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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리더보다는 중간계투에 그칠 듯

니겔 히긴스
영국의 전설적인 투자은행인 NM로스차일드&선스는 ‘비밀의 화원’에 비유되곤 한다. 대중의 눈에 잘 드러나지 않아서다. 은밀하게 움직이며 각국 정부나 왕실, 부호들의 금고지기 노릇을 했다. 고객의 비밀이 새나갈까봐 일가친척이 아니면 고위직을 맡기지 않았다. 이처럼 비밀주의를 지켜온 세월이 약 250년에 이른다.

英 ‘금융왕가’ 로스차일드, 창업 이래 첫 전문경영인 선택

그 비밀의 화원이 지난주 반쯤 공개됐다. NM로스차일드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였던 데이비드 드 로스차일드(67) 남작이 니겔 히긴스(49)를 CEO로 지명했다. 히긴스는 로스차일드 가문과는 혈연이 없다. 전문경영인이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친인척 대신 전문경영인을 CEO로 선택한 경우는 창업(1760년대) 이후 처음이다. 1대 메이어 A 로스차일드 이후 데이비드까지 7대에 걸쳐 이어진 가문의 전통이 일단락된 셈이다.

히긴스는 21세 때인 1982년 NM로스차일드에 입사했다. 옥스퍼드대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직후였다. 부인은 크로아티아 출신이다. 그는 NM로스차일드에 입사한 이후 28년 동안 투자은행가로 활동했다. 다른 금융회사를 기웃거리지 않았다. 한 우물을 파며 로스차일드 가문과 코드를 맞춘 셈이다. 그래서 “데이비드가 히긴스를 선택한 일이 로스차일드의 긴 역사에서 혁명이 아니라 진화로 풀이된다”고 뉴욕 타임스(NYT)는 지난달 29일 보도했다. 히긴스가 CEO가 됐다고 해서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데이비드 드 로스차일드
관리형 CEO에 가까워
히긴스는 일상적인 관리와 잘 어울리는 인물로 알려졌다. 그의 친구이면서 영국 항공기 엔진 제작회사 롤스로이스의 CEO인 존 로스는 파이낸셜 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히긴스는 인간관계를 잘 맺는 인물은 아니다. 사안의 핵심을 아주 예리하게 간파해 방향을 잡은 뒤 흔들리지 않고 밀어붙이는 사鐸굼繭箚� 증언했다. 네트워킹에 능하지 않아 정부나 왕실·부호·대기업과 인간적인 관계를 개척해 일을 따내는 일(관계금융)을 잘할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히긴스가 회사 자체 자금을 주식이나 채권·파생상품·상품 등에 베팅하는 트레이딩에 능한 사람도 아니다.

트레이딩은 투자은행의 모습을 혁명적으로 바꿔놓았다. 골드먼삭스나 모건스탠리 등은 트레이딩을 강화하면서 전통적인 투자은행 모습을 탈피했다. 전통적인 모습이란 임직원들이 최고급 레스토랑 등에서 고객과 교유하면서 증권인수나 인수합병(M&A), 부호들의 자산관리(프라이빗 뱅킹) 주문을 받아내는 것을 말한다. 이는 투자은행이 거래 당사자로 나서는 게 아니다. 고객의 주문을 대행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일이다.

전통에 안주해 경쟁서 탈락
반면 트레이딩은 투자은행이 거래 당사자로 나서 위험을 감수하고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좇는 전략이다. 최근 투자은행들이 트레이딩을 중시하면서 회사 구조 자체가 바뀌었다. 우선 자본금 규모가 커졌다. 투자은행들이 많은 자금이 필요한 트레이딩에 집중하기 위해 기업공개(IPO) 등을 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창업자의 지분이 줄어들면서 주인이 바뀌는 경우도 많았다. 또 예의·인간관계 등을 중시하는 투자은행가보다는 기민하다 못해 약아빠져 보이는 트레이더들이 투자은행 주축으로 떠올랐다.

NM로스차일드는 변신보다는 전통을 선택했다. 그 결과 위상이 추락했다. 지난해 말 현재 NM로스차일드의 자산은 58억834만 달러였다. 순이익은 6300만 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세계 1위 투자은행인 골드먼삭스의 자산은 8490억 달러에 이른다. 순이익은 133억9000만 달러에 달했다. 자산을 기준으로 골드먼삭스가 NM로스차일드의 140배 수준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20세기 원년인 1900년 당시 NM로스차일드는 세계 금융 리더였다. 골드먼삭스는 그 시절 메이저 투자은행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기업어음(CP)을 할인해주고 구전을 따먹었다. 사채업자와 큰 차이가 없었다.

왕세자의 스승 역할?
히긴스가 옛 영화를 되살려낼까? 그의 포부를 들어보면 아닌 듯하다. 그는 NYT와 인터뷰에서 “인수합병, 구조조정 자문이나 증권인수 등 틈새시장에 집중하겠다”는 포부를 내놨다. 게다가 NM로스차일드 경영권의 한 자락은 여전히 데이비드 남작의 수중에 있다. 그는 회장 자리를 유지하기로 했다. 관계금융에 집중하겠다는 생각이다. 대신 히긴스는 임직원들을 지휘하고 글로벌 경영상황을 조율하는 일을 맡는다. 로스차일드는 36개 나라에 50개 법인·지점을 거느리고 있다.

CEO로서 히긴스의 수명이 길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데이비드에게는 아들이 한 명 있기 때문이다. 바로 알렉산더 드 로스차일드(29)다. 2008년 NM로스차일드에 입사한 이후 프라이빗 뱅킹 부문에서 일하며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아직 조직과 업무를 다 장악하지 못한 상태로 보인다. 실제로 아버지 데이비드가 지난해 10월 CEO 자리를 물려주려고 하자 알렉산더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고사했다. 당시 데이비드는 친구이자 미 투자은행 라자드의 회장 겸 CEO인 브루스 워서슈타인이 후계자를 지명하지 못한 채 돌연 숨지는 바람에 경영 공백이 생기는 것을 보고 후계자 지명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데이비드는 “알렉산더가 가문과 직원들의 신망을 얻으면 10여 년 뒤에는 CEO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히긴스는 황태자가 될 수 있는 인물을 등 뒤에 두고 전설적인 금융하우스 NM로스차일드를 경영해야 하는 운명인 셈이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애초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환전상을 하는 유대계 집안이었다. 18세기 후반 메이어 로스차일드가 재산을 모아 아들 다섯을 영국 런던(네이선)과 프랑스 파리(제임스), 오스트리아 빈(살로몬),이탈리아 나폴리(칼), 독일 프랑크푸르트(암첼)에 분산 배치해 다국적 금융네트워크를 구성했다.
이 네트워크는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 때 위력을 발휘했다. 당시 영국과 러시아 등이 채권을 내놓으며 투자은행들에 자금을 요청했다. 나폴레옹이 승승장구하던 시절이어서 다른 투자은행들은 망설였다. 하지만 로스차일드 가문은 다섯 형제가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나폴레옹 실각을 예상하고 영국과 러시아 등이 내놓은 채권을 싼값에 사들이는 방식으로 자금을 제공했다. 결과는 그들의 예상대로였다. 그들은 거액의 수익을 거둬들였을 뿐만 아니라 투자은행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9세기 후반 이후 그들은 영국의 산업혁명 덕분에 글로벌 금융리더로 군림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영국의 쇠락과 함께 그들의 영향력도 줄어들었다. 전통만을 고집한 로스차일드 가문의 선택도 쇠락에 한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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