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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김중수 신임 한은 총재께

내일 한국은행 총재 취임을 앞두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실 줄 압니다. 형식적으론 아직 내정자지만 하루 새 별일 있겠나 싶어 그냥 총재라고 부르겠습니다. 탁월한 식견의 총재께 객쩍게 무슨 조언을 하겠습니까만, 높으신 분은 잘 듣지 못하는 저잣거리의 말들을 전할까 합니다.



먼저 말(言)의 문제입니다. 29일 귀국하자마자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조심스럽게 원론적인 답변을 하셨습니다. 그래도 금리 인상에 대해 “때가 되면 한다”는 말에 시장이 움직였습니다. 중앙은행 총재의 입은 ‘큰 칼’입니다. 쉽게 휘두르기도, 자주 꺼내들기도 조심스럽습니다.



어느 전직 총재는 워낙 말씀을 좋아해 기자들에게 많은 기삿거리를 줬습니다. 그 분과 같이 점심을 먹다가도 ‘이거 기사다’ 하며 휴대전화를 꺼내들고 자리를 뜨는 기자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게 잘못 전달되면 시장이 요동할 수 있습니다. 기자들이 피곤하고, 한은 실무진이 힘든 것은 둘째 문제입니다.



이를 피하려면 자나깨나 말조심밖에 없습니다. 자신 없으면 모범답안을 외워두는 것도 방법입니다. 비교적 대응을 잘했다는 이성태 총재도 한 세미나에서 환율에 대해 애매한 발언을 하는 바람에 구설수에 휘말린 적이 있습니다. 평소 좋은 말씀을 많이 하시는 학자 출신이기에 말실수는 큰 부담이 됩니다.



총재가 학자 출신이라는 데엔 걸리는 게 또 있습니다. 한은의 통화정책 결정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엔 총재를 포함해 학자 출신이 전체 7명 중 과반인 4명이나 됩니다. 1998년 금통위가 상근제로 바뀐 후 처음입니다. 학자에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닙니다. 같은 직군이 몰려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사고방식이나 판단기준이 비슷한 사람들은 자칫 ‘집단사고’의 오류에 빠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금융위기 이후 경제학의 효용이나 경제학자의 능력에 의구심도 커졌습니다. 현실을 이해하는 경제학자보다 이론만 파는 ‘경제학 학자’가 더 많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하기야 이미 해놓은 인사, 물릴 수도 없습니다. 인사권자의 잘못이지만, 부담은 총재에게 돌아옵니다.



이를 상쇄하려면 총재가 현장형 리더십을 발휘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한은의 ‘샌님’들에게 “공부하라”고 채근하는 대신 ‘야수적 본능’을 키우라고 이끌어주기 바랍니다. 그러는 게 한은과 시장 사이의 소통을 촉진시키는 길일 수도 있습니다.



또 외부와의 소통, 정부와의 협조에도 절도가 있었으면 합니다. 정부 관리들과 우르르 섞여 모이는 일은 피했으면 합니다. 그런 자리에선 한은 총재도 ‘원 오브 뎀’이 되고 맙니다. 권위가 떨어진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금융위기처럼 긴급사태엔 대통령 주재의 대책회의에 당연히 나가야겠지요. 하지만 평소엔 고고하고 독립적인 모습을 일부러라도 연출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대통령이 가라고 했다고 재래시장에 나가보는 식의 쇼, 효과도 없고 보기도 민망합니다. 총재는 대통령과 잘 통할 테니 미리 양해를 구해 놓는 게 좋겠습니다.



조직 장악은 별로 걱정하지 않습니다. 여러 기관장을 거치셨기에 조직 장악력이 출중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한은은 독특한 조직입니다. 공부 잘 하는 수재들이 버글거리는 곳입니다. 이곳에서도 인사 불만은 있습니다. 주류는 우월감, 비주류는 소외감에 젖어 있습니다. 또 정책라인이다, 조사라인이다, 국제라인이다 하며 자기들끼리 계보를 달리합니다. 이게 바람직한지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끝으로 가장 중요한 출구전략에 대해서인데, 이건 문외한이 이래라 저래라 훈수 둘 사안이 아닙니다. 식견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알아서 판단하길 바랍니다. 누가 뭐라든 책임은 총재가 지는 겁니다. 우물쭈물 타이밍을 놓치다간 내년, 후년까지 안 좋은 상황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2012년은 총선(4월)과 대선(12월)을 잇따라 치르는 해입니다. 정치의 계절엔 쓴 약을 처방하기 어렵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총재는 다음 정권과도 1년여를 지내야 합니다. 그때 불편한 입장에 몰리지 않으려면 처음부터 발끝의 각도를 잘 잡아야겠습니다.



귀국 일성으로 총재는 ‘내 생각’과 ‘시장의 기대’ 사이의 갭을 줄이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총재 생각이 뭔지 보여줄 일이 남았군요.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보여주면 됩니다.



이제부터는 건강을 각별히 챙기십시오. 경제수석 시절 회의 때 잠을 쫓기 위해 손목에 차고 다닌 까칠까칠한 팔찌는 또 차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남윤호 경제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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