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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없는 영웅드라마, 진정한 영웅은 민초였다

KBS 드라마 ‘추노’ [KBS 제공]
25일 막을 내린 24부작 ‘추노’는 여러 면에서 한국 사극의 통념을 뒤집었다. ‘도망노비를 쫓다’는 제목대로 길바닥 민초의 삶에 초점을 맞춘 게 우선 달랐다. 기존 왕실 사극이 기껏해야 캐릭터의 재해석에 그친 데 비해 ‘추노’는 시점 자체를 달리한 것이다. 병자호란 직후 횡행한 ‘노비추쇄(奴婢推刷·도망 노비를 찾아내어 원래 상전에게 돌려보내는 일. 조선시대 이를 전담한 관청을 추쇄도감이라 했다)’라는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조선 후기의 혼란한 정치ㆍ사회사를 조명했다.

25일 막 내린 드라마 ‘추노’가 남긴 것

대규모 전투신이 아니라 일대일 액션 위주인 것도 이채롭다. 대길(장혁)과 태하(오지호)의 대립과 추격전, 혜원(언년ㆍ이다해)을 두고 얽히는 운명적 관계가 극적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초고속 레드원 카메라는 흩날리는 머리카락과 땀방울을 통해 거친 밑바닥 인생을 드러냈다. ‘짐승남’들의 육체의 향연은 극 초반 화제몰이에 공헌했다. 영화 같은 플래시백으로 과거ㆍ현재를 뒤섞는 전개 또한 신선했다. 방영 4회 만에 시청률 30%를 넘어선 데는 이런 새로운 시도가 크게 작용했다.

벗어날 수 없는 세속의 삶 암시
하지만 이때까지 ‘추노’에 쏟아진 갈채는 절반에 대한 평가에 불과했다. ‘추노’는 10부에서 제주 원손을 구한 뒤 자체적으로 ‘시즌2’에 돌입한다. 추격전이 동력을 잃고 삼각 멜로는 한쪽으로 기운 상황. 이제 좌의정(김응수)을 비롯한 지배세력에 맞서 태하 세력과 노비당 일파가 손잡고 화끈한 반란의 카니발을 벌일 때다. 그러나 오히려 태하 세력은 자중지란을 겪고, 노비당은 정체 모를 ‘그분’에게 휘둘린다. 그리고 비로소 ‘추노’는 진짜 새로운 면을 드러냈다. 이 사극엔 초월적 영웅이 없다.

영웅이 없다는 것-. 우리가 보아온 대부분의 사극과 갈라서는 점이다. ‘주몽’ ‘선덕여왕’ 등 왕실 사극뿐 아니라 ‘불멸의 이순신’ ‘허준’ 등은 모두 비슷한 공식을 따랐다. 비범한 인물이 고난을 겪다가 마침내 사람과 세상을 얻는 것이다. 이 점에서 가장 근접한 후보는 태하였다. 정치적 계략에 말려 노비로 떨어져 극한의 고통을 맛보지만, 대의에 대한 신념을 굽히진 않았다.

그런데 극은 그가 ‘반상의 구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반쪽 영웅’임을 드러냈다. 노비당 역시 “양반을 상놈처럼 부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는 점에서 기존 가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들은 결국 좌의정 세력에 농락당하고 만다. 드라마는 최종적으로 대길의 입을 빌려 선승(禪僧) 같은 한마디를 남긴다. “세상에 매여있는 놈들은 다 노비란 말이지.” 그런 대길이 결국 언년을 위해 몸을 사르니, 드라마의 자가당착일 수도 있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세속의 삶을 암시할 수도 있다. 어쨌든 드라마는 애초에 대길이 했던 말 “궁궐은 궁궐이고 저자는 저자야. 조정이나 정치가 우리랑 무슨 상관 있다고 그래?”의 정반대편에서 끝난다.

이름 없는 민초들의 역사
23회 마지막 장면. 업복(공형진)과 초복(민지아)이 애절하게 입맞추는 순간, 화면에 잡힌 두 사람의 뺨엔 각각 노(奴)와 비(婢)라는 낙인이 선명하다. “평생 도망치며 살긴 싫다”던 초복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업복을 놓아준다. 노비라는 숙명의 굴레를 끊어버릴 방법은 세상을 뒤집는 것뿐. 패배를 예감하면서도 업복은 총을 움켜잡는다. “우리가 있었다고, 우리 같은 노비가 있었다고 세상에 꼭 알리고 죽으면, 그렇게만 되면 개죽음은 아니라니.”

아마도 ‘추노’의 메시지를 가장 잘 요약한 장면일 것이다. 이름 없는 민초에게도 풀뿌리 같은 삶이 있다. 역사는 ‘승자’만을 기록하지만, 도저히 흘러온 민생이 포개지고 쌓여 시대를 변화시킨다. 그 때문에 어느 누구만 영웅일 수 없고, 어느 누구도 ‘개죽음’일 수 없다. 비범한 영웅의 비극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닌 한계에서 비롯되는 비극성의 성찰. 많은 한계와 억지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추노’를 ‘웰메이드 사극’의 반열에 올리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추노’의 비극성에 주목하긴 했지만, 이 드라마가 또한 뛰어난 희극임은 새삼 말할 나위가 없다. 특히 “나 천지호야”라는 대사를 유행시키기까지 한 성동일은 ‘추노’가 낳은 빛나는 조연 중에서도 맨 앞에 놓일 만하다. ‘속담열전’을 방불케 한 해학적인 대사와 시적인 영상, 시대와 인간에 대한 뼈 있는 천착과 함께 대중적인 흥행 코드를 놓지 않은(그래서 ‘선정성’ 논란을 부르기도 했지만) 천성일 작가와 곽정환 PD의 향후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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