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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여론에 외면당한 적군파, 요도호를 납치하다

김포공항에 불시착한 요도호.
1970년 3월 31일 하네다를 출발해 후쿠오카로 향하던 일본항공(JAL) 351편(통칭 요도호)이 일본 적군파 학생 9명에 의해 납치됐다. 납치범들은 기수를 평양으로 돌릴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납치된 항공기는 한국 공군의 유도에 의해 평양공항으로 위장된 김포공항에 착륙했고, 납치범들과 협상에 들어갔다.



69년 12월 대한항공 소속 YS-11기의 납북 사건을 경험했던 한국 정부는 납치범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려 했지만, 승객의 신변 안전을 우려한 일본 정부 측의 만류로 일본 운수성 정무차관이었던 야마무라 신지로가 대신 탑승하는 것을 조건으로 납치범들은 승객을 모두 풀어주고 평양으로 이륙했다. 사건 발생 3일 후인 4월 3일 요도호가 평양에 착륙한 직후 야마무라 차관과 조종사들이 일본으로 귀환하면서 사건은 마무리됐다.



당시 요도호를 납치했던 학생들은 ‘공산주의자동맹 적군파’ 소속으로, 무력 저항을 통해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책’에 대한 일본의 협조를 막겠다는 것을 기치로 하고 있었다. 요도호 사건 외에도 72년 2월 일본 나가노현에서 총격사건을 일으키기도 했고, 동년 5월에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와 함께 텔아비브공항 습격 사건에 가담해 25명이 사망하고 76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최근 적군파 문제를 둘러싼 두 가지 이슈가 제기됐다. 하나는 일본 정부가 최근 북·일 협상 과정에서 70년 당시 요도호를 납치했던 적군파 학생들에 대한 송환을 요구한 것이다. 이미 96년 납치범의 한 사람이었던 다나카 요시미가 위조지폐 사용 혐의로 태국 경찰에 체포되면서 납치범들과 이들의 가족 대부분이 일본으로 귀환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상태였다.



또 하나는 적군파 간부이면서 텔아비브 습격사건에 참여했던 시게노부 후사코가 2009년 11월 일본에서 체포된 사건이다. 그녀는 일본으로 돌아와 일본 혁명을 위해 ‘인민혁명당’을 조직하려다 2개월도 되지 않아 체포됐다. 적군파는 일본 내에서 아무런 지지도 받지 못한 채 사라져갔다. 폭력적인 테러 활동에 대해 어느 누구도 동의하지 않았던 것이다. 9·11 테러와 같이 무고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는 어떤 목적에서도 합리화될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전 세계 여론의 지탄 대상이 돼 더 많은 적을 만들 뿐이다. 국내의 한 잡지가 최근호에서 후사코가 부친으로부터 ‘민심을 중시하고 민족을 알아야 진정한 혁명’이라는 훈시를 들었다고 하는데, 이들은 과연 민심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문득 85년 8월 중국 민항기 불시착 사건이 뇌리를 스친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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