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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의 소프트파워] 국가 CTO가 아니라 CCO여야

# 황창규 전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겸 메모리사업부장(사장)이 ‘국가 연구개발(R&D) 전략기획단장’에 내정됐다. 전략기획단은 한 해 4조4000억원에 이르는 지식경제부 연구개발 예산을 배분하도록 결정하는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 형식적으로는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과 공동 단장이지만 사실상의 국가적 연구개발사업 총책을 황 전 사장이 맡은 셈이다. 그런데 ‘국가 연구개발 전략기획단장’을 ‘국가 최고기술책임자(CTO·Chief Technology Officer)’라 부르는데 이견(異見)이 있다. 오히려 ‘국가 최고콘텐트책임자(CCO·Chief Contents Officer)’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싶다.

# 바야흐로 기술의 시대가 아니라 콘텐트의 시대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전격 복귀한 배경에도 이것이 담겨 있다. 애플의 아이폰과 삼성의 옴니아2가 제품 유형상 같은 스마트폰으로 분류되지만 시장에서의 반응은 하늘과 땅 같다. 왜 그럴까? 한마디로 애플의 아이폰은 콘텐트를 팔았고, 옴니아2는 기기(器機)를 팔았기 때문이다. 아이폰 기기 자체는 대만이 만든다. 영상통화도 안 되고 DMB도 안 된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한 일은 아이폰을 갖고 놀 수 있는 콘텐트 애플리케이션의 연계영역을 거의 무한대로 늘려놓은 것이다. 아이폰의 돌풍 배경에는 아이폰 놀이를 즐기기 위해 다운로드해야만 하는 수많은 콘텐트웨어의 연관산업망이 거미줄처럼 깔려 있다. 우리가 기기를 만들어 파는 데 급급할 때, 아이폰은 다운로드하는 데 때론 20달러씩을 지불해야 하는 매력적인 콘텐트 애플리케이션으로 사용자들을 유혹했다. 그 거대한 유혹 앞에 전 세계 사용자들은 기꺼이 포로가 됐다.

# 결국 아이폰 열풍은 우리가 가장 취약한 콘텐트를 바탕으로 한 시장 공략이기에 무서운 것이다. 반면 기술적으로 뒤질 것이 하등 없는, 아니 단순 기기 자체론 가장 앞서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삼성의 옴니아2는 콘텐트와의 연계를 이룰 밑바탕이 취약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것은 비단 일개 제품의 문제가 아니다. 시대의 흐름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말해 주는 단적인 증거다.

# 기술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다. 콘텐트에 바탕을 둔 기술(Contents based Technology)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연구개발의 방향도 여기에 정조준돼야 마땅하다. 그러려면 국가 CTO가 아니라 국가 CCO여야 한다. 명칭 하나 바꾸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되물을지 모른다. 하나 오늘 우리가 붙이는 명칭 하나가 내일의 방향과 비전에서는 엄청난 격차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놓쳐선 안 된다.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급한 과제가 새로운 ‘콘텐트 애플리케이션’에 우리의 연구개발 우선순위를 확실하게 부여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일부에서 지경부 예산 범위에서 하는 것이니 ‘국가 연구개발 전략기획단장’에 ‘국가’ 자를 붙이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영역 다툼의 냄새가 나는 얘기는 불필요하다. 자그마치 한 해 4조400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예산을 움직이는 자리다. 따라서 ‘국가’ 자를 붙이든 안 붙이든 관계없이 이미 내용적으로는 국가적이다. 진짜 핵심 문제는 그 방향이 어디를 향할 것이냐는 점이다. 전통적 의미의 기술에 국한된 연구개발이어서는 곤란하다. 미래를 설계하는 일인 만큼 콘텐트에 바탕을 두고 연계된 연구개발 비중을 최대한 높여야 한다.

# 하드웨어 시대를 지나 소프트웨어 시대를 거쳐 콘텐트웨어 시대다. 기기를 잘 만드는 것만으론 미래가 없다. 그것을 구동할 단순 소프트웨어만으로도 안 된다. 사용자로 하여금 그것을 가지고 끊임없이 놀 수 있게 만드는 콘텐트웨어 개발이 절실하다. 우리가 살려면 거기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 그래서 국가 CCO의 역할이 정말 필요한 때다.

정진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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