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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 배관 ‘속병’ 진단하는 마술사

독자적으로 개발한 금속 특성 측정기를 들고 설명하는 권동일 교수.
지난해 4월 한 정유회사. 섭씨 수백 도의 고온과 고압의 가스가 오가는 금속 배관의 수명은 설계 당시 12년이었다. 이미 9년을 사용했기 때문에 잔여 수명은 3년 정도 남았다. 그런데 서울대 재료공학부 권동일 교수팀이 측정한 결과는 1년 정도밖에 수명이 남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깜짝 놀랐다. 즉시 파이프를 교체해 자칫하면 큰 폭발사고로 이어질 뻔한 위기를 모면했다.

권 교수의 측정 장비는 책상용 사각 휴지상자보다 작다. 이를 파이프 위에 올려 놓고 몇 분 놔뒀을 뿐인데 이런 사실을 감지할 수 있었다. 측정기의 침으로 파이프를 한 번에 1분씩 꾹 눌러 보는 일을 몇 번 한 것이다. 최고 40㎏ 정도의 무게에 해당하는 힘을 줘 눌러 쇠 파이프에는 종이 한 장 깊이의 보일 듯 말 듯한 자국 정도만 남았다.

금속을 눌러 보기만 하는 것으로 수명이나 강도 등을 정확히 알아내는 것이 이 측정법의 ‘마술’이다. 권 교수팀은 이미 10년 전 이 기술을 세계 처음 개발해 지금까지 계속 발전시켜 상용화에 성공했다. 오늘날 세계 금속 특성 측정 분야에서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권 교수는 이 기술을 국제 규격인 미국기계학회 ASME 코드에 포함시키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2008년에는 국제표준화기구(ISO)의 표준기술로 채택되기도 했다.

기존 인장 시험과 X선 측정법으로 금속 파이프나 재료의 수명과 노후 정도, 강도를 알려면 파이프를 잘라 측정기에 알맞게 만들어야 한다. 가동 중인 공장의 파이프나 부속품을 이런 기기로 검사할 수 없는 노릇이다. 권 교수의 측정기는 크기가 작은 데다 다루기가 쉽고 정확해 공장시설 등 쓰임새가 넓다. 웬만한 작업 현장 어느 곳에나 쓸 수 있다.

“금속마다 사람의 지문처럼 독특한 ‘지문’에 해당하는 것이 있어요. 금속 표면을 가느다란 침으로 눌러 보면 금속의 지문에 해당하는 정보가 침으로 전달되지요. 그 정보를 해독해 재료의 상태를 파악하는 기술로 보면 됩니다.”

한번은 미국의 세계 최대 정유업체 엑손모빌이 권 교수의 기술을 시험했다. 용접한 파이프 부위의 ‘건강도’를 측정하는 것으로, 기존 장비인 X선으로 해 보고 또 한번은 권 교수 장비로 해봤다. 그 결과 거의 비슷한 데이터가 나왔다. 그러나 엑손모빌은 권 교수 장비가 X선 장비보다 장점이 많다고 보고 권 교수 것을 구매했다.

그의 기술을 이전받은 프론틱스라는 중소업체의 측정기를 구매한 것. 이 측정기를 쓰는 기업은 미국에선 GE·셸, 국내에선 삼성전자·현대자동차·포스코 등 국내외 40여 곳에 이른다.

권 교수의 연구실이 있는 서울대 신소재공학관 3층에는 그가 개발한 크고 작은 측정기들이 즐비하다. 연구실 한쪽에는 새로 개발 중인 기기 실험이 한창이었다.

마이크로(100만분의 1m)나 나노(10억분의 1m) 크기의 재료를 측정할 수 있는 기기를 개발하는 중이다. 이미 기초기술 개발은 완료했으며, 상용기술을 가다듬고 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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