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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의 ‘달콤한 과실’ 즐기려면 원산지증명서 꼭 챙겨라

지난해 관세청은 은행과 종합상사 등 10개 기업이 수년간 해외에서 수입한 2600억원 상당의 금괴에 대해 원산지 규정 위반사실을 통보했다. 이어 해당 기업에 과징금 80억원과 가산세 등 모두 150억원에 달하는 세금부과 예고 처분을 내렸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수의 금융기관과 대기업이 연루된 이 사건은 한동안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전말은 이랬다. 이들은 2006년부터 1년여에 걸쳐 스위스의 UBS은행 등으로부터 스위스산 금괴 2657억원어치를 수입했다. 그러나 당국의 조사 결과 이 금괴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제3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스위스에서는 정련 작업만 거친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이들 기업은 자유무역협정(FTA) 규정상 스위스가 ‘원산지’가 아닌 금괴를 스위스산으로 신고해 관세를 적게 낸 사실이 밝혀져 처벌받은 것이다.

한찬희의 프리미엄 경영


우리나라는 2006년 9월부터 스위스·노르웨이·리히텐슈타인·아이슬란드 등 유럽 4개국 연합체인 유럽무역연합(EFTA)과 FTA를 발효해 시행해 오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 국가를 원산지로 해 수입되는 금괴에 대해 관세 3%를 면제해 준다. 상대국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가공 변형 과정을 거친 제품을 해당 국가의 생산품으로 인정해 관세상의 혜택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위의 예에서 보듯 원산지증명 규정을 위반했을 때는 처벌이 따른다.

비슷한 사례는 외국에도 많다. 포드는 1996년부터 수년간 멕시코 회사에서 부품을 수입하면서 이 회사가 작성한 원산지증명서를 토대로 미국 관세당국에 특혜관세를 신청했다. 미국과 멕시코 간의 FTA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따라 당사국을 원산지로 하는 수입 제품에 세제상 혜택을 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러나 2001년 미 세관이 수입품의 원산지증명 서류 제출을 요구하자 포드는 보관의무가 없다는 이유로 제출을 거부했다. 세관은 자료제출 거부 및 보관의무 위반을 들어 포드에 42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바야흐로 FTA의 시대다. 멀게만 보였던 FTA의 물결이 어느새 우리 기업의 경영활동 구석구석에 스며들고 있다. 자유무역을 기치로 내건 FTA의 실익은 사실 관세혜택에 있다. 협정 대상국 사이를 오가는 상품에 여타 교역에서와는 다른 관세 특혜, 즉 협정관세를 적용하는 것이 골자다. 물론 여기에는 단서가 붙는다. 상대국에서 제품 제조과정의 상당 부분이 진행돼야 하며,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증빙이 있어야 한다. 당사국 간의 배타적 이익 추구를 목표로 하는 FTA의 속성상 제3국의 우회수출을 막는다는 차원에서 원산지증명은 필수적이다. 여행자의 국적과 신분을 증명함으로써 국가 간 이동을 가능케 하는 증서가 여권이라면, 원산지증명은 상품이 관세혜택을 안고 FTA 상대국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여권에 해당한다.

혜택이 큰 만큼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 역시 비교적 촘촘하게 짜여 있다. 일반적으로 FTA 체제 아래서 원산지 증명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관련 서류를 미리 준비해야 하는 것은 물론 관계당국의 사후 검증을 위해 해당 자료를 일정 기간 보존해야 할 의무가 있다. 포드가 천문학적인 액수의 벌금을 내야 했던 것은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이 간과하고 있는 대목도 당국의 사후 검증에 대한 대비 부분이다.

FTA 원산지증명서란 수출 물품이 FTA에서 정한 원산지 기준을 충족했음을 확인하는 서류다. 수입국에서 FTA 특혜관세를 적용 받기 위해 통관 시 제출한다. 대부분 기업은 이것으로 해야 할 바를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다. 사후 검증의 결과, 원산지가 부인되는 경우 그동안 받았던 혜택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 또 다른 불이익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특례법을 통해 FTA 체결 상대국 수출업자 등이 최근 5년간 2회 이상 원산지 증빙서류의 주요 내용을 허위 작성하거나 잘못 작성한 사실을 인정하면 5년간 해당 업자가 생산·수출하는 동종 제품 전체에 대해 협정관세를 적용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협정관세를 적용 받지 못함에 따라 발생하는 관세를 내야 하는 데다 규정 위반으로 인한 벌과금도 감수해야 한다.

원산지증명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데 반해 기업의 대비는 대단히 미흡하다. 조달과 재고관리를 중심으로 경영활동의 상당 부분을 원산지관리 및 증명과 연결하는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나 대부분 강 건너 불구경이다. 상대적으로 FTA의 역사가 긴 미국 등 선진국의 글로벌 기업들이 체계적인 원산지관리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앞으로 더 많은 나라와 FTA가 시행될 것임을 감안하면 우려할 만한 일이다.

물론 이유는 있다. 복잡한 가치사슬로 연결된 대기업은 많게는 수만 개에 달하는 방대한 공급망을 원산지증명과 연계하는 작업이 쉽지 않다. 자본과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은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막막할 수 있다. 그러나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해서 마냥 손 놓고 있다가는 더 큰 화를 자초할 수 있다. 지식경제부 등 유관부처에서 배포하는 FTA 실무지침서를 참조하거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자체 시스템을 구축하고 사내 전문가를 육성하는 것이 당면 과제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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