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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이 세운 한인기독학원 자리엔 공립 초등학교 들어서

하와이는 이승만의 두 차례 망명지였다. 한 번은 1913년, 또 한 번은 1960년이었다. 첫 번째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서였다. 미국서 박사학위를 따고 귀국한 그는 서울YMCA 총무를 맡아 청년운동에 힘썼다. 일제는 그를 비롯한 개신교 엘리트들의 활동을 눈엣가시로 여겼다. 결국 ‘총독 암살미수사건’을 조작해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그가 더 이상 국내에 머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두 번째는 4·19 혁명 뒤였다.

그런데 그는 왜 망명지를 태평양 한가운데 하와이로 택했을까. 당시 한인 교포들이 가장 많이 살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도착하던 1913년 하와이 여러 섬에는 약 6000명이 살고 있었다. 당시 미국 전체 한인 숫자가 9000명이었으니 3분의 2가 있었던 셈이다. 이들은 대부분 1903년부터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 신분으로 이주한 사람들이었다. 도시로 나와 행상과 식료품·채소가게, 이발관·여관 등을 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승만은 이곳에서 언론·교육·선교사업에 주력했다. 한인기독교회와 한인기독학원이 바로 그 현장이다. 한인기독교회는 남아 있지만, 한인기독학원은 1947년 문을 닫았다. 하와이에 공립학교 제도가 자리 잡으면서 학생들이 줄었기 때문이다. 대신 한인기독학원 부지 매각 대금(15만 달러)은 이승만의 뜻에 따라 고국에 공과대학을 세우는 데 보태졌다. 1954년 개교한 인하대학교다. 학교 이름 ‘인하’는 인천과 하와이의 첫 글자를 딴 것이다.

호놀룰루에는 한인기독학원의 흔적이 지금도 길 이름으로 남아 있다. 호놀룰루 서쪽 칼리히 지역에 가면 산기슭에 ‘쿨라 콜레아(KULA KOLEA)’라는 하와이말 표지판이 나타난다. 영어로 번역하면 ‘스쿨 코리아(School Korea)’란 뜻이다. 하와이말은 우리나라처럼 ‘ㄹ’ 발음이 하나밖에 없고 ‘L’로만 표기한다. 쿨라는 학교를 뜻한다. 한인학교 자리에는 공립 ‘칼리히 초등학교’가 들어서 있다.

하와이 한인사회에선 이민 100주년(2003년)을 계기로 이승만 재조명 작업이 한창이다. 하와이대 한국학센터의 이덕희(69) 연구위원이 대표적이다. 그는 『하와이 이민 100년 그들은 어떻게 살았나』의 저술을 주도했다. 그는 1963년 대학(이화여대)을 졸업한 전형적인 4·19 세대다. 당연히 이승만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개인적인 아픔도 있었다. 경기여고 시절 정동교회에 다녔는데, 당시 이 대통령은 일요일에 종종 그 교회를 찾았다. 당연히 삼엄한 경호가 펼쳐졌다. 여고생 이덕희는 친구들에게 농담을 했다. “애국자가 따로 있니, 국을 좋아하면 애국자지.” 웃자고 한 얘기였는데, 그게 ‘국가원수 모독죄’가 될 줄 몰랐다. 바로 경호원에게 끌려갔다. 지도교사가 싹싹 빌고 나서야 귀가할 수 있었다.

이씨는 하와이에서 도시계획을 담당한 공무원이었다. 자연히 호놀룰루 곳곳의 민족별 타운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한인타운과 역사에 대해 빠져들었다. 그러다 이승만의 기록과 흔적들을 만났다. 그가 생각을 바꾼 계기였다. 그는 “과거의 연구는 대부분 ‘분열’과 ‘독재자’라는 부정적인 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며 “하지만 직접 연구하다 보니 이승만의 긍정적 부분들이 많이 가려져 있음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하와이 한인회 김영해 회장도 “한국은 어떤지 몰라도 최근 이곳에선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긍정적 평가가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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