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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석 칼럼] ‘인사동 디오게네스’ 민병산

지난주 인간미 넘치는 남강 이승훈, 일속자 장일순의 삶을 잠시 떠올려봤지만, 그와 별도로 이른바 기인(奇人)에게도 나는 끌린다. 너무 반듯하고 거창하면 거리감이 느껴진다. 근·현대의 기인하면, ‘호남의 성자’로 불리는 오방(五放) 최흥종(1880~1966)을 빼놓을 수 없다. 주먹 출신이라는 설도 있는 그가 신앙을 가지게 된 계기도 의외로 간단했다. 한센병 여인을 품고 가는 외국인 선교사를 마주친 충격 때문이다. 선교사는 여인의 지팡이가 떨어지자 마침 지나가던 오방에게 집어달라고 부탁했다. 못 들은 척 외면했다. 그런 위선자 모습이 자기를 후벼 팠고, 끝내 세례를 받았다.

오방의 못 말리는 기인 기질은 훗날 사망통지서 발송 사건에서 발휘됐다. 멀쩡한 자기가 죽었다고 주변에 감히 선언했다. “나 오방은 이제 죽은 사람임을 알리는 바입니다. 사이비 생활을 청산하고 예수만 신뢰할 것을 맹약하고 스스로 매장했으니 앞으로 모든 관계를 끊어주시길….” 소설가 문순태가 쓴 『성자의 지팡이』에 나오는 대로 그는 대자유인이다. 아호 오방(五放)만해도 그렇다. 가정·사회·경제·정치·종교 등 사람을 옥죄는 다섯 족쇄·감옥으로부터 벗어난다는 선언을 담았다. 그래서 가히 아나키스트다. 그런 오방에 못지않은 또 다른 기인이 내가 좋아하는 민병산(1928~88)이다.

소설가 김성동·방영웅, 시인 천상병·신경림이 ‘인사동 디오게네스’로 입 모았던 그는 가난한 독신을 자청했다. 취미는 인사동을 오가는 이에게 자기 붓글씨를 나눠주는 일인데, 그런 모습은 기원전 퀴니코스(犬儒)학파의 철학자를 연상시켰다. 본래는 충청도 갑부의 아들이다. 운전기사가 달린 검정세단을 타고 등교하던 그는 6·25 참상을 마주친 뒤 삶의 행로를 완전히 바꿨다. 유산도 포기했다. 이후 문인과 어울리는 소박한 삶을 자청했다. 초절(超絶)주의 시인 랠프 에머슨의 ‘심플 라이프 하이 싱킹’을 스스로 실천한 셈일까?

“사천 세의 은자(隱者)”(평론가 구중서)라는 평가대로 그는 세상을 비껴 살았다. 팝콘처럼 정신 없이 튀겨지는 세상, 그런 국외자가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의 단아한 체취는 신구문화사에서 오래 전 나온 산문집 『철학의 즐거움』 못지않게 붓글씨에 남아있다. 하도 구불구불해서 ‘호롱불체’라고도 하지만, 소설가 김성동은 이렇게 말한다. “민병산 글씨를 볼 안목이 내게는 없지만, 굳이 멋지게 잘 써보겠다는 욕심이 빠진 것은 알겠다. 추사가 죽기 전 썼다는 ‘板殿(판전)’ 같고, 장일순의 글씨를 보는 것도 같다.”

그러고 보면 장일순·민병산은 모두 글씨로 유명한데, 누가 뭐래도 20세기 서예의 명장면이라는 게 내 판단이다. 속기(俗氣)가 빠져있다는 점에서 닮은꼴인데, 화려한 것만을 쳐주는 미술시장에 거래될 리는 없다. 시장은 본래 속기가 조금 묻어있는 걸 좋아하는 법이니까. 어쨌거나 20여 년 전 타계한 민병산이 살아있다면 2000년대 우릴 보고 뭐라 할까? “더 이상 가난한 이는 없다. 부자가 되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 수두룩할 뿐이다.” 어떤 시인의 말이 마치 민병산의 것인양 울린다. 장일순 글씨전이 4월 2일 원주역사박물관에서 열린다고 들었는데, 민병산의 호롱불체 글씨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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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