은 그동안 중단된 6자회담이 재개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을 만난 유명환 외교부 장관도 6자회담에 대한 기대를 표명했다. 북한은 요즘 6자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던 제재 철회 및 평화협정 논의 요구를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고위 당국자는 “한·미 양국은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온다고 확언하면 북·미 후속회담 개최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필립 크롤리 미국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는 그러나 제재와 관련, 미국의 확고한 입장을 재천명했다. 그는 2일(현지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6자회담 테이블로 복귀해 비핵화를 위한 긍정적 조치를 취할 때까지 대북 제재는 철회되지 않을 것이며 단순히 6자회담에 돌아오는 것으로 보상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과거 베이징을 방문할 때마다 중국공산당의 지도부인 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현재 9명) 전원을 만났다. 혈맹인 북한에 대한 배려였다. 이번에도 양국의 전통적 우호관계를 과시하기 위해 후진타오 국가주석, 우방궈 전인대 상무위원장, 원자바오 국무원 총리, 자칭린 정치협상회의 주석, 리창춘·시진핑 국가부주석 등을 만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방중 일정이 9일 정도로 늦춰지면 시진핑 주석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일각에선 김 위원장의 방중 행보가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 지난 2월 김영일 조선노동당 국제부장 일행이 톈진·상하이와 동북 3성 지역인 다롄·선양·창춘 등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이번엔 베이징과 동북3성만 방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위기의 지도자 김정일의 특별열차는 일단 출발선에 섰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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