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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으로 소년소녀가장 돕길” 위안부 할머니 아름다운 유언

“할머니는 청소년을 좋아했습니다. 위안부로 끌려갈 당시 16세였습니다. 늘 ‘어려운 청소년을 돕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의 이인순(46·여) 사무국장은 “할머니의 생전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게 돼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25일 오후 대구시의회 3층 소회의실. 시민모임의 이정선(55·여) 운영위원이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도충구 회장에게 기부금을 전달했다. 5413만4600원. 기부금은 생활이 어려운 소년소녀가장 56명에게 장학금과 생활비로 지급된다. 이어 ‘평화와 인권을 위한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건립추진위원회 안경욱(47) 상임대표에게도 같은 금액이 건네졌다. 이 위원은 김 할머니의 유언 집행자다.

기부금 1억826만원은 지난 1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위안부 피해자 김순악(82·사진) 할머니의 유산이다. 김 할머니는 대장암 수술을 앞둔 지난해 12월 5일 자신을 도와주던 이정선 위원과 외아들을 불러 유언했다. 전 재산 가운데 장례를 치르고 남은 것을 소년소녀가장 돕기와 위안부 역사관 건립에 절반씩 기부하라는 내용이었다. 할머니는 올 1월 2일 세상을 떠났다.

기부금은 김 할머니가 근검절약하며 모은 것이다. 경북 경산시 출신인 김 할머니는 돈을 벌 수 있다는 꾐에 빠져 16세 때인 1944년 중국 하얼빈으로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 해방 후 서울·동두천 등지에서 가정부 생활을 하다 97년 고향인 경산으로 돌아왔다. 할머니는 날품을 팔아 생활했다.

과수원이나 밭에서 풀을 뽑고 수확을 돕는 일을 하면서 돈을 모았다. 2000년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되면서 정부와 경산시에서 매달 80여 만원의 생활 지원금을 받았다. 빠듯하긴 했으나 생활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할머니는 돈을 거의 쓰지 않았다.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80) 할머니는 “김 할머니가 기부한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자식이 있는 분인데 정말 대단한 결정을 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할머니는 위안부 문제 해결에도 앞장섰다. 2003년 일본 나고야·히로시마 등에서 열린 강연회를 시작으로 위안부의 실상을 알리는 일에 매달렸다. 2008년 8월에는 『내 속은 아무도 모른다 카이』라는 자서전을 출간해 일제의 만행을 폭로했다. 이인순 국장은 “평소 할머니는 ‘전쟁이 모든 고통을 만들었고, 전쟁이 없어야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을 하셨다”고 전했다. 그는 “할머니는 평화주의자이자 인간의 존엄성을 외쳤던 인권운동가였다”고 회고했다.

시민모임에 따르면 현재 전국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85명, 모두 80∼90대다. 올 들어 지금까지 김 할머니 등 4명이 지병으로 숨졌다.

대구=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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