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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재일동포 차별에 맞선 ‘김의 전쟁’ 끝나다

사진 左)1999년 가석방으로 풀려난 권희로씨가 김해공항에 도착해 만세 삼창을 하고 있다.
右)권희로씨의 후견인 박삼중 스님이 26일 부산 봉생병원에 마련된 권씨의 빈소에서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다. [송봉근 기자]
“내게 민족차별의 울분을 안겨준 비열한 고이즈미 형사의 입을 통해 공권력에 의한 부당한 민족 차별이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깊이 사죄하라고 요구했습니다. … 경찰의 설득 요청으로 사건현장으로 온 어머니께서 ‘희로야, 깨끗하게 죽어라. 너는 내가 낳은 아들이니까 일본 경찰 손에 죽어서는 안된다. 다만 다이너마이트로 죽지 말고 가지고 있는 총으로 죽거라. 너의 시신이라도 내가 거둬줘야 하지 않겠느냐’며 손수 지은 한복을 건네주셨습니다.”

암 투병 권희로씨 별세



1968년 2월 20일 재일동포 차별에 항의하며 일본 시즈오카현 시미즈시에서 야쿠자 단원을 총기로 살해한 뒤 여관 투숙객을 상대로 88시간동안 인질극을 벌였던 권희로씨의 회고다. 99년 9~10월 19회에 걸쳐 중앙일보에 게재한 옥중수기 ‘어머니, 미움을 넘어섰어요’의 한 대목이다.



권씨가 3년 전부터 전립선암으로 투병하다 26일 오전 6시50분 부산 동래구 봉생병원에서 별세했다. 82세.



고인은 28년 일본 시즈오카현에서 부산이 고향인 부두 노동자 권명술씨와 박득숙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34년 시미즈 소학교(초등학교)에 입학했으나 ‘조센진’이라는 멍에 때문에 늘 천대를 받았다.



“쭈글쭈글한 내 도시락에 담겨 있는 보리밥을 보고 일본 아이들이 놀려 주먹다짐을 했다. 그러나 담임선생은 다짜고짜 슬리퍼를 벗어 나만 마구 때렸다.” 3학년때 일어난 도시락 사건이다. 결국 그는 소학교 5학년 때 학업을 포기하고 이름을 여덟 차례나 바꿔가며 일자리를 구했지만 번번히 ‘조센진’ 신분이 들통나 직장에서 쫓겨났다.



68년 2월 당시 고인은 빌리지도 않은 돈을 갚으라고 협박하던 야쿠자 두목이 “조센진, 더러운 돼지 새끼”라고 욕설을 퍼붓자 야쿠자 단원을 살해했다.



2시간 전 삼촌·숙모 등 가족들을 모아 놓고 “사촌이 야쿠자에게 일본도로 난자당하는 등 고생하는 동포가 한둘이 아니다. 목숨 걸고 녀석들과 싸우겠다”고 말한 뒤 벌인 행동이었다. 권씨는 이튿날 새벽 투숙객 18명이 묵고있던 인근 스마타쿄 온천마을의 후지미야 여관을 점거하고 총과 다이나마이트를 들고 88시간 동안 경찰과 대치하며 재일 동포의 차별 철폐를 요구하다 체포됐다.



이런 그의 사연은 92년 유인촌(현 문화관광체육부 장관)·이혜숙이 주연한 영화 ‘김의 전쟁’의 소재가 됐다.



75년 무기징역형이 확정돼 복역하던 중 90년초 사형수를 대상으로 교화활동을 벌이고 있던 박삼중 스님을 중심으로 석방운동이 벌어져 한일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됐다. 99년 가석방 형식으로 풀려난 뒤 한국으로 영구 귀국했다.



제주시가 ‘권희로 무궁화 동산’을 만들어주고, 안상영 당시 부산시장이 명예시민 기념 금메달을 걸어주는 등 환영행사가 잇따랐다. 그러나 그는 “나는 영웅도 아니고 애국지사도 아니다. 아무런 이유없이 나 같은 동포를 차별하고 괴롭힌 못된 일본인과 공권력에 반항한 죄로 평생을 감옥에서 보낸 불쌍한 인간일 뿐이다”며 자신을 낮췄다.



야쿠자 대원을 살해한 행위에 대해서는 “그 어떤 사람이라도 살인을 정당화할 수 없듯 내가 저지른 행위도 마찬가지다”라고 반성했다.



일본에 대해서도 “정말 나에게 고맙게 해준 사람들도 많다. 차별을 하는 일본인만 미워한다”며 한국민의 반일 감정을 경계하기도 했다.



권씨가 네 살 때 아버지가 숨졌고, 3년 뒤 어머니가 김모씨와 재혼하면서 성이 김씨로 바뀌었다. 그래서 영화 제목이 ‘권의 전쟁’이 아닌 ‘김의 전쟁’이 됐다. 귀국 뒤 주민등록증을 받으면서 권씨로 성을 회복했다.



권씨는 삼중스님의 소개로 소년원 등을 찾아 교화활동을 펴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 내연녀의 남편을 폭행한 사건 등 31년이 넘는 옥중생활로 인한 성격장애 행동으로 보호감호처분을 받으면서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26일 김씨의 별세 소식을 듣고 서울에서 달려온 삼중 스님은 “2주 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11년간 고국에서 잘 지내다 간다. 국민들에게 고맙다고 전해달라’고 했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장례는 가족장(3일장)으로 치러진다. 28일 오전 8시30분 발인하고 부산영락공원에서 화장한다. 고인의 유언에 따라 유골의 절반은 선친의 고향인 부산 영도 앞바다에 뿌리고, 나머지는 일본 시즈오카현 어머니 묘에 묻을 예정이다.



부산=이기원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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