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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우지 말고 생각하자, 어려운 논술·면접이 편해진다

포항제철고는 올해 19명의 학생을 서울대에 진학시켰다. 수시모집 특기자 전형으로만 9명이 서울대에 합격했다. 예년 2~3명의 특기자 전형 합격생을 냈던 것에 비해 3~4배 많은 인원이다. 뿐만 아니다. 최근 3년간 졸업생의 20% 이상을 SKY대에 보냈다. 이같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데는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기 위한 특별수업 덕이 컸다. 하나의 공식을 암기하기 전에 원리를 찾아내게 하는 사고력 훈련이 수능 고난도 문제 해결이나 논술, 심층면접에서 큰 힘을 발휘했다.



비판적 사고력 키우기

포항= 최석호 기자, 사진=최명헌 기자



포항제철고 2학년 학생들이 러시아 교수로부터 이산수학 강의를 듣고 있다.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 학교가 개발한 수업방식 중 하나다. [최명헌 기자]
25일 오후 1시10분 포항제철고 종합강의실. 2학년 학생 20여 명이 러시아 교수로부터 이산수학(정수와 그래프 등을 활용해 수학구조를 연구하는 학문)에 관한 수업을 듣고 있었다. 강의를 맡은 러시아 국립 노보시비르스크대 체르늬흐 교수는 경우의 수를 활용해 학생들에게 ‘비둘기집의 원리’를 증명해 나갔다.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과 정규 교과에 포함되지 않은 분야라 이해하기 어려울 법도 한데,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업 내용에 집중하고 있었다. 김재연(17)양은 “처음에는 증명 중심의 수업이 어렵게 느껴졌지만, 1학년 때부터 꾸준히 듣다 보니 이제는 교과서에 나오는 공식쯤은 스스로 증명할 수 있게 됐다”며 “처음부터 공식을 암기하는 게 아니라 이해를 하기 때문에 수능 모의고사 고난도 문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원리를 이해하는 과정 없이 문제풀이 위주의 암기식 수업으로는 고난도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강석윤 교장의 말이다. 포항제철고가 발군의 입시성적을 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원리를 터득해 가는 수업’이었다.



포항제철고는 신입생을 대상으로 1년 동안 수학 중심의 영재교육을 실시한다. 연간 68시간 과정으로 이뤄진 수업은 러시아 영재교육 전문교수 2명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학생들에게 고교과정에 나오는 공식을 증명해 나가면서 수학원리를 깨우치게 한다. 배한우 연구부장은 “대학 과정에 나오는 공식까지 연계하면서 좀 더 폭넓은 학습이 이뤄질 수 있게 유도한다”고 말했다. 2학년 중 40% 가까운 학생이 3월 수능 모의고사 수리영역에서 1등급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08년부터는 전문교과과정으로 ‘비판적 사고력 배양과정’을 도입했다. 2학년에 진급하면 인문계 학생들은 인문·사회 중 관심 있는 분야와 주제를 정해 1년 동안 부산 장신대 교수진으로부터 지도를 받으며 한 편의 논문을 완성한다. 자연계 학생들은 10여 명의 POSTECH 교수진으로부터 수학과 물리·생물·화학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배운다. 물론 자연계 학생들도 1년 동안 배운 내용을 정리해 학년 말 논문을 작성하도록 한다. 권재훈(18·고3)군은 “이해하기 어려운 과학 개념도 교수님들과의 실험을 통해 원리를 찾아내기 때문에 기억에 오래 남는다”며 “논문을 쓰면서 잘못 알고 있었던 배경지식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올해 울산과학기술대에 합격한 공그림(19)양이 쓴 논문은 서류전형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노력은 성과로 돌아왔다. 입시성적 향상은 물론, 학생들이 작성한 논문이 지난해 한국교육개발원이 주관한 영재 청소년 학술대회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6개 팀 13명이 수상 실적을 거뒀다. 권군은 지난해 치러진 제2회 톡트(TOCT) 시험에서 최고 득점자가 됐다. 이 밖에도 각종 논술대회와 토론대회에서 많은 학생이 입상했다. 강 교장은 “대입 전형이 다양해질수록 교과서 암기만으로는 좋은 입시성적을 낼 수 없다”며 “학생 스스로 원리를 깨칠 수 있는 비판적 사고력을 키워줘 관심 분야를 찾아내고, 특정 분야에서 보다 많은 실적을 올릴 수 있도록 유도한 게 명문대 진학률을 높일 수 있었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TOCT위원회(www.toct.org)에서 제안하는 비판적 사고력 향상 10계명



[1] 문제를 명확하게 읽기: 비판적 사고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평가하거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비판적 사고의 첫걸음이다.



[2] 목적을 분명하게 알기: 문제는 특정 배경이나 맥락에서 출발한다. 문제 자체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제시하려는 해결책이 문제의 목적이나 배경, 맥락에 맞는지 점검해야 한다.



[3] 범위 설정하기: 비판적 사고력 문제는 증명해야 하는 것과 증명할 필요가 없는 문제로 구분된다. 명제를 증명해 나갈 때는 ‘왜’라는 물음을 항상 가져야 한다.



[4] 출발점에 대한 재검토: 논의나 생각의 흐름에는 언제나 출발점이 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문제해결의 출발점이다. 자신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들도 ‘왜 당연한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5] 문제해결에 관계가 있는 정보 구분하기: 활용할 수 있는 정보 중에서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과 무관한 것을 구분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효과적인 정보를 잘만 골라내도 논거를 뒷받침하는 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6] 정확한 정보 파악: 정보의 내용을 정확히 판단하고, 지나치게 확대해석하지 말아야 한다. 정보의 출처를 먼저 확인해 신빙성 정도를 파악하자.



[7] 논리적인 결론 도출: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을 열거·조직화하고, 근거들로부터 자신의 결론이 맞는다는 것을 입증해 나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8] 핵심개념어로 정리하기: 한마디의 핵심어가 열 마디의 말을 대변한다. 자신의 생각을 하나의 핵심어로 압축해 표현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9] ‘함축’을 고려하기: 표현되진 않았지만, 표현된 것이 무언가를 담고 있는 것을 ‘함축’이라 한다. 자신의 말이 담고 있는 함축이 자신의 전반적인 논리와 배치되지 않았는지 점검해야 한다.



[10] 다양한 관점 고려: 문제를 파악하는 데는 다양한 입장이 있을 수 있다. 문제를 파악하는 다른 입장이 있는지, 그 입장에서는 나의 입장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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