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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봄볕

출근길에 늘 지나는 남의 동네에서 며칠 전 노란 개나리 한 무더기가 피어 있는 걸 봤다. 순간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개성 없는 무채색 건물을 배경으로, 더구나 가을에 잎을 떨군 뒤 앙상하게 서 있는 가로수들 곁에서 혼자 환하게 꽃을 피운 것이 신통했다. 해마다 그 자리에 피던 개나리이건만 올해는 유난히 그 모습이 그립고도 반갑다. 올 3월이 말 그대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었던 탓이다. 특히 요 일주일 남짓은 천안함 침몰, 유명 연예인의 자살 등 유독 가슴 아픈 뉴스가 잇따랐다. 날씨도 몸과 마음을 무겁게 했다. 절기로는 입춘·경칩이 다 지났는데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다. 사흘이 멀다고 내린 빗줄기 역시 봄비라기엔 퍽 을씨년스러웠다.

On Sunday

자연히 올봄만큼 햇볕이 귀하게 느껴진 적도 드물다. 그저께 기상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 3월 전국의 평균 일조시간은 평년의 61% 수준밖에 안 된다. 역대 3월 중 최저치다. 반면 올 3월의 전국 평균 강수 일수는 14.3일이나 된다. 평년보다 6.3일이 더 많다. 지난 한 달간 볕이 제대로 난 게 이틀 중 하루가 될까 말까 했다는 얘기다.

서울의 경우 기온까지 평균·최저·최고 등이 모두 예년보다 낮았다. 때 이르게 봄눈을 틔우곤 했던 도심의 나무들이 올해는 묵묵부답인 것도 이해할 만하다. 농촌에서는 이미 야단이 난 모양이다. 수박·참외·토마토 등 이맘때면 비닐하우스 안에서 열매를 맺기 시작해야 할 작물들이 볕이 부족해 꽃도 제대로 피우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봄 가뭄이 아니라 봄장마에 농민들이 속을 태우는 건 과거에 쉽게 볼 수 없던 일이다. 이쯤 되면 일조량 부족도 풍수해처럼 자연재해로 규정해야 할 상황이다.

햇볕이 부족하면 식물만 힘을 제대로 못쓰는 게 아니다. 흐린 날에는 공연히 우울하고 무기력해지는 사람이 많아진다. 인체 내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수치가 저하되면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고 한다. 햇볕은 세로토닌의 분비를 촉진하는 역할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울증 예방을 위해 흔히 햇볕을 많이 쬐라고 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봄볕이 따가운 걸 두고 ‘봄볕에는 며느리를 내보내고 가을볕에 딸을 내보낸다’는 말도 있지만, 요즘처럼 볕이 아쉬울 때는 맞지 않는 소리다. 우울한 기분을 덜자면 며느리든 딸이든 볕이 나는 대로 냉큼 나가야 할 판이다.

물론 햇볕이 늘 고마운 건 아니다. 아시다시피 강한 자외선은 피부에 해롭다. 최근 한반도의 기후는 봄과 여름의 시작 시기는 빨라지고 가을의 시작 시기는 늦어지는 추세다. 사계절 중에도 여름이 길어지고 있다. 봄날의 햇볕이 따스하게 느껴지는 것도 잠시일 뿐, 이내 여름날의 땡볕이 돼버린다. 봄볕이 더 귀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여름 냉방, 겨울 난방이 일상화돼 있고 인공강우도 가능한 시대라지만 햇볕을 모아놓았다 흐린 날에 나눠 쓰는 기술이 있다는 얘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천안함의 침몰 이후 가슴 아픈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 봄꽃이 한껏 피어난다 한들 예년 같은 꽃놀이의 흥이 날 것 같지 않다. 무심한 출근길에 저 혼자 알아서 등장해준 개나리가 고마운 건 그래서다. 4월엔 봄볕이라도 넉넉했으면 좋겠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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