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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사투리로 ‘장애인 희망가’

“비왐쪄 날래 걷으라(비온다 곡식 걷어라)/ 우리 어멍 조들암시난 헌저 걷으라(어머니 걱정하시니 빨리 걷어라)/ 우리 아방은 괸당네집 잔치밭에 가고(아버지는 친척 잔칫집에 가고)/ 넉둥배기 눌멍 정신 어신생이여(윷놀이 놀면서 정신 없는 모양이다) “-노래 ‘비야비야 오지마라’ 중에서.



지체장애 가수 양정원씨, 이웃돕기 공연 펼쳐

가수 양정원(42)씨는 ‘제주사투리’로 노래한다. 성산일출봉이 내려다보이는 서귀포시 성산읍 산촌에서 나고 자란 그의 꿈은 기타를 만지던 중학 시절부터 가수였다. 고교를 마치고 노래 공부를 하다 1987년 해병대에 입대, 기습특공대(IBS)에서 복무했다. 군 복무중 그는 위문공연하러 다니는 해병밴드의 단골 가수로 빈번히 차출됐다. 군대가 그를 알아봐 준 셈이다.



전역 뒤 제주·서귀포시 등지 음악다방과 클럽을 돌며 가수의 꿈을 키워가던 중 사고가 났다. 1994년 초 타고 가던 차가 전복되며 중상을 입은 그는 서울 국립의료원으로 옮겨졌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척추를 다치면서 마비가 왔다. 손가락조차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준식물인간’ 상태로 1년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홀로 그를 키워 온 어머니(80)는 밭농사로 번 돈을 모두 날렸다. 간신히 휠체어를 탈 수 있는 정도가 되자 고향 제주로 내려왔지만 눈물이 앞섰다. “할 줄 아는 게 기타치고 노래하는 게 전부인데….” 하지만 이겨냈다. 어떻게든 움직여 보려고 했다. 시내 병원까지 갈 돈도 몸도 안 되기에 무작정 마을을 절뚝거리며 걸었다. 1년 여를 2~3일에 한번은 5㎞씩 걸었다. 그러자 정말 기적같이 손가락·발가락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몸은 여전히 지체장애인 2급.



그 몸으로 그는 다시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3년여 경기 하남의 업소에서 벌이에 나섰지만 그저 ‘장애인 가수’로 보일 뿐이었다. 모든 걸 정리하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다. 2001년 2월 고향에서 불우장애인 돕기 명목으로 첫 콘서트를 열며 ‘제주사투리’노래를 만들어 한번 불러봤다. 반응이 좋았다. 10번의 콘서트를 더하며 “고향 말이 입에 쩍쩍 달라붙는 느낌”이 왔다. 2007년부터 그런 제주사투리 창작곡을 모아 지금껏 앨범도 3집까지 냈다.



‘제주말 가수’로 활동하는 그의 자전적 스토리는 제주의 한 젊은 감독의 눈에 띄었고, 요즘 제주에서 인기를 얻는 ‘제주토종’ 독립영화 ‘어이그 저 귓것’의 소재가 됐다. 양씨는 노 개런티로 이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했고, 삽입곡도 직접 불렀다. 연기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의 삶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기에 역시 몸에 ‘쩍쩍’ 달라붙었다.



양씨는 “감독이 ‘물 오른 연기’라며 추켜세워 고향 제주를 알리는 후속작도 현재 촬영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사투리 노래는 그래도 지금의 제가 살아 숨 쉬게 해준 어머니와 고향에 대한 보은이자 누군가는 해야 할 도리일 뿐”이라고 말했다.



글=양성철 기자 사진=프리랜서 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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