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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50만원 일자리면 정기예금 2억원 효과

경기도 광주에 사는 문명찬(73)씨는 1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신입사원으로 첫 출근을 했다. LH가 공기업 최초로 만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뽑은 ‘실버(노인)사원’이다. 주 20시간 근무, 월급 50만원의 일자리였지만 경쟁은 치열했다. 2000명 모집에 2만2000명 넘게 몰려 11대 1을 웃도는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들은 9월 30일까지 6개월 동안 LH가 관리하는 임대아파트 단지에서 일한다.

노인 재테크의 으뜸은 직장 갖기

문씨는 1일 오전 성남시 정자동 본사 강당에서 열린 발대식에서 실버사원 대표로 단상에 올랐다. 이지송 LH 사장에게 직접 위촉장을 받았다. 건설회사를 다니다 퇴직했다는 그는 “10년 만의 출근이라 가슴이 벅차다. 늦깎이 신입이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첫 출근하는 사회 초년생 같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또 “그동안 일을 하고 싶었지만 일자리가 없었다. 이번 기회에 노인도 할 수 있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문씨를 비롯한 실버사원 2000명은 2일부터 현업에 배치됐다. 문씨가 일하는 현장은 성남시 분당 한솔마을 7단지로 1994년 준공한 1420가구의 영구임대 아파트다. 문씨는 관리소 직원을 도와 하루 4시간씩 단지 순찰을 돌게 된다. 주 업무는 옥상·주차장·계단·엘리베이터와 어린이 놀이터 등 각종 시설물에 이상은 없는지 점검하는 것이다. 전에 살던 사람이 이사 가고 아직 새 입주자가 오지 않아 잠시 비어 있는 집도 관리 대상이다.

문씨는 “젊을 때 공병 장교로 20년, 건설회사에서 20년을 합쳐 40년간 건설 관련 일을 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어 “중동 건설 현장에서 소장을 지냈고, 건축 분야에서 최고로 꼽는 건축시공기술사 자격증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퇴직 후 남은 인생도 사회에 기여하고 싶었던 그는 7년간 숲·공원 해설사 등으로 자원봉사를 했다. 건설업에서 갈고 닦은 경험과 전문 능력을 써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써주는 곳이 없었다. 그러던 중 2월 말 LH의 실버사원 모집 소식을 듣고 반가운 생각에 이력서를 냈다. 그는 “하루에 교통비와 식대로 8000원을 주는 숲 해설사도 경쟁이 심해 자리가 부족할 정도다. 오랜만에 전공인 건설 분야에서 일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설렌다”고 전했다.

경기도 성남에 사는 안병례(77)씨도 1일 실버사원 발대식에서 문씨와 나란히 단상에 섰다. 안씨는 “이 나이에 이렇게 큰 회사에 입사한 것은 행운”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고등학교 교사 출신이라는 그는 “나이가 많다고 쉬어야 마땅한 것은 아니다. 봄이 오면 서리 맞은 고목에 새순이 돋듯이 노인에게도 생동하는 열정이 있다”고 강조했다.

평소 인터넷 검색을 즐긴다는 안씨는 “어느 날 인터넷에서 실버사원 모집 정보를 접하는 순간 도전해 보겠다는 욕심이 났다”고 전했다. 지원할 수 있는 최저 연령은 만 60세였지만 최고 연령에는 제한이 없다는 사실에 더욱 용기를 얻었다. 그는 “우리 세대는 8·15 광복, 6·25전쟁, 4·19 혁명, 5·16 같은 큰일을 수없이 겪으며 노후 대책은 생각도 못하고 살아왔다”며 “자식들에게 부담 주지 않고 살 수 있게 해준 LH에 깊이 감사한다”고 말했다.

안씨는 2일부터 판교신도시 붓들마을 3단지에서 근무한다. 지난해 말 준공한 870가구의 공공임대아파트 단지다. 안씨를 비롯한 여성 실버사원들은 입주민 중 독거노인·장애인 등을 찾아가는 돌봄 서비스를 주로 하게 된다.
 
서울 지역 경쟁률 31대 1로 최고
LH는 2월 23일자 주요 일간지에 ‘우리는 청년이다’란 도발적인 카피와 함께 실버사원 채용 광고를 실었다. 신청자격은 ‘만 60세 이상 근로 가능한 대한민국 남·여’란 한마디뿐이었다. 60세 이상이기만 하면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학력이나 경력에 상관없이 지원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광고가 나온 직후 LH의 12개 지역본부 안내전화는 불이 났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느냐’ ‘월급은 얼마냐’ ‘일은 힘들지 않으냐’는 등의 문의가 폭주했다.

3월 2일부터 5일까지 나흘간 입사 지원서를 받았더니 전국에서 2만2107명이 몰렸다. 주로 60대(69%)였지만 문씨나 안씨와 같은 70대(30%)뿐 아니라 80대(1%) 지원자도 원서를 냈다. 서울 지역의 경쟁률은 평균 31.1대 1이나 됐다. 특히 관악·동작구는 15명 모집에 770명이 찾아와 51대 1로 전국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다. 우편이나 대리 접수를 인정하지 않아 모두 신청자 본인이 직접 서류를 들고 LH 지역본부에 접수한 것이었다. 이지송 LH 사장은 “노인 일자리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단면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60세 이상 노인 중 수입이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은 세 명 중 한 명(32.2%)에 불과하다. 뒤집어 보면 세 명 중 두 명(67.8%)은 일할 의사가 있건 없건 집에서 쉬고 있다. 60세 이상 고용률은 2006년 말 35.2%를 기록한 이후 매년 낮아지는 추세다. 그나마 농림어업 분야를 빼면 노인들이 일자리를 찾기는 매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평균 수명이 늘면서 고령 인구는 많아지는데 노인 일자리 창출은 거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LH의 대규모 실버사원 채용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실험이란 평가를 받는다. 채용된 노인들은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계약직 사원(기간제 근로자)이다. 4대 사회보험(건강·고용·산재보험과 국민연금)도 당연히 가입된다. 시·군·구청에서 복지사업으로 실시하는 희망근로(공공근로) 등과 달리 소속감을 갖고 출퇴근할 직장이 생긴 것이다. 합격자를 학력별로 보면 고졸(38%)이 가장 많았지만 대졸(17%)도 적지 않았다. 대학원 석사 이상의 고학력자(1%)도 있었다.

실버사원들은 근무 기간 동안 월급 50만원(주 5일, 20시간 근무)을 받는다. 4대 보험료를 공제하면 실수령액은 47만~48만원으로 예상된다. 반면 1억원을 은행에 정기예금(연 4% 금리 가정)으로 맡기면 매달 이자로 받는 돈은 월 28만원(세금 15.4% 공제 후) 정도에 불과하다. 만일 예금 이자로 월 48만원을 받으려면 1억7000만원 정도가 있어야 한다.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능가하는 재테크와 복지 수단은 찾기 어렵다는 얘기다.

서기식 LH 팀장은 “실버사원의 급여는 최저 임금의 120%를 적용했다. 의료비 등 지출이 많지 않은 노인 가구라면 넉넉지는 않아도 한 달 생활비로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원 출신 노인도 구직 신청
LH가 실버사원 2000명을 6개월간 고용하는 인건비는 모두 60억원이다. 연간 예산으로 57조원을 쓰는 회사 규모를 감안하면 큰 부담은 아니다. LH는 일단 9월 말까지 실버사원 제도를 운영하면서 근무 성과 등에 따라 재시행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올해 국정 목표의 핵심은 일자리 창출”이란 이명박 정부의 정책 방향과도 들어맞기 때문에 다른 공기업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 사장은 “실버사원 모집을 통해 노인들에겐 일자리를 제공하고, 회사는 부족한 임대아파트 관리 인력을 보강하고, 장애인과 독거노인에겐 돌봄 서비스를 하는 1석3조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취업을 원하는 노인들이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관으로는 한국노인인력개발원과 지역 고령자취업알선센터 등이 있다. 노인인력개발원은 보건복지가족부의 노인 일자리 사업을 대신 수행한다. 복지부는 올해 정부 예산으로 인건비를 전액 지원하는 공공 분야 일자리 16만6000개를 노인들에게 제공할 계획이다. 예컨대 경기도 안산, 충북 옥천 등에서 시범사업을 하는 묘지실태 조사에 보조원으로 참여하면 하루 8시간, 한 달에 열흘 정도 근무하고 월 40만원을 받는다. 문화유산·생태공원 등을 보호·관리하는 유적지 관리원, 외국인 근로자나 결혼 이주 여성에게 한국 문화를 알리는 다문화가정 도우미 등으로도 일할 수 있다. 시험감독관·주유원·결혼식 주례 등 민간에서 운영하고 정부에서 일부 경비를 지원하는 노인 일자리 2만 개도 노인인력개발원을 통해 안내 받을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도 실버취업 알선에 적극적이다. 서울시는 정부 사업과 별도로 ‘서울형 노인 일자리’ 사업도 진행한다. 올해는 신문활용교육(NIE)·영어·건강관리 분야 시니어 지도사, 다문화 어린이집 보육·놀이 교사, 아름다운 화장실 가꾸기 모니터 활동요원 등 580명을 모집한다. 하루 4~5시간, 주 4~5일 근무를 하면 월 60만원을 주는 조건이며, 교사 자격증 소지자 등은 우대한다.

고령자취업알선센터에서도 만 55세 이상의 일자리를 원하는 고령자와 구인 희망 업체를 연결해 준다. 서울에는 23개 지역 센터가 있으며, 가까운 지역 센터를 방문해 구직 신청을 할 수 있다. 노인취업훈련센터에선 취업·창업 관련 교육도 받을 수 있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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